근황..: 사전 작업, 강의, 트랜스젠더 입문서

좀 더 자주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쩌다보니 일주일이 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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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했습니다. 원래 7월 중에 사전 작업을 끝내고 8월엔 본격 작업에 하려 했는데 제 게으름과 예측 실패로 결국 8월에야 끝냈습니다. 물론 마무리 작업이 조금 남았지만요.. 암튼 9월부턴 본격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요? 그러길 바랍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요…. ;ㅅ;
때가 되면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거고, 아마 반가워하실 분 여럿 계실 듯합니다. 🙂
02
사전 작업을 하느라 열흘 정도 몰입한 다음엔 오늘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강의 준비는 항상 어렵고 강의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글쓰기보다는 강의가 낫지 않냐고 했지만, 한편으론 그 말에 백번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글쓰기입니다. 아직도 강의는 어렵습니다.
03
이렇게 말하지만 9월 19일 수요일 저녁 7시에 합정역 근처서 강의가 있습니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그런 강의 같은데 자세한 것은 홍보 웹자보가 나오면 그때 이곳에 홍보하지욥. ;;;;;;;;;;;;;;
(자기 홍보는 참 열심히 하는 1人 ;;;;;;;;;;;;;; )

04
트랜스젠더 101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교과목에 101이 붙으면 완전 입문 강좌란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책 역시 완전 입문서 성격에 가깝습니다. 영어가 어렵지 않고 제 입장에선 책이 말하려는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어 모르는 영어 적당히 무시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지하철 타고 이동할 때 읽기 무난하달까요. 물론 이제 앞부분 조금 읽은 수준이지만요.. 근데 읽고 있노라면 이 책을 번역하고 싶다는 바람이 드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기획으로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듭니다. 비슷한 기획이라면 차라리 내가 더 잘 쓸 것 같다는 느낌은 아니고, 아쉬운 부분이 종종 있어서요. 하지만 아쉬운 부분 중 일부는 101이라는 기획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다 싶기도 하고요.
이런 점과는 별개로 이렇게 쉬운 입문서가 적잖게 나오는 저변,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쓰는 적잖은 인구가 부럽습니다.
05
입문서 하니 떠오르는 것. 제가 트랜스젠더 이슈 관련해서 읽은 것이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쉬운 입문서를 꼽으라면 수잔 스트라이커의 [트랜스젠더 역사], 리키 윌킨스(윌친스)의 [퀴어 이론, 젠더 이론]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타이흐(Teich ;;; ‘티치’라고 읽어야 할까요? ;;; )의 [트랜스젠더 101]을 꼽을 수 있으려나요? 이 중 가장 좋은 책은 스트라이커의 책입니다. 팬심입니다! 후후. 그 다음은 윌킨스의 책입니다. 쉽지 않은 이론을 쉽게 풀어쓴 글이고(그래서 세세한 부분에서 문제가 없진 않지만), 트랜스젠더 이론, 퀴어 이론, 젠더 이론을 알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죠. 타이흐(?)의 책은.. 음… 뭐랄까 역시나 이 셋 중에선 내공이 부족합니다. 내용이 부족한 것은 아닌 듯한데(아직 다 안 읽었으니까요;; ) 글을 읽노라면 내공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도 좀 있고요. 그래도 101이라는 기획엔 충실한 책입니다. 어쩌면 101이란 기획엔 가장 적당한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다 필요한 책입니다. 물론 이 셋 말고도 입문서는 더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아야죠. 넘칠 정도로 많아도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부러워요. 한국엔 간단하게 소개하는 자료집은 있어도 입문서 성격의 책은 없으니까요.
(아, 케이트 본스틴의 책 [젠더 무법자]도 입문서로 무척 좋겠네요. 한 2년의 여유 시간과 여유 자금만 있으면 세 권은 번역하고 한 권은 새로 기획해서 쓰고 싶달까요. 하하.)
06
석사 졸업하고 박사 입학하기 전 3년 동안 책을 쓸 걸 그랬다 싶은 찰나입니다. 물론 그땐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바빴지만요. 그래도 책 한 권을 쓸 의지와 기획만 있었다면 썼을 텐데 싶기도 하네요.
그러고 보면 석사논문을 개작하면 재밌는 책이 한 권 나오긴 할텐데… 끄응…
07
몸이 두 개이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남들의 두 배이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저 혼자 착각하고 있을 뿐이죠. 서두를 일도 아니고 일단은 제 공부부터 해야 하고요. 기회는 때맞춰 오겠죠. 🙂

강의 후기(?): 섹스/젠더 그리고…

강의를 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잦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강의 경험은 늘 낯설고 또 어색하다.
이번 강의는 나름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주일 전에 땜빵으로 요청 받았다. 기획자는 다급했고 나는 망설였다. 전체 강좌 중 다른 강의 하나를 하기로 했지만 추가로 요청받은 강의는 내키지 않는 주제였다.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하기로 했다.
강의를 준비하며 어려웠다. 주제는 간단했다. 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강좌 전체를 여는 서두 강좌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강좌 기획은 심화강좌인데 기획자는 초급입문용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끄응. 강의 전날, 못 하겠다고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참았다.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제는 ‘섹스/젠더/섹슈얼리티 뒤집어보기’였다.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여성학 초급 과목에서 개념을 배우는 용어이자,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에서 매우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이 용어를 뒤집어보기를 하자고 했는데, ‘뒤집어보기’를 하려면 초급입문용 강의를 하기 힘들다. 나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아무려나 강의는 재밌게 끝났다. 기획자는 초급입문용으로 준비해달라고 했지만 수강생은 이미 내공이 상당한 분들 뿐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섹슈얼리티 얘기는 거의 못 했다. 얘기하기 애매했다. 시간도 부족했고.
섹스와 젠더, 섹슈얼리티는 보통 한 쌍으로 묶이는 편이다. 그래서 같이 살펴볼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용어는 섹스와 젠더 뿐이다. 섹스와 젠더는 그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게 요약하자면, 섹스와 젠더는 서로를 분리하려는 주장과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 사이에서 논의를 축적했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를 논하는 과정에서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경계가 매우 모호한 측면이 있고, 역사적으로 혼용한 바 있다. 그럼에도 내게 섹슈얼리티는 별개로 논의를 해야 한다. 섹스와 젠더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 만큼이나 섹스-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고 많은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강의를 준비하고 실제 진행하면서 깨달았는데, 섹스-젠더 뒤집어보기는 하나의 강의로 할 수 있지만, 섹스/젠더/섹슈얼리티 뒤집어보기는 하나의 강의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뭐, 4시간 이상의 강의라면 가능하겠지만, 강의 시간이 두 시간이라면 힘들다.
암튼 하기 싫은 강의였지만 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강의료로 길고양이에게 줄 사료 등을 살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근데 길고양이에게 줄 사료를 선물 받을 거 같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에서..)

특강, 글, 아이디어

지난 금요일 특강을 했습니다. 메일로 요청 받기는 참 오랜 만이랄까요. 몇 해 전만 해도 트랜스젠더 관련 특강 요청 연락이 가끔은 왔습니다. 그게 2006년부터 2007년 정도. 그땐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이슈가 유난히 유행했죠. 새로운 이슈는 늘 많은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지만, 이런 관심이 유지되는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관심이 시든 시기가 되면, 이제 관련 이슈에 관심이 있고 고민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합니다. 트랜스젠더 이슈만을 특별히 지칭하는 건 아닙니다. 소중한 너무 많은 이슈들이 단발성의 화제로 끝나고, 관련 이슈에 천착하는 이들은 늘 생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걱정일 뿐입니다.

암튼 지난 금요일 진행한 강의는 지금까지 경험한 강의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하는 제가 재밌었달까요.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강의를 요청한 곳이 워낙 수준이 높은 집단이라 어떤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어서요. 아울러 어떤 소재를 해석하며 풀어갈지가 고민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있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요.

소재를 걱정하고 있는데, 그날 아침 트랜스젠더로 불린 한 사람의 피살된 사건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http://goo.gl/mJRb 여자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여관에서 알고 보니 남자라 격분해서 살해했다고 했고, 언론은 이를 트랜스젠더 살해 사건으로 제목을 뽑았습니다. 첨엔 저도 트랜스젠더 혐오 사건으로 간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고인도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얘기했을까요? 이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란 범주를 어떤 맥락에서 부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성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니 남자라서 트랜스젠더라고 부른 것이라면 매우 위험합니다. 아울러 살해한 이유를 단순하게 상대가 트랜스젠더여서라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가해자의 진술을 100%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 바로 이 사건을 통해, 강의 주제로 연결하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트위터 만세!) 관련 사건과 논쟁 몇 가지를 엮어 얘기를 풀어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고, 걱정보다는 얘기가 풀렸습니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저도 제 말하기 방식에 적응한 것일까요? .. 아하하;;

한 가지 더 기쁜 건, 강의를 진행하면서 6월 중에 있을 발표글의 초안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5월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고백하건데 아직까지 초안도 못 잡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있는데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강의를 진행하면서 대충의 틀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쓰는 일만 남았는데.. 쉽지 않네요. 하하..

아무려나 글을 쓰기 전에 강의를 할 일이 있을 때보다 좋은 경우는 없습니다. 강의를 통해 막연한 아이디어나 원고 초안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글이 읽을 만하면 발표 뒤에 이곳에 공개할게요. 흐.)

강의가 끝난 후 돌아오는 길도 즐거웠습니다. 강의 가기 전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지난 금요일은 즐거움이 가득한 하루였나 봅니다.

+
이곳을 폐쇄할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두 가지 방안이 있었습니다. 글은 구글독스를 통해 공개하고 소통은 트위터로 하는 방법, 혹은 아예 계정을 옮기는 방법. 하지만 관두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이곳 만의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