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순전히 루인이 자처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면 기획을 알았을 때, 쓰고 싶다는 바람이 몸에서 꿈틀꿈틀 기어 다녔기 때문에. 훗.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기획을 들었을 때, 조금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R이 기획 중인 “일상에서의 정치학”은, 흔히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작동하는 정치구조를 드러내는 기획이다. 그리고 그 중 한 장으로 “채식”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루인은 쓰고 싶었다. 주제가 채식이고 채식이면 언제나 할 말이 많으니까. 그리고 기획제안서를 읽으며, 이 기획에 들어가야 할 글들은, 필자는 “정치”라는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정치”임을 알 수 있는 글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루인이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던가?
며칠 전,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으며 감동에 감탄을 연발했는데, 그 중 하나는, 설명하지 않지만 그 이상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결코 분석하지 않지만 곱씹으며 읽을수록, 그런 분석 이상의 의미가 울리는 글. 에르노의 이 책은 대체로 보여주기 형식을 취하는데, 일테면 청소 중에 전화가 오는데 그 소리를 못 들을까봐 걱정하는 모습, 상대방이 모르는 일정으로 외출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주 빨리 나갔다 오는 모습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어쨌거나 형식적으론;;;) 청탁 받은 글 역시 이러한 구성 속에서 얘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사실 루인은 이런 글을 쓴 적이 거의(어쩌면 한 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일테면 단 두 문장을 던져 주고 이 두 문장을 분석하라고 한다면 A4 몇 장에 걸쳐서도 할 수 있겠지만, 보여주기 형식이라니.
예전에 인터뷰 자료집 출판을 준비하면서(올해가 가기 전엔 나올까? ;;;), 루인의 경험이 의미 있는 부분이 있어서, 루인에게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ㅇㄱ가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루인은, 인터뷰를 하는 것이 더 편할 거라고, 루인보고 적으라고 하면 죄다 분석하고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은 분석이라는 어떤 형식적 구성을 가급적 배제한 상태에서,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 경험한 여러 지점들을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런 형식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것이 어떤 권력 구조 속에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형식이란 점에서 고민 중이다. 심지어 이렇게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를 할 정도로. 흐흐. ;;;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 글의 맥락에선 바로 이런 이유)로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루인에게 중요한 경험이 될 테고 그리하여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