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내 글의 유일한 독자는 나였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읽을 유일한 독자였다. 글을 쓰는 데 있어 관건은 내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였다. 물론 지금도 내 글의 유일한 독자는 바로 나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족한 적 없지만…ㅠㅠ
아무려나 유일한 독자를 나로 삼으며 쓴 글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폐적 글쓰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이다. 다른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으니 극소수의 아는 사람만 읽을 수 있고 그 외 사람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쉽게 쓰라는 말, 친절하게 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오랫 동안 나는 내 글의 색깔이란 걸 유지하고 싶었다. 착각이었다. ‘자폐’적으로 쓰는 것이 글의 색깔은 아니다. 글의 색깔을 유지하는 것과 쉽고 친절하게 쓰는 건 별개다.
언제부턴가 쉬운 글쓰기를 좀 더 확실하게 지향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단 한 번도 쉬운 글, 독자에게 친절한 글쓰기를 지향하지 않은 적 없다. 내가 애호하는 몇몇 저자는 다들 쉽고 또 친절한 글쓰기를 한다는 점에서 나의 지향점도 그러했다. 그래서 결코 쉽게 쓴 글이 아닌데도 쉬운 글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그런 깨달음과 함께 의도적으로 쉬운 글을 지향하고 있다. 쉽게, 더 친절하게. 물론 지금도 성공적이진 않다.
쉽고 친절한 글쓰기로 조금씩 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계기는 독자를 상상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이 글의 독자는 누구인가? 결국 관심 있는 사람만 읽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는 누구인가? 혹은 이 글이 실릴 잡지의 주요 독자는 어떤 사람인가? 이 지점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도 잘 못한다.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헤맨다. 내가 가정하는 독자를 매우 추상적으로 상상하며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독자를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용어를 사용하거나 설명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걸 확연히 깨닫는다.
상반기에 마무리한 몇 편의 원고를 예로 들자. 많은 글에서 ‘이원 젠더’란 용어를 사용했다. 내가 쓴 글에 빠질 수 없는 용어다. 내가 늘 문제 삼는 용어다. 이 용어를 쓰며 어떤 글에선 이 용어의 뜻을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그 글이 실릴 매체의 독자라면 이원젠더란 용어의 뜻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용어를 설명하는데 두어 문장을 할애하고, 그리하여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두어 문장 못 하는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다른 어떤 원고는 달랐다. 그 원고를 읽을 소수 독자는 이원 젠더란 용어가 낯설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어떤 사람이 읽을지 가늠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젠더 이슈 자체를 낯설어 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야 했다. 핵심은 이것. 이원 젠더가 아니라 젠더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독자라면 이 용어와 관련한 간결한 설명을 ‘이원 젠더’란 용어가 등장할 때 함께 제공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엄격하게 설명하면 ‘이원 젠더’만으로 논문 한 편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매우 간결한 설명이면 충분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인식하고 이를 자연질서 삼는 사회 제도’ 정도? 이원 젠더는 이것 이상이지만 그 이상을 설명하는 건 무리였다. 이원 젠더 자체를 논하는 글이라면 더 정교하게 설명해야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충 이 정도? 이 글에서 사용하는 이원 젠더라는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예전엔 몇몇 주요 용어에 설명을 제공하는 일을 꺼려했다. ‘어떻게 이 정도도 모를 수 있어’라는 오만함 혹은 건방진 태도의 반영이다. 그래서 편집자가 설명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제안했을 때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번 협상을 하고서야 겨우 반영했다. 하지만 나 역시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이슈의 글을 읽을 때, 모든 용어를 익숙해하며 읽지 않는다. 어떤 용어는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는데..라고 구시렁거리며 읽는다. 그러니 쉽고 친절하게 글을 쓰는 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아무려나 ‘이원 젠더’를 친절하게 설명한 구절이 들어간 글이 출판될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런 식의 고민을 조금씩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하면서 더 쉽고 친절하게 글을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