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리카

우리가 함께 한 시간보다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길다. 고작 2주기인데 널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점도 애통하다. 고작 2주기인데…

햇살 뜨거운 날 오전 11시, 나는 네가 떠났다는 얘길 들었다. 먹먹했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너에게 최대한 늦게 돌아가려고 했다. 너에게 천천히 돌아가는 시간, 햇살이 너무도 뜨겁던 시간, 그 시간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생각을 언제 즈음 정리할 수 있을까?
안녕, 리카.
리카, 안녕.

나와 나의 고양이 이야기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Rica, the Cat 블로그를 운영할 당시였다. 리카를 내게 분양한, 길고양이 리카를 임보하셨던 분이 내게 물었다. 출판사에서 출판하자는 연락이 안 왔느냐고. 그럴리가 있나. 당시 고양이 블로그는 방문자가 5명 남짓이었다. 아니, 그보다 출판을 고민할 정도의 매력과 지명도가 없었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고양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작가는 여럿 있다. 내가 카페 활동을 하지 않고, 고양이 블로그를 찾지 않으니 잘은 모르지만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사람 역시 상당할 것이다. 고양이와 살며 겪는 성찰이나 어떤 고민을 탁월하게 쓰는 사람도 여럿 있을 것이다. 비슷하게 고양이와 관련해선 전문가도 넘친다. 웹툰에 고양이와 관련해서 조금만 안 좋게 그려져도 댓글이 난리나고 별점테러가 일어난다. 이런 웹에서 나의 고양이 블로그가 누군가의 주목을 받을리 없다. 고양이 블로그를 한창 운영할 당시엔 이곳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저 우연히 들리거나 해서 알게된 소수의 사람만 찾는 곳이었다.
비슷하게… 언젠가 세미나에서 어느 고양이 이야기를 들었다. 트위터의 유명 고양이라고 했다. 상당한 미모로 많은 이들을 홀리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것, 나와 상관없는 얘기다. 나의 고양이는 나를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고, 이곳에 들리는 분들만 알고 있다. 특별히 유명하지도 않다. 내가 쓰는 고양이 관련 글은, 그저 내가 쓰는 다른 많은 글처럼 이런저런 일상의 일부일 뿐이다. 혹은 내가 하는 여러 고민이 고양이와 살며 겪는 경험과 겹치는 찰나를 기록하는, 그저 흔한 기록일 뿐이다.
이곳이 변방의 이름 없는 블로그고, 나를 아는 사람이 매우 적듯, 나의 고양이 역시 세상에 무수히 많은 고양이 중 한 마리고 아는 사람 역시 매우 적다. 고양이카페와 같은 형식의 커뮤니티에서 나는 존재감 자체가 없다. 그러니 나와 내 고양이의 삶은 그저 흔하디 흔한, 주목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더구나 사진을 잘 찍어, 사진만으로 혹할 수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고양이와 관련한 어떤 글을 쓴다면 그것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내겐 기억을 기록하며 추억을 쌓는 행위에 불과하다. 내겐 딱 이 정도의 의미다.
하지만 내겐 이런 의미여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겐 그 의미가 다른가보다. 혹은 이런 이유로 나와 내 고양이 이야기는 어떤 다른 지점을 점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 나와 나의 고양이 바람

인간도 동물이니 인간과 비인간으로 구분해서 얘기하면, 난 인간과 비인간 간에 위계가 없다고 믿지 않는다. 없을리가 있나. 생명의 동등함은 지향하는 가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인간과 비인간의 생명이 동등하다면 지금 이런 글 자체를 쓰지 않겠지.
바람과 나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날 집사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내가 서열 상 아래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서열 상 더 위에 있다는 뜻이다. 바람의 생활방식에 내가 깊이 개입하고 있으며 나의 노동이 없다면 바람의 삶이 위험할 수 있다. 어느 날 내가 미쳐서 혹은 다른 어떤 독한 이유로 바람의 목숨을 끝내야겠다고 작정하면 그렇게 못 할까?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집사로 사는, 고양이를 숭배하는 사람들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바람의 혹은 집에 사는 고양이의 안위는 온전히 집사를 자처하는 사람의 ‘선한 마음’에 달려있다. 정말 위험하고 또 불안한 상황이다. ‘선한 마음’ 혹은 애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고양이의 삶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실제 적잖은 고양이가, 집사의 선한 마음이 끝남과 동시에 버려지고 거리 생활을 시작한다. 집에 사는 고양이의 생사여탈권이 집사에게 있다는 건, 집사의 선한 마음 혹은 책임감에 있다는 건, 둘의 관계가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고양이를 마냥 숭배할 수도 없고 좋게만 그릴 수도 없다. (그래서 “개와 토끼의 주인”이란 웹툰은 소중하다.)
그렇다면 ‘선한 마음’ 혹은 ‘책임감’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까? 인간과 비인간은 동등하다고, 정말 사랑하니까 동등하다고 말하지 않고 이 위계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어떻게 다시 고민할 수 있을까? 인간이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 인간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독점되어 있다고 말해봐야 별 의미는 없다. 이런 식의 언설이 통할 거라면 이 지구는 이미 부처님 뱃살이었겠지. 설득하지도 않고, 동정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관계를 다시 사유할 수 있도록 흔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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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떤 일과 관련한 고민 메모입니다. 혹은 답장은 아니지만 답장과 비슷한 성격의 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