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반 연속 강의를 했습니다. 관례에 따라 이박삼일 즐거운 자학의 시간에 들어갑니다. ㅠ_ㅠ
근데 수강생이 저보고 “조신하다”고 말했습니다아아아아아아..;;;;;;;;;;;;;;;;;;;;
도대체 어떤 연기를 하면 이런 평을 들을 수 있는 건가효?
아아… 이보다 더 가식적일 수 없다..랄까요? 크크
[태그:] 강의
주절주절: 겨울의 길고양이, 트랜스젠더 강좌, 권력을 활용하기
왜 가끔은 내 안의 무수히 많은 언어들이 다 어디갔나, 싶을 때가 있죠. 다들 경험하셨겠지만요. 무언가를 쓰고 싶지만, 무엇하나 주절거리기에 부족한 내용들이라 무언가를 쓰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고민들의 조각들을 늘어놓는 수밖에 ….
전 요즘 길고양이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 하는 고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 길고양이들에게 겨울은 어떤 풍경일까요? 집에서 사는 것이 익숙한 저에겐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죠. 찬 바람이 쌩쌩 불고 때로 겨울비와 눈이 내리는 밤,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요?
혹은 트랜스젠더 강의는 어떻게 해야 ‘쉬울까’를 고민합니다. 사실 전 트랜스젠더 특강 가서 트랜스젠더에 관한 얘기는 거의 안 합니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의 어려움을 듣고 싶어하지만, 저는 젠더 경험에 초점을 맞추죠. 그리고 비트랜스의 젠더경험과 트랜스젠더의 젠더경험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고 애씁니다. 아무래도 초보 강사니 여러 강의안을 만드는데요. 최근 ‘딱 학부생용이다’ 싶은 강의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정도 그 강의안을 바탕으로 강의를 했는데요. 최근 특강을 들으신 선생님(저를 특강으로 초대한 선생님이기도 하죠)께서 말하길, 학부생이 듣기엔 너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헉. ㅜ_ㅜ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럼 대학원생이 듣기엔 어떨까요?”라고 물었더니, 대학원생(아마도 여성학/젠더이론 전공일) 정도면 무난하겠다고 답하셨죠. 우허엉. ㅠ_ㅠ 며칠 전 특강의 수강생들의 감상문을 받았는데요. 어렵다는 말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해서 초점을 모르겠다는 말도 있고요. 이건 모두 중요한 지적입니다. 가장 정확한 지적은 강사님은 강의를 많이 안 하신 듯해요, 란 논평이었습니다. 매우 고마운 논평이죠. 초보 배우는 무대에서 발걸음부터 어색하다고 했나요? 저런 논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겁니다. 아무려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트랜스젠더의 경험과 비트랜스의 경험을 분리하지 않는 강좌를 쉽게 하기. 이 고민을 하며, 저는 ㅎ님을 스토킹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갈 수 있는 시간대면 ㅎ님 강좌를 따라 다니기로 한 거죠. 하하. 스토킹하겠다고 말했는데 특강 일정을 알려주는 경우도 스토킹인지는 애매하지만…. 암튼 열심히 배워야죠. 🙂
다른 한편,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트랜스젠더 이슈로 특강을 할 수 있는 건, 제가 가진 어떤 권력 때문이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매우 많고, 트랜스젠더 연구를 전공한 사람은 저 외에도 여럿 있고, 트랜스젠더 이슈로 특강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저보다 강의를 더 잘하고, 글도 더 잘 씁니다. 그럼에도 제가 한다는 건 제가 가진 어떤 특권적 자원과 떼려야 뗄 수 없겠죠. 이것이 제가 가진 권력이라면, 어쨌든 이것이 권력이라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 해야 겠죠. 한땐 권력을 전면 부정한 시기도 있습니다. 권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이해한 시기도 있고요. 하지만 권력이 맥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저에게 활용할 만한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 것인가? 즉, 미약하나마 어떤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힘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것이 관건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암튼 내일은 극장에라도 갈까 봐요. 선택할 만한 영화가 없어 고민이지만요. 그리고 무척 피곤해서 늦은 밤이지만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10년: 책 등등
한 분야에서 10년이면 달인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제야 비로소 초보를 면하는 거다. 그러니 조급함을 느끼지 말고, 그냥 묵묵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
(그러데 생계는?)
책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모두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손님들은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거나, 모든 책을 다 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 점원도 있고, 거의 모든 책을 다 아는 점원도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난 부끄럽게도 가끔 책을 읽고, 내가 아는 책은 매우 적다. 그래서 손님들이 얘기하는 책의 대부분을 귀설어 한다. 그러니 내가 매우 당황하는 경우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으헉. ㅡ_ㅡ;; 내가 가급적 하지 않은 일은 무언가를 추천하는 거고, 그 중에서도 음악과 책은 어지간해선 추천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거니와, 내가 무언가를 추천할 정도로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 “저도 잘 몰라서요….”라고 얼버무리거나, “책은 추천하는 게 아니라서요.”라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드물게 추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상황과 자리가 추천해야만 할 때 뿐이다.)
혹시 이곳에 들르는 분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요?
암튼 책을 읽은 역사를 더듬으면 10년은 족히 지났다. 10년이라니. 20년은 안 되지만, 독서의 역사가 얼추 20년에 가깝다. (넘었나? ;;; ) 그런데도 난 아직 책을 잘 모르겠고, 모르는 책이 잔뜩이다. 지금 나의 단계는 출판사의 홍보문구에 덜 낚이는 정도. 때때로 광고문구엔 혹한다. 물론 베스트셀러에 낚이는 경우는 없지만. 내게 베스트셀러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딱 이정도다. 10년이면 달인이 된다지만 내게 10년 혹은 얼추 20년의 세월은, 초보는 간신히 면했지만 여전히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 목록을 고를 능력은 없지만, 내게 고양이 같은 책, 사과 같은 책, 김밥 같은 책, 육류 같은 책을 구분할 수는 있는 정도. 딱 이정도다.
그러니 10년이면 달인 혹은 전문가가 된다는 말에서 10년은 그냥 숫자일 뿐이다. 나처럼 더디고 무딘 인간은, 20년은 더 파야 할 거 같다. 아니 30년은 파야 간신히 뭐라도 중얼거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강의를 할 때마다, 글을 기고 할 때마다 자학한다. “아직 강의를 하고, 글을 쓸 단계가 아닌데…”라며. 하지만 강의도, 글도 최소한 10년이 지나야 내공이 쌓이니 이래저래 한참 멀었다.
내일이 걱정이다. 으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