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2007.08.06.월, 15:55, 아트레온 7관 9층 J-5
일전에 읽은 [검은 집]은, 어쩌면 마지막 부분만 없었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욕으로 느껴지는 사족을 덧붙임으로서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검은 집]을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다.)
오전 회의를 하고 나온 길에, [기담]을 읽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꽤나 괜찮은 영화를 찍었구나 하는 감탄. 우울증적 사랑을 이렇게 근사한 이미지로 만든 역량에 일단 박수를! 장르 상 이 영화는 “공포”란 형식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비록 영화 내용 중에 공포가 나오긴 하지만, 공포가 초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지독한 집착, 그리고 사랑이라는 우울증적 통합을 공포라는 도구 혹은 형식을 사용해서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감독이 공포를 의도했다면 꽤나 미안한 말이지만, 공포보다는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 이미지를 그려가고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 등이 더 매혹적이고, 그러다보니 공포 외적인 부분들이 더 인상적이다. (굳이 장르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의미 있는 말은 아니네;;)
(이 영화의 경우, 줄거리 설명보다, 이미지 한 컷이 더 효과적이어서 스틸컷을 찾아봤는데, 괜찮은 게 없네… 아쉽…)
#이제부턴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는 총 세 개의 에피소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진행하는데, 루인으로선, 인영(김보경 분)과 동원(김태우 분)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죽은 동원을 자신(인영)과 동일시하다, 동일시한 동원은 살아있고 자신(인영)이 죽은 것으로 믿는 과정. 그리하여 죽은 사람은 동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 인영이고, 동원으로 살아가며 죽은 인영이 유령으로 나타났음을 깨달았을 땐,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한다(둘은 완벽하게 합치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끝까지 인영은 죽은 유령이며, 살아있는 자기(이땐 동원)의 속에 들어와 내(이땐 동원)가 환각을 일으키도록 하는 존재라고 믿는 인영의 모습을 보며, 아팠다. 아니 슬펐다. 아니, 그냥 울지도 못하고 체한 감정이었다.
공포의 코드들이 다소 진부할 수는 있다 해도, 영화의 과정에서 무섭기도 하거니와, 그 공포가 끔찍하거나 죄악으로서의 처벌의 의미가 아니라, 슬픔이란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상대방을 완벽하게 자신으로 믿으며 진짜로 죽은 사람은 자신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장면들 때문에, 한 번 더 읽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