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설 이후, 전자렌지 득템

01
이틀, 정확하게는 49시간을 비웠다.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집이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진 상상 못 했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니, 겨울 이불이 매트리스 아래에서 뒹굴고 있었다. 아놔…
그래도 애들은 다 건강해서 다행. 🙂
02
챙겨온 물건이 몇 개 있었다. 본가에서 놀고 있는 전자렌지를 득템했고, 내가 챙겨간 짐부터 기타 이것저것. 고양이가 없는 집이라면, 현관문을 열어 놓고 짐을 바로 집에 들일까? 아파트가 아니고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에 집이 있어, 차에서 짐을 내려 문 앞까지 가져가려면 꽤나 걸어야 한다.) 난 리카와 바람이 있어, 문 앞에 짐을 내렸다. 문을 열고 바로 짐을 들이는 건 무리다. 리카가 날 가만두지 않으니까. 흐흐. 역시나 나의 발소리를 들은 리카가 문 앞으로 달려와 울기 시작했다. 냐옹, 냐옹, 냐아오오옹. 리카의 울음에 나도 반갑게, 냐옹, 하고 인사하곤 다른 짐을 가지러 갔다.

다른 짐을 챙겨 문 앞으로 가니, 리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근데 그 울음이 목이 찢어질 듯했다. 서럽게 우는 것처럼, 생이별이라도 하는 것처럼. 당황했다. 밤 늦은 시간이라 그만 울었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보잘것 없는 집사인 내가 보고 싶었던 걸까?
집에 들어와서 확인하니, 바람은 역시나 방에 숨어 있었다. 내가 잡을 수 없는 곳에 숨거나, 날 피해 도망쳤다. 예전엔 바람이 날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좀 지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돌아오지 않아 화가 났고 삐진 거였다.
03
집에 도착해서 리카와 바람에게 간식사료인 아미캣을 잔뜩 줬다. 평소엔 아침 저녁으로 조금씩만 주는데 어젠 특별히 잔뜩. 🙂 리카는 그 자리에서 아작아작 잘 먹었다. 바람은 계속, 끼앙끼앙, 울었다. 계속해서 쓰다듬고 장난치고 놀고 나서야, 바람은 아미캣을 먹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좀 달래고 청소를 시작했다. 예상보단 깨끗했지만 그렇다고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아니었다.(고양이랑 살고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서로가 괴롭다. 크크.)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해서 다시 밖으러 나갔다. 리카가 울기 시작했다. 그저 1분 혹은 1분 30초 정도 비울 예정이었다. 그래서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리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목 놓아 운다는 느낌이었다. 당황했다. 리카도 분리불안인 걸까? 아님 내가 모르는 과거에, 버림 받은 기억이 있는 걸까?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울었다.
온 몸으로 리카를 쓰다듬고 달래면서(즉, 괴롭히면서;;), 잘해주는 것도 없는 내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찾는 걸까, 싶었다.
04
밥이랑 물을 새로 챙겨주면서 깨달았다. 밥은 평소와 다름 없는 양을 먹었다. 물은 평소보다 훨씬 적게 마셨다. 흠… 이건 걱정이다. 설마 물도 내가 있어야 마시는 것은 아니겠지? 사실 밥도 내가 있을 때 먹는 편이다. 오늘만해도 7시간 정도 외출했는데, 그 동안 사료를 거의 안 먹고 잠만 잤더라. 평소에도 내가 너무 늦게 들어오지 않는 한, 몇 알 깨작거리는 정도만 먹는다. 내가 돌아오면 그때부터 밥도 먹고 물도 마시는 편이다. 흠…
05
이번 설의 최대 수확은 전자렌지. 크크크. 다른 사람이 사용했던 제품이지만 자취생활하며 처음으로 전자렌지가 생겨서 좋다는. 흐흐. (물론 아예 공짜로 받은 것은 아니다.)

[고양이] 리카와 바람 일기: 화장실하이, 건강

01
화장실하이라는 게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양이는 화장실에만 갔다 오면 기분이 고조되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마다 고조된 기분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다. 바람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다. 평소엔 정말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이리 우다다, 저리 우다다. 하지만 화장실에 갔다 오면 그냥 조용한 편이다. 반면 리카는 정말 정신없다. 평소엔 어떤 일에도 무심한 편이다. 얌전하고 조용하고 세상에 이렇게 순한 고양이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화장실만 갔다 오면, 우다다 달린다. 세탁기 위로 뛰어올라갔다가, 방과 부엌에서 우다다 달렸다가, 창턱으로 올라가 창틀을 박박 긁었다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면서도 우다다 달린다. 살짝 무서울 정도다.
근데 리카가 달리면 바람도 덩달아 달린다. -_-;; 둘이 우다다 달리면 파장이 크다. 어느 정도냐면, 무거운 겨울 이불을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 아놔…
02
길에서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는 건강하다는 말, 사실인지도 모른다. 아주 어릴 때말고 길에서 몇 달 살다가 집으로 들어온 경우엔 더욱 그러한 듯하다.
엄마고양이 리카는 늘 건강하다. 성격이 참 순해 집이 아니면 길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때도 많다. 바람이 리카를 괴롭히면, 리카는 화를 내지면 결코 때리지 않는다. 그냥 위협만 한다. 위협이 안 먹히면 우에엥, 울면서 자리를 피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길에서 살았다면 힘들었겠다 싶지만, 어디 아픈 곳 없으니 길에서도 잘 살았겠다 싶기도 하다. 아니, 태생이 건강하여 길에서 살아 남은 것일까?
이제 아홉 달인 바람은 발랄한 고양이다. 더 어릴 때부터 엄마와 싸웠고, 싸움에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한 성격한달까? 흐. 자기보다 덩치가 큰 고양이(=리카)에게도 이기려 드니, 길에서도 잘 살았을 거 같다. 하지만 길에서 태어나 살았다면 벌써 운명을 달리했으리라. 다름 아니라 결석때문이다. 방광결석으로 다섯 달일 때 병원에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나마 집에서 사니 어느 정도 치료할 수 있었지, 길이라면? 결석을 예방하거나 치료에 효과를 보려면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하지만 길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이 물이다. 많은 길고양이가 물이 적어 고생하잖은가. 그러니 바람이 길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다.
부디, 두 아이 모두 죽을 때까지 어디 아프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