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 2007.08.21. 화, 17:00, 명동CQN, 3관 9층 F-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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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가 이 정도면 만날 가겠다. 흐흐. 아트레온이 투명유리창을 통해 바깥 날씨를 충분히 활용한다면(그래서 낮에 영화관에서 나오면 눈이 부시다, 그리고 이런 경험으로 멀티플렉스는 밝은 줄 알았다 -_-;;), 메가박스 신촌은 어둡고 시끄럽고 산만한 느낌이었다. 이런 메가박스 신촌을 먼저 경험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명동CQN에 갔을 때, 꽤나 괜찮다고 느꼈다. 지나치게 어둡지 않은 것도 좋았고(즉, 입장을 기다리며 책을 읽기에 적당했고)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았다. 소위 멀티플렉스라면서도 관객이 별로 들지 않을 법한 영화도 곧잘 튼다는 점도 매력이고([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은 9명이었다).
명동CQN이 있는 건물의 거리에 들어섰을 땐, 별천지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촌도 많이 붐비는 곳이고 홍대 앞거리도 많이 붐비는 곳이고 이대 앞거리도 많이 붐비는 곳인데, 명동인가? 아무튼, 명동CQN이 있는 거리는 낯설고도 익숙했다. 이 낯섦은 서울에 살면서도 이런 느낌으로 붐비는 곳은 처음이라고 중얼거렸다. 그 거리를 걷다가 문득 부산의 서면이 떠올랐고, 그제야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이 든 이유를 깨달았다. 당연히 사람마다 다른 식으로 느끼겠지만, 루인에겐 그곳이 서면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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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인 바로 앞에 줄을 선 두 명의 고등학생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 표를 구매하는 소릴 들으며, 확실히 서울에 산다는 건, 다른 지역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중얼거렸다. 물론 이런 장르의 문화만이 ‘다양한’ 문화는 아니지만, 부산에 살았다면 혹은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살았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별로 들지 않는 영화를 접할 기회가 훨씬 적었으리라. 물론 고딩시절 영화는커녕 티비도 전혀 안 봤다는 점은 별도로 하고. 서울에 유학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점이었으니까.
※스포일러 없음. 이 글에 스포일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시작할 때 이미 영화 내용을 다 알려 주고, 그렇게 알려준 대략의 내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스포일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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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와 관련해선 그다지 할 얘기가 없다. 영화를 읽기 이전에 너무 많은 상념들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고, 영화 자체에 큰 감흥을 못 느꼈을 수도 있고.
이미 알려진 내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기억을 어떻게 기억/재현할 것인가), 란 측면에서 접근하면, [화려한 휴가]보단 낫다. 물론 두 영화의 성격 상, 이 둘을 간단하게 비교하는 덴 무리가 있다. [화려한 휴가]는 드라마로 만들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는 다큐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까.
혹은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이미 너무도 많이 접했기 때문일까? 감독의 주장(“인권”)이 너무도 노골적이어서? 순전히 루인만의 느낌이겠지만, 감독의 주제 의식을 너무도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어서 이 영화를 읽으며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다큐란 형식은 꽤나 성공적인 선택이다.
그럼에도 몇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흔히 이 영화 리뷰가 얘기하는 장면-팬티만 입고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이 아니라, 감시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음에도 밖에서 감시하고 있을 거야, 라고 얘기하는 모습,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도 감시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서 두려워하며 숨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자수하려는 바코(?)의 모습, 그리고 밝은 대낮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걸어가는 모습. 감금수용소인 아틸라에 있을 때의 상황이나 폭풍우가 치는 밤의 장면이 아니라, 밝은 대낮에 자신들이 탈출했고 그래서 잡힐 수도 있다는 상황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지나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거나 지나치게 움츠러드는 모습들(사실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에서 이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다큐라는 형식을 통해 건조한 척, 개입하지 않는 척 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효과적인 것 같다. 이런 건조한 것 같은 카메라를 통해, 감금과 탈출의 느낌이 더 잘 드러난달까. 더구나 비스듬히 잡는 장면들은 인상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