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연휴 잡담

01

지난 금요일 저녁 집에 들어와 오늘까지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있습니다. 아, 약간 거짓말;; 택배 받으러 몇 발 나갔고, 오후 햇살 좋은 날 현관문 앞에 앉아 있기도 했으니 몇 발짝은 나갔네요. ;;;
02
자고 자고 또 잤습니다. 토요일엔 피곤해서 잤고 일요일엔 비염이 터져 잤습니다. 매일 아침 비염약을 먹으니 면역력이 떨어질 듯해서 호기롭게 일요일 아침엔 비염약을 걸렀습니다. 어김없이 터지네요.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두 시간, 밤 9시부터 월요일 아침 5시까지 정말 잠만 잤습니다. 비염 후유증으로 지금 온 몸이 쑤셔요. 마치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요. 털갈이 시기의 비염 말고, 일상적 비염이 터지면 다음날 온 몸이 쑤시긴 해요. 정말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 아파요. 이렇게 잤지만 오늘 오전에도 또 잤습니다. 푹 자고 싶었으니 성공한 것인가요?
03
바람은 좀 안정을 찾았습니다. 계속 숨어지내다 슬슬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내일부터 저는 알바하러 만날 외출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이번주엔 가급적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낼 예정입니다. 주말에 회의가 두 개 있으니 그 전엔 가급적 일찍 다니려고요. (과연?)
04
햇살 좋은 오후엔 현관문을 열어놓고 문밖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리카가 떠나던 날 아침 꾼 꿈보다는 햇살이 약했지만, 묘한 기대를 품었습니다. 난데 없이 고양이가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편했습니다.
05
삭신은 쑤신데 러빙헛 신촌점에 파는 냉면이 먹고 싶어요.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시원하거나 차가운 음식이 먹고 싶어서요. 아니면 어디 맛있는 콩국수 없을까요?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살아 나고 있다는 뜻이니 다행입니다. 바람도 와구와구 잘 먹고 있고요.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네.. 물론 리카도 악화되기 직전까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갔지요. 바람의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데 통장잔고가 ㅠㅠㅠ 알바비 들어오면 그때 가려고요.
06
사흘 동안 얇은 소설 한 권과 700쪽이 넘는 소설 [렛미인](총 2권)을 읽었습니다. 영화 [렛미인](감독: 토마스 알프레스슨 / 헐리우드 리메이크작 아님)을 무척 좋아하기에 소설도 읽었습니다. 영화가 괜찮으면 원작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는데 소설이 더 재밌어요. 소설을 다 읽고 영화를 다시 접하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별로라는 건 아니고요. 영화는 영화만의 특색을 잘 살렸습니다. (잠깐 검색했는데 영화가 더 좋다는 평도 있습니다. 흐흐. 전 영화에 빠진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둘 다 접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해요.)
작가가 의도한 티가 역력한데요. 퀴어 소설, 퀴어 영화로도 좋아요. 소설이 특히 만족스럽기에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기가 두렵기도 합니다. 종종 첫 번째 작품이 최고의 작품인 경우가 있으니까요.
07
아.. 정신이 헤롱헤롱. 내일 밖에 나갈 일이 걱정이네요. 세상이 매우 낯설겠죠.
08
아무려나 리카가 염려하지 않을 만큼, 질투하지도 않을 만큼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고양이] 근황… 잡담

시간이 참 안 가네요. 전 지난 화요일부터 “오늘이 금요일이지?”라는 착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전에 없이 길어요. 이런 일이 거의 없었기에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전 이제 괜찮다고 믿지만 몸은 그렇지 않은 걸까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아득한 걸까요? 그러고 보면 잠이 늘었습니다. 보통은 밤 11시에 잠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납니다. 이 정도 수면이면 충분하죠. 제가 딱 좋아하는 생활 방식이고요. 요즘은 이렇게 잤다간 다음날 종일 멍하고 아침에 조는 일이 많습니다. 밤 9시 30분이나 10시 즈음에 잠들어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듭니다.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고,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저와 힘들어 하는 제가 충돌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저는 괜찮다고 믿는 저만 인식하며 이제 괜찮다고 믿지만, 제 몸은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지도 몰라요. 결국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제가 슬퍼하거나 힘들어하는 걸까요?
주말엔 종일 집에서 방콕하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LGBT 영화제(SeLFF)에 가려고 했습니다. 끌리는 작품이 몇 편 있거든요. 하지만 관두기로 했습니다. 리카가 입원했을 때부터 바람과 종일 함께 지낸 날이 없어서요. 바람은 제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고양이는 구석을 좋아한다지만 리카가 있을 땐 이정도는 아니었지요. 그나마 제가 집에 들어와 더 이상 외출하지 않을 거란 의사를 확인하고서야 기어나옵니다. 이번 연휴엔 종일 집에 머물며 바람을 괴롭히기로 했습니다. 물론 나중엔 제가 귀찮겠지요. 어쩌겠어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혼자 지낸 적 없는 바람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니 조심스레 보내야지요.
사실 전… 죽음에 익숙한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례식에 참가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무덤덤하게 보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군요. 애정의 정도, 애착의 무게에 따라 다르더군요. 그리고 제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울고 싶은지, 슬픈지, 그냥 괜찮은지, 깔깔 웃고 싶은지, 아무렇지 않은데 울고 싶다고 믿는 건지, 이미 울고 있는 건지, 아무렇지 않은지, 숨고 싶은지… 제 감정이, 제 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있을 공간이 없는 점도 조금 아쉽습니다. 고양이와 동거하기 전, 집은 온전히 저 혼자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고양이와 동거한 이후, 혼자 있을 곳이 없습니다. 아울러 떠난 리카를 애도하기에는 살아 있는 바람이 신경 쓰이고 바람을 신경 쓰기엔 떠난 리카가 신경 쓰여 제 감정이 어떤 모습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리카를 애도하다가도 제 슬픔이 바람에게 전염될까봐 서둘러 감정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바람이라고 모르겠습니까만… 어리석은 저는 헤매고 있네요.
리카가 떠난 후 좋아진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집에서 사고를 쳤을 때 범인이 누군지 분명하게 가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가을부턴가.. 바닥 장판을 물어뜯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빨로 마구마구 물어뜯어 난장판으로 만들었죠. 전 바람을 의심했지만 확증할 수 없었습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집사 없을 때 사고친다고 리카가 범인인데 바람에게 화내면 바람이 억울할 테니까요. 근데 어제 밤, 바람이 바닥 장판을 물어뜯은 흔적을 발견하고선 “역시 바람이 범인이군..”이라고 구시렁거렸습니다. 첨엔 엄청 속상했지만 그 다음부턴 그냥 넘어갑니다. 집이 재개발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재개발 안 되면 낭패인 상황이랄까요.. (물론 집값 상승없이 5년은 버텼으면 하지만요..)
제가 리카와 만나 겪은 일을 어떤 만화나 소설, 영화에서 접했다면 참 통속적이라고 구시렁거렸을 법합니다. 화장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리카와 겪은 일을 단편소설로 꾸미면 재밌겠다는 상상을 잠시 했습니다. 물론 제 능력 밖의 일이죠. 저 대신 다른 누군가가 단편소설로 쓰면 좋겠다 싶었지만.. 이보다 더 통속적일 수 없겠다 싶어요. 물론 통속적이지 않은 인생이 어디있겠느냐만… 신파가 아닌 관계가 어디있겠느냐만… 초보집사가 겪었다고 하기엔 사건이 너무 몰려있달까요. 물론 저보다 사연이 훨씬 많은 집사는 세상에 넘치겠죠. 그러니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일 없을 겁니다.
아무려나 이별 이야기는 이제 그만 쓸까 합니다.

[고양이] 추스르기

첨엔 문자에 답장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답장은 할만 합니다. 전화를 받기는 힘듭니다. 울기 밖에 더 하겠어요.
+혹시나 이제야 소식을 접하고 문자라도 하시려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길 부탁드려요. 염려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지만 불시에 찾아오는 문자가 버거워서요.
집에 도착하면 리카가 좋아한 사료, 아미캣에 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새로 도착한 곳에서 잘 먹고 있겠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음식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딱 일주일만 향을 피우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49재때 마지막으로 향을 한 번 피울 예정입니다. 네.. 결국 제가 리카와 헤어지는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리카를 떠나보내는데 필요한 시간이며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바람은 칭얼거립니다. 전에 없던 행동입니다. 특히 아침에 씻으러 갈 때면 불안한 듯 자꾸 따라오며 웁니다. 제가 씻으러 가는 것이 곧 외출 준비란 걸 알고 있는 거지요. 리카가 있을 땐 이러지 않았습니다. 저랑 같이 있을 때면 계속 놀아달라고 칭얼거립니다. 리카가 있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바람도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거지요.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겠지요.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겠지요. 그러니 억지로 익숙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울고 싶을 땐 울고, 바람이 놀자고 하면 바람을 마구마구 괴롭히면서 놀고, 밥 때가 되면 먹고…
그나마 글이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예전에 쓴 글과 지금 쓰고 있는 글. 글이라도 없었다면 저는 짜부라졌을까요? 제가 살아가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려나 염려해주시는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리카 병원비와 장례비로 지출 타격이 상당하네요. 물론 제 욕심이 지출 규모를 키웠지만요. 화장하고 유골을 돌로 만들어 함께 돌아오는 버스에서 “열심히 돈 벌어야겠다”고 구시렁거렸습니다. 올 해 꼭 출간했으면 하는 원고가 있는데, 열심히 써서 출판할 잡지를 알아봐야겠습니다. 출판할 곳을 못 찾으면 낭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