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 음향 녹음 발달사 프로젝트라면 음향 기사들과 인터뷰를 하고, 1990년대 초반의 퀴어운동 역사쓰기 프로젝트라면 그 당시에 활동한 활동가들, 방송작가나 PD들을 인터뷰 하는 식으로. 인터뷰한 자료는 녹취를 풀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 진행자들이 직접 녹취를 푸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분량이 상당한데다 다른 일도 많아 녹취만 푸는 알바를 구할 때가 많다. 개인 연구일 땐 대체로 연구자가 직접 인터뷰 녹취를 풀지만 가끔씩은 알바를 구하기도 한다.
모든 인터뷰는 연구자 혹은 프로젝트 기획단의 주제의식에 따라 내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질문을 구성하고 인터뷰 참가자와의 관계에서 반응을 끌어내는 일 자체가 연구의 핵심이기도 하고. 그러니 인터뷰 내용은 그 자체로 연구성과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내용을 가장 먼저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연구자 혹은 프로젝트 기획단이며 알바로 녹취를 푸는 사람이 인터뷰 내용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하다(정확한 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알바로 녹취를 푸는 사람은 인터뷰 내용을 사용할 수 있을까, 없을까? 만약 연구자의 관심과 인터뷰 녹취를 푸는 사람의 관심이 일치하거나 유사하며, 녹취 알바를 하는 사람 역시 ‘연구자’이기도 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생계형 알바로 한국 퀴어 운동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인터뷰 파일을 풀고 있다. 녹취를 풀며, 그동안 몰랐거나 큰 줄기만 알고 세부사항은 몰랐던 내용을 배우고 있다. 녹취 푸는 일 자체는 괴롭지만 내용은 무척 신나는 일이라 좋아하고 있긴 한데 …. ‘난 이 내용을 다른 글이나 강의 같은 자리에서 사용해도 괜찮을까?’란 고민에 빠졌다. 알다시피 나 역시 퀴어/트랜스젠더와 관련 있는 글을 쓰고 아주 가끔은 강의/발표도 나간다. 내가 나를 연구자로 인식하건 하지 않건, 활동가로 인식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이 녹음 파일의 내용은 내가 사용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아니 활용한다면 무척 풍성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근데 이 녹음 파일의 내용은 다른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작업한 결과물이다. 아마도 그 연구자는 인터뷰 내용을 자신이 가장 먼저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테다. 그럼 난 들어서 ‘알고’ 있다고 믿는 내용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른 척 해야 할까? 사용한다면 어떤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고민은 “혀 논란”과 유사하지 않을까? (표절이다, 아니다를 따져 묻는 건 아님.)
물론 인터뷰 파일에 있는 내용들은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들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이 바닥에 있다보면 언젠간 알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 특정 누군가의 연구 과정에서 사용할 자료를 먼저 접했다는 점에서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내용의 출처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도용일까? 참고문헌 표시, 인용의 출처 표시는 내가 도움 받은 글을 쓴 사람에게 존중을 표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연구를 위해 인터뷰 한 내용을 알고 있는 나는 어떤 식으로 표시할 수 있을까?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이 모호하다. -_-;; 새삼스럽진 않지만 … 하, 하, 하;; 글을 쓰다가 깨달았는데, 녹취알바의 윤리(?)와 출처표시 방법을 고민한 거 같다. 근데 양쪽 모두 어렵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