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을 준비하면서: 자학과 자뻑 사이에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다. 제출해야 할 서류를 확인한다거나 학과 홈페이지에 들어가 과목 등을 대충 훑어보는 식이다. 그러다 문득 두려웠다. 난 박사 과정에 진학할 준비를 충분히 한 상태일까? 그 정도의 공부를 하고 있을까? 솔직하게 말해, 자신이 없다.
공부란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식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며, 자신의 무지와 무식을 조금이라도 숨겨보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이다. 공부를 할 수록 나의 무지가 여실하게 드러나고, 그래서 더 공부하려는 순환 과정. 나의 두려움은 이것이 아니다. 확인할 무지와 무식 조차 없는 그런 상태면 어떡하지? 겸손인지 자기고백인지 모를 “제가 아는 게 없어서요”라는 말 조차 못 할 그런 바닥 상태면 어떡하지? 이 사실을 지금 내가 깨닫지 못 한 상태에서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고 거들먹거리는 것이라면 어떡하지?
준비하고 있는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운영위원 중 한 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이것은 내가 어떤 과에 진학하려는지를 밝히지 않기 위해 두루뭉실하게 작성한 문장이다).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글을 썼으며, 어떤 주제로 공부하고 싶은지를 적었다. 주제를 기술하면서 관심 있는 분야,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많다. 박사학위 논문 수준으로 파고 싶은 주제도 몇 개 있다. 한국 성전환수술의 역사, 젠더와 피부, 의학과 괴물의 발명 등. 내게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있음을 확인하며 즐거웠다. 현재로선 매우 두루뭉실한 상태지만 어쨌거나 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이것이 박사과정에 진학해도 괜찮을까와 같은 질문에 정당함을 제공하진 않는다. 나는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는가?
(고백이랄 것도 없는 내용인데… 석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없다고. 따로 준비한 것이 없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만 준비했다.)
박사과정으로 진학할 학과를 ㅂ선생님에게 말한 적 있다. ㅂ선생님은 “## 선생님[주임교수]에게 전화라도 해줄까?”라고 말했다. ㅂ선생님은 그 학과 운영위원 모두와 잘 아는 사이며 주임교수와는 특히 친한 사이다. 전화 한통이면 여러 가지로 편하리라. 참 고마운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단박에 사양했다. 내가 작성한 문서로만 평가받고 싶기 때문이다. 근데 난 박사에 갈 충분한 실력이 있긴 할까?
3년만에 학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학교 그만두겠다고 휴학을 한 적 있지만 그럴 때도 계속 학생이었다. 3년을 쉬고 학교에 가려니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다.
아, 귀찮다.

친구와 잡담

우연히 친구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박사과정인 친구가 말하길, 학위논문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쓰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이가 들 수록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거니와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뭐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고 했다. 박사과정을 정말 빨리 끝낸다면 30살 정도에 학위를 취득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저런 일을 하다보면 40살 정도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도 많다. 대부분의 학제에서 연구성과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 나오기에 학위취득이 늦을 수록 자괴감도 커지기 마련. 그래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나는 부끄러운 농담을 했다. “난 이미 세 권이 있는데…” 아하하. ;;;
문학전공(국문이나 영문학은 아님)인 친구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확실히 다르다. 친구는 나를 부러워하지만 나는 그 친구를 부러워한다. 친구는 기초부터 단단하게 다지고 토대를 굳건히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소 100년 이상, 길게 잡으면 몇 백 년의 역사를 지닌 학제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연구가 워낙 방대하여 최신 이론을 공부하기에 앞서 기존의 연구를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학제에서도 이것을 중시한다고 들었다(석사학위 논문에선 최신 이론을 못 쓰도록 하는 식이다).
나는? 학제 연구로서 트랜스젠더 이론이나 퀴어 이론의 역사는 20-30년 정도다. 그나마 이 역사는 미국의 경우다. 한국은? 학제에서 퀴어 이론이나 트랜스젠더 이론의 역사는 없다. 개별 연구는 있어도 학제 형태, 학회 형태는 없다. 그래서 조금만 알아도 관련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대표적이다. 난 늘 너무 서둘러 무언가를 출판하고 있다. 나 자신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진 후 뭔가를 써도 좋을 텐데, 바닥을 다지기도 전에 출판부터 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전공 삼아 글을 쓰는 사람이 10명만 되었어도 내가 이렇게 글을 쓰지 않았으리라. 내게 기회가 오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늘 부끄럽고 늘 조급하다. 글을 쓸 때마다 부끄럽고, 기존의 글을 서둘러 덮어버리기 위해 조급하다.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기존의 학제 권위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페미니즘, 퀴어이론, 트랜스젠더이론의 장점이다. 학위라는 자격증으로 능력을 판단하지 않는 것, 이것은 확실히 좋다.
그나저나 가을에 박사과정 지원하려면 논문 주제를 정해야 하는데 무엇으로 하나… 지금까지는 지도교수의 전공과 나의 관심을 버무려, 영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근대적 몸의 형성 과정을 살필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과가 바뀌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논문을 쓸 때면 주제가 많이 변할 테니 그냥 지금 아이디어를 제출할까? ;;;
아.. 그런데 그 전에 등록금부터 구해야 하네. ㅠㅠ 누가 제게 1억 원만 빌려주시면 학위논문의 한 쪽에다 감사의 글 크게 실어드리겠습니다! 후후. ㅠㅠㅠㅠㅠ 아님 다른 요구라도.. 크흑..

공부, 학교, 탐욕

벌써 몇 년 전, 대학원 석사과정에 처음 입학했을 땐 석사과정이 끝나면 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갈 거라 믿었다. 같은 학기의 다른 학교 지인들도 그렇게 믿었다. 친하게 지낸 사람들 중 박사과정은 나만 갈 것 같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졸업한 지금, 절대 박사과정에 가지 않을 거라던 사람들은 유학을 준비하거나 박사과정을 알아보며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

사람들이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둘 중 한 가지로 대답한다. 돈이 없다거나 학교를 안 다니 좋다거나. 둘 다 사실이긴 하다.

돈이 없어서 박사과정 입학을 망설이는 건 사실이고 현실이다. 석사과정 동안 겪은 생계비 걱정은,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긋했다. 난 머리가 나빠 뭘 하건 남들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린다. 책을 읽어도, 논문을 읽어도… 그런데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해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난, 공부는 돈이 많거나 머리가 정말 좋거나 둘 중 하나는 만족해야 한다고 구시렁거렸다.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 읽고 싶은 것을 읽으며 노는 삶도 나쁘지 않다. 학교에 다녔다면 요즘처럼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지금 연재하고 있는 글을 쓸 수는 있을까?(왠지 가능할 거 같기도 하다만;;;) 물론 학교를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 노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그런데..

어제(13일, 토요일) 경주에 다녀왔다. 학술대회에 발표를 하기로 했다(자원한 건 아니고 요청 받아 하기로 했다). 가는 데 사연도 있었다. 기차표 예약을 늦게 해서, 아침 6시 30분 입석을 샀다. 그럼 기차를 타기 위해선 4시 반에는 일어나야 준비를 하고, 기차를 타는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눈을 뜨니 5시 35분. 두둥. 그것도 내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엄마고양이가 배 위에서 꾹꾹이를 한 덕분에 일어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머리 감고, 씻고, 머리 말리고, 커피 마시고, 냥이들 밥 챙겨 주고, 옷 입고… 집을 나서니 6시 7분. 평소라면 절대 불가능하지만 바쁘니 가능하더라는 그런 훈훈한(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얘기. 암튼 집에서 눈을 뜨고 세 시간 지나니 경주더라는 그런 기이한 이야기. 서둘러 가서 정신없이 발표를 하고, 논평을 듣고, 나의 무지와 무식을 깨닫고, 오랜 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그런데 그곳이 학술대회라 그런지, 자활도 학생이고, 진행팀도 학생이고… 밥을 먹는데 맞은 편에 있는 사람들은 수업 얘기를 하고, 옆자리 사람들은 논문 주제 얘기를 하고… 뭔가 낯설고 조금 슬픈 기분이었다.

서울로 돌아올 땐 대회측에서 마련한 버스를 탔다. 차는 많이 밀렸고, 그래서 두어 시간 졸다가 잠에서 깨었는데… 사실 난 공부를 하고 싶다.

지금은 놀고 있다. 논다는 개념이 다른 사람과 좀 다르긴 하다만…;;; 어쨌거나 나 나름의 방식으로 놀고 있다. 이렇게 노는 것도 즐겁다. 읽고 싶은 책과 논문을 읽으며, 내 무지를 확인하고 무지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는 삶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문득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싶은 바람이 강하게 들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몸을 훈련하며 배우는 그런 과정과 학교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각각의 매력이 달라 어느 것도 더 좋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난 너무 오래 학교에서 훈련하는 방식에 길든걸까?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이후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 학교에 속했다. 8살 이후의 인생에서 학교를 떠난 시간은 대학 그만두겠다고 휴학했을 때와 지금이 전부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 학제에서 훈련받 수 있는 부분을 탐하는 것일까?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학제에서의 훈련 방식을 공부하고 싶다.

사실 이런 바람이 어제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돈이 없어서라는 대답 자체가 박사과정에 가고 싶다는 바람의 표현이기도 하니까. 석사를 졸업했던 학과에 박사과정이 있었다면 벌써 입학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 학과에 박사과정이 생길 가능성은 없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안이 차선으로서 대안이 아니라 최선일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어떻게 할까?

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까?

+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복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말, 요즘 자주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