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냥이들 중 리카를 특별히 편애하지만, 이제까진 특별한 애정표현을 안 했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이 제가 리카를 편애한다는 걸 알아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아, 물론 그들은 제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 신경도 안 쓰겠지만요. ;;; 아무튼 지금까진 그랬지만, 이틀 전부터 그냥 리카를 향한 저의 편애를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틀 전엔 음식을 기다리며 저를 바라보던 리카에게 특별식을 주었습니다. 리카가 무척 잘 먹어 기뻤습니다. 음하하. 농담처럼 리카를 납치하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알고 있습니다. 길이, 동네가 집인 리카를 좁은 방에 가두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리카가 찾아오진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저 저의 애정을 책임감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겠죠.
제가 음식을 내놓는 시간에 항상 리카가 저를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리카와 만날 수 있는 날도 있고 못 만나는 날도 있습니다. 아무려나 리카와 만나도, 리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뭅니다. 항상 뒤로 밀리거든요. 동네고양이들 간의 위계질서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아무려나 사흘 전, 리카가 음식을 일찍 먹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리카는 음식을 다 먹자, 물을 마신 후 제 갈 길을 가는데요. 저를 향해 얼굴을 돌리더니 “야옹”하고 울었습니다. 아아 … ㅠ_ㅠ “밥 먹는데 왜 자꾸 쳐다보는 거냐!”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잘 먹었다”는 인사로 이해하렵니다. 이히히.
이틀 전에도 리카는 음식 먹는 순서에서 뒤로 밀렸습니다. 그렇게 밀릴 때마다 리카는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해맑은 얼굴로 삥 듣으려는 표정이랄까요. ;;; 흐흐. 저는 결국 캔으로 된 사료를 슬쩍 꺼내 리카 근처에 두었습니다. 리카는 열심히 먹더군요. 기뻤어요.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확인하니 무려 카노가 음식이 든 봉지를 들고 도망쳤더군요. 그렇게 도망쳐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먹고 있었습니다. 카노의 미운짓이 얄미웠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리카가 깜짝 놀랐다는 거죠. 리카는 골목길을 가로질러 다른 곳에 있는 차 아래로 숨었습니다. 캔은 그대로 두고요. 저는 캔을 챙겨, 리카가 있는 자동차 아래로 가져다 두었습니다. 리카는 다시 캔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다른 고양이들은 어리둥절하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근데 분명 카노보다 덩치가 큰 냥이들도 있었는데 카노 음식을 뺏진 않더군요. 덩치와 위계는 다른 거겠죠?
어젠 사료에 캔을 섞어 주었습니다. 밖에 나가니 여러 냐옹이들이 몰려들더군요. 하루 종일 굶었던 거 같습니다. 대충 경향을 보니, 제가 음식을 주기 전에 충분히 먹었으면 안 나타나고, 못 구했으면 나타나는 거 같습니다. 다행이죠. 아무려나 그 와중에 리카도 보였습니다. 이힛. 저는 우선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치웠습니다. 음식을 두고, 쓰레기를 치우면 다들 도망가거든요. 음식을 먹다 도망치면 건강에도 안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쓰레기를 치우는데, 리카가 한쪽 구석에서 자꾸 저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곳에, 리카가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곳에 음식을 두었습니다. 성공! 다른 고양이들은 매우 당황했지만, 리카가 가장 먼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 제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덩치 큰 고양이가 리카를 밀어냈더군요. 밀려난 리카는 다시 자동차 아래서 저를 보았습니다. 리카, 바보! 이 순둥이!! 마침 쓰레기 봉지를 버려야 해서, 玄牝으로 돌아가 음식을 조금 더 챙겨왔습니다. 그리곤 리카 근처에 챙겨온 음식의 일부를 두었습니다. 리카가 먹기 시작하는데요.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또 다른 고양이에게 밀려났습니다. 이이… 리카, 이 순둥이!! 저는 안타까움으로 리카를 보았는데요. 리카 역시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다 저를 바라보며 슬슬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리카를 계속 바라보았고, 리카 역시 저를 보며 이동하더니, 제가 등지고 있던 자동차 아래로 갔습니다. 그거야! 저는 자동차 아래, 리카와 가깝지만 너무 가깝지 않는 곳에 남은 음식을 두었습니다. 리카 역시 만족스러운듯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리카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죠. 매우 적은 분량만 남았으니까요. 그래서 리카는 사료음식을 다 먹자 아직 배가 고픈 듯, 제 앞에 앉아선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갈등했습니다. 주머니엔 캔이 있었거든요. ;;; 리카는 일단 저를 한동안 보다가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낮은 담장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우리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쩌겠어요. 다시 고민을 하다, 리카와 떨어진 곳에서 저는 결국 캔을 꺼냈습니다. 바닥에 놓아두고 저는 멀찍이 떨어졌죠. 리카는 얼른 달려와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다른 고양이들이 리카를 밀쳐낼까봐 리카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리카 역시 음식을 먹는 내내 저를 확인하더군요. 아니, 그냥 신경쓰는 걸까요. “밥 먹는 거 그만 구경해!”라는 의미로. 흐흐. 아무려나 그렇게 밤 늦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자. 농담으로 말했던 리카 납치 기획을 정말 실천해야 할까요?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리카를 납치하려면 카노도 같이 납치해야 합니다. 둘은 늘 붙어다니거든요. 혼자만 납치하면 분명 외롭고 또 우울할 테니까요. 아무려나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은 리카가 합니다. 그리고 납치를 못 해도 괜찮아요. 제가 이사를 해도 괜찮고요. 애정은 언제나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것을, 저는 리카에게서 배우고 있으니까요.
[태그:] 리카
[길고양이]주절주절: 겨울, 피아노, 고양이-리카, 웹 접속
01
눈이 내렸다. 낮 12시 전후로 대충 30분 정도. 카페에 앉아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설렘과 우울이 흩날렸다. 바닥에 쌓이진 않았다. 젖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닥의 물기와 함께 셀렘과 우울도 증발할까? 하지만 결국 또 순환하겠지.
02
Keith Jarret의 The Koln Concert를 듣고 있다. 서늘한 피아노 소리. 키쓰 자렛의 피아노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지난 일요일의 추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였다. 바람이 심하게만 불지 않았다면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날씨였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쌀쌀한 게 아니라 정말로 추운 날씨. 그 날씨면 내가 깨어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름날의 더위에 죽어가던 내가, 겨울이 오고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면 그제야 비로소 내 몸도 깨어나고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피아노 소리와 잘 어울려서 좋다. 나는 이 계절의 서늘함이, 푸른 빛이 감도는 햇살이, 피아오와 어울리는 차가움이 좋다. 무엇보다 키쓰 자렛의 피아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 기쁘다.
03
어제 밤엔, 유섹인 강좌가 끝나 사람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느라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귀가. 고양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주변 쓰레기 봉투가 뜯어져 있었다. 안도했다. 아직은 쓰레기봉투를 뜯으며 음식을 구할 능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음식을 챙겨 나왔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카노가 슬쩍 나타났다. 카노가 한참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리카도 나타났다. 잠시 나와 눈을 맞추더니 음식을 먹으러 갔다. 리카와는 참 오랜 만이다. 거의 나흘 만인가? 그동안 통 안 보여 걱정했는데, 아직 살아 있었나 보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난 겨울 추위에 동사했는지, 로드킬이라도 당했는지, 동네주민의 혐오폭력에 아픈 건지, 행여 내가 준 음식에 아팠던 건지, 이런저런 걱정을 했는데,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려, 음식을 먹으러 오는 시간이 늦었을 뿐인 거 같다. 확실히 리카는 너무 예쁘다. 그리고 나와의 거리도 많이 줄었다. 예전엔 1.5미터 정도만 다가가도 서둘러 도망갔는데, 지금은 그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눈을 맞추는 정도다. 걱정이다. 음식을 먹다가 사람 소리에 움찔하다가도 내가 보이면 안도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냐옹이보다 리카를 더 좋아하는 나는, 이사갈 때 리카를 납치할까 하는 고민도 슬쩍 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순전히 리카가 결정할 부분이다. 리카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04
날씨가 좀 풀리고 있다. 사흘 만에 웹으로 돌아왔다. 지난 이틀 동안 인터넷 접속이 원할하지 않았다. 행사에 학회 이사로 분주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몸은 웹에 있다. 그래서 웹이 그리웠다. 인터넷이 일상인 시대, 인터넷을 어릴 때부터 경험한 세대에겐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웹이 그리움의 공간이 되겠지. 웹이, 카페가,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고향이 되겠지.
[길고양이] 길고양이와 공존하기: FHV의 가능성에 도움 요청, 서로 길들지 않으면서 살아가기
01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야 할까요? 원래 지금부터 할 얘기는 나중에, 한두 달 뒤에나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이 생겼기 때문이죠.
어제 밤에도 늘 비슷한 시간, 냥이들 넷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들을 그저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기척은 없었는데 기침 소리 같았죠. 냥이 셋이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 근처 집에서 나는 소린 줄 알았습니다. 무심하게 넘겼습니다. 다시 기침소리. 사람의 기침소리라기엔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 발소리에도 가만히 있던 냥이들이 기침소리엔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더군요. 또 한번 기침소리가 날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냥이 중 한 아이(리카로 추정)의 소리였습니다. 자주 리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준 카노는 거의 공황상태더군요. 기침소리가 날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고, 때로 갑자기 사람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멀리 도망가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냥이들을 만나며 처음으로 들은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전 공황상태에 빠질 뻔했습니다. 혹시나 헤르페스/허피스/허페스 바이러스(FHV, Feline Herpes Virus, http://catbook.kr/15)가 아닐까 싶어서요.
그간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이 추운 겨울, 혹시나 허피스 바이러스에 걸리면 어떡하나 였습니다. 그래서 가게에 갈 때마다 L-라이신이 있느냐고 물었죠. 서너 곳을 돌아다녔지만, 아는 주인이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걸까, 하며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카가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는 걸 안 지금, 어떻게든 감기약을 구해야겠지요. 더 큰 걱정은, 감기약을 구해서 먹이지 않으면 FHV의 전염성으로 일대 모든 고양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약은 어떻게 구해봐야죠. 제가 청하고 싶은 도움은, 혹시나 약 말고도 감기에 좋을 법한 음식이 따로 있을까 하는 겁니다. 일상적으로 줄 때, 따로 챙겨주면 좋을 음식들이요. 검색을 해도 관련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요. 아마도 냥이와 함께 사는 분들이거나 길냥이와 친하신 분들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02
무서운 사실 하나는 어제야 비로소 깨달았는데, 제가 사는 곳 주변의 7~8 고양이(추정)들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거죠. 첨엔 그냥 저를 경계하느라 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매우 적은 경험에 따르면 작은 소리라도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냥이들은 어느 순간에도, 어느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더군요. 기침 소리가 냥이들에게서 들은 유일한 소리라는 걸 깨달았을 때, 전 조금 무서웠습니다. 누군가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방사하는 과정에서 목소리까지 없앤 걸까요? 물론 도시에서 살아가며, 전략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목소리를 없애는 수술까지 한 경우라면 ….
(중성화 수술을 하고 방사한 경우라면, 또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요? 그리고 원래 길고양이는 소리를 잘 안 내나요?)
03
이쯤되면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냥이들에게 밤에만 음식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는 딱히 할 만한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 혼자 고민하고, 검색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른 듯하네요.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지난 11월 초, 어느 늦은 밤, 평소와 같은 시간 玄牝으로 돌아가는데, 집 근처에서 어느 냥이가 쓰레기봉투를 뜯다가 제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자동차 아래로 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무언가가 제 뒤통수를 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가게에 가서 고양이 음식을 사려고 했지만, 11월 중순까지 제 생활은 무지하게 바빴죠. 아침은 어떻게 김밥을 사 먹더라도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 건너뛰거나 알바 가는 길에 서둘러 김밥 한 줄 사들고 가는 식이었죠(참고로 저 하루 두 끼 먹는 인간;; ). 그러니 가게에 갈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냥이들에겐 매우 짠 음식이지만 참치캔 중간 크기를 집 근처에 있는 식당건물과 낮은 담 사이에 두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그곳’은 바로 여깁니다.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이라 발소리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곳이겠더라고요.
그 시기엔 냥이가 몇 이나 있을까 싶었고, 설마 먹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확인하니, 깨끗하게 비웠더군요. 정말 깨끗하게. 하지만 참치캔을 준 건 그 후에도 몇 번 정도입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가장 큰 사이즈로 고작 몇 번. 알바 전에도 알바 후에도 행사 준비로 바빠, 참치캔을 살 정신이 없기도 했고, 참치캔이 고양이에게 좋은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조공하는 참치캔은 고양이들에게 그저, 우연히 생긴 득템 정도의 의미라면 충분했죠. 아울러 저의 책임감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골목을 생태계 삼아 살아가는 냥이들에게 몇 달 뒤면 떠날 제가 개입한다면 얼마나,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서로에게 길들지 않길 바랐습니다. 저의 조공이 그저 로또 같은 것이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학회의 바쁜 일정이 지나고 그 다음주 어느 날, 저는 가게에 들러 사료를 샀습니다. 조금 큰 접시도 같이 샀죠. 그날 밤, 사료를 담은 접시를 참치캔 두는 곳에 두었습니다. 반신반의했습니다. 얼마나 먹을까? 하지만 다음날 아침 깨끗하게 비운 모습을 보았을 때의 고마움이란. 그리고 복잡한 심경이란. 그렇게 매일 밤, 대충 11시를 전후한 시간에 음식을 담은 접시를 그곳에 두기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이면 깨끗한 접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딱 이 정도를 바랐지만, 그건 저의 의지였을 뿐입니다. 그 다음주 월요일 밤, 다른 행사를 끝내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그곳’ 근처에 냥이의 귀가 보였습니다. 카노였습니다. 카노는 제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자동차 아래로 숨었습니다. 어디 멀리 도망가진 않았습니다. 저는 玄牝에 들러 음식을 챙겼고, 그곳에 두고 떠났습니다. 다음날도 누군가 기다렸고, 며칠 뒤엔 기다리는 이가 혼자가 아니라 때로 리카와 카노가, 때로 카노와 아리가 자동차 아래서 식빵 굽는 자세로 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더 며칠 뒤엔 아예 노아가 낮은 담장 위에 앉아 있다가 제가 나오자 서둘러 자동차 아래로 숨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떤 냥이는 제가 근처에 있으면 꼼짝도 안 하고, 어떤 냥이는 제가 근처에 있거나 말거나 음식을 먹으러 가고, 어떤 냥이는 저를 빤히 쳐다보고.
그리고 이틀 전, 냐옹이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저로선 낯선 얼굴인데 냐옹이는 저를 기억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제 발소리를, 제 얼굴을, 혹은 저의 어떤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에 서둘러 숨다가 제 냄새를 맡았는지 고개를 내밀고 저를 바라보는 표정. 그 표정은 명백히 저를 알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어젠 냥이 넷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냐옹이도 있었습니다. 곤혹스럽게도, 냐옹이는 玄牝이 있는 건물까지 따라오려고 하더군요. 가는 길에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玄牝에 가서 음식을 챙겨나오기에 곤란했습니다. 물론 냐옹이가 저를 따라온 건, 이틀 전 제가 항상 주머니에 챙겨다니던 캔을 줬기 때문이겠죠. (네, 혹시나 아침이나 다른 시간에 우연히 마주치면 주려고 캔을 두세 개 정도 항상 챙겨 다닙니다. ;;; ) 카노는 제가 항상 玄牝에 들렀다가 나온다는 걸 알지만, 냐옹이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더군요.
내겐 낯선 고양이와 나를 기억하는 고양이들. 이 기묘한 관계. 애당초 모든 관계는 저의 의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모든 고양이들은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는 거죠. 제가 몇 시에 오는지, 어떤 절차로 음식를 주는지,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모든 걸 알고 있는 거죠. 저만 모를 뿐입니다.
아무려나 어제 밤에도 음식을 챙겨 그곳에 갔습니다. 냐옹이는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나치게 가까워지자(냐옹이는 음식을 두는 그곳에 있었거든요-_-) 서둘러 저멀리로 도망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쁘고 또 섭섭하고, 안도하고 또 …. 네, 복잡했습니다. 누구와도 필요 이상의 거리를 좁힐 의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 필요는 없습니다(전 이미 냥이에게 복종하고 있지만;;). 그래서 냐옹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면 그 순간은 기뻤겠지만, 그 이후엔 내내 괴로웠겠죠. 또 한 가지 다행인 건, 다른 사람들 발소리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거죠. 그나마 제가 근처에 있으면 사람이 지나가도 걱정을 덜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경우엔 매우 빠른 속도로 도망가더군요. 이건 정말 다행입니다.
04
어제 밤엔 또 다른 화가날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화를 낼 일은 아니죠. 밥그릇을 항상 밖에 두었는데 누군가가 치워버렸더군요. 그곳이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곳이란 의미죠. 그 근처에 사는 누군가가 그곳에 냥이가 드나든다는 걸 알면 언제든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죠. 아울러 저와 냥이에겐 밥그릇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그냥 길에 버린 쓰레기죠. 그래서 밥그릇을 치워버린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또 어쩔 수 없구나, 했습니다.
제가 밤에만 음식을 주는 건 사람들 때문입니다. 아침, 출근(?)하기 전에도 음식을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고양이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우연히 출몰했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풍경일 수는 있어도, 존재 자체를 인식하진 않을 겁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동네 고양이들을 인식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하는 거니까요. 아울러 아침에도 밥을 줘서 사람들에게 고양이의 존재와 위치를 노출한다면, 그건 또한 고양이를 매우 혐오하는 이들에게도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니까요. 그래서 전 항상 늦은 밤, 사람들이 거의 안 다니는 시간에만 음식을 줍니다.
물론 제 생활비가 적어서이기도 합니다. 아니, 사람 걱정은 음식을 주면서부터고, 사실 제 생활비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한 봉지 정도를 사고, 캔도 여럿 사고 있는데, 그러고 나니 등골이 휘네요. 그래서 전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제가 7~8 고양이를 모두 양육할 건 아니니까요. 저의 역할은 그저 늦은 밤에 음식을 주는 정도니까요. 어쩌면 하루 종일 굶었을 냥이들에게, 허기를 면할 정도, 혹은 목숨은 부지할 정도의 음식만 주는 정도가 저의 역할이니까요. 제가 마당 넓은 주택에 살았고, 월 수입이 많았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요. 사실 지금은 매주 사료 한 봉지에 캔 몇 개 사는 것으로도 충분히 과도한 지출이거든요. 하하.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늦은 밤에만 딱 한번, 음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늘 불안합니다. 자주 마주치던 냥이가 안 보이면 걱정하죠. 제가 모르는 시간에 로드킬을 당한 건지, 어떤 사람의 괴롭힘에 혼자 앓고 있어서 못 나오는 건지, 영역을 바꾼 건지, 전날 제가 준 음식에 문제가 있어 아픈 건 아닌지 …. 그나마 괜찮은 상상은 낮에 수확이 좋아 저의 음식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경우죠. 사실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걱정 중 하나는 사람들의 괴롭힘과 함께, 제가 사다 주는 음식이 고양이들에게 괜찮은 걸까, 입니다. 혹시나 제가 준 음식에 문제가 있어 냥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겠죠. 그래서 전날 만난 냥이가 다음날도 나오길 희망합니다. 서로 인사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안부와 생존이 궁금한 거죠.
네. 압니다. 이건 제가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전 고양이들의 생태계 중 극히 일부분일 뿐,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 제가 이사를 갔기에 지금 동네에 가끔 들러 음식을 줄 수는 있어도 매일 음식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와도 고양이들이 별탈 없이 지내길 바랄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 개입하는 건 서로에게 위험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인간인지라, 저의 안심을 위해 어제 만난 냥이를 오늘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안심하거나 애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05
그나저나 냐옹이가 걱정입니다. 다른 냥이들(리카나 카노를 비롯한 다른 냥이들)은 저와의 거리를 확실하게 유지합니다. 그건 다행이죠. 하지만 냐옹이는 제게 너무 달라붙을 기미가 보여 걱정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부비부비를 하거나 무릎묘의 기질까지 보일 정도죠. 태도만 보면, 집으로 들이는 것도 가능할 정도지만 이건 저의 착각일 겁니다. 그나마 집으로 들일 수 있다면 이사 가지 전에 서로에게 적응해서 같이 가면 됩니다. 냐옹이는 길고양이에서 집고양이로 생존 방식을 바꾸고, 저는 별도의 입양 없이 냐옹이와 함께 살면 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말처럼, 글처럼 모든 게 쉽다면 세상 일이 무슨 걱정이겠어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냐옹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남은 시간 저의 고민 거리겠지요. 물론 모든 결정은 냐옹이가 하겠지만요.
(참고로, 냐옹이가 얼마나 미묘냐면, 만약 집에서 살았다면 스노우캣의 고양이보다 더 예뻤을 거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