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람의 “1950년대 혼혈인에 대한 인식과 해외 입양”( http://goo.gl/5aSQr )을 읽었습니다. 1950년대 한국정부가 “혼혈인” 아동을 대하는 방식을 논한 논문입니다. 저자의 논증에 따르면 한국정부가 혼혈인을 대한 태도 및 관련 정책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해외 입양. 다른 말로 추방. 6.25 전쟁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을 구호하고자 합니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도 구호하기 힘든데 국민이라 할 수 없는 “혼혈”아동을 구호할 여력이 없며, “혼혈인”의 해외 입양을 적극 추진합니다. 당시 “혼혈인”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혼혈인”의 복지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인구를 파악하여 해외입양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1956년엔 입양 수가 급증했는데, 해외입양의 법적 근거인 ‘난민구호법’이 1956년 12월 31일 만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세기를 마련하여 97명을 한 번에 미국으로 입양 보낸 건 꽤나 유명한 사건이죠.
이 논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지금은 다문화가정이라 부르면서 관련 정책을 시행하겠다며(혹은 시행하고 있다며) 광고, 홍보는 많이 하는데요. 소위 말하는 다문화 이슈는 1990년대 이후 혹은 2000년대 들어 발생한 이슈가 아니란 점입니다. “다문화” 이슈는 1950년대부터 정부의 주요 관리 대상입니다. 이를 어떻게 접근(혹은 관리)하느냐가 관건일 뿐이고요.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부계중심의 태도가 변한 것 같진 않습니다. (제가 다문화 이슈에 문외한이라 이 논문을 읽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근대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순수 혈통’에 엄청 강박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처럼 생겼다는 것, 한국인의 피부색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혼혈인”에 대한 유일한 정책이 해외입양이거나 존재 자체의 은폐였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뻔합니다. 부계가 소위 말하는 한국인이어야 하고, 한국인처럼 생겨야 하며, 소위 한국인이라 불리는 집단은 ‘순수’해야 한다는 거죠.
혈통에 바탕을 든 추방은 한국인 범주에서 혈통이 상당히 취약한 상태란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인 혈통이란 개념이 자연스럽고 문제될 것 없는 상태라면 문제 삼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부계혈통이 그 자체로 자연질서라면 애당초 논쟁의 대상일 수가 없습니다. 부계혈통을 자연질서로, 사회적 규범으로 만들려고 애쓰다보니 논쟁거리가 되고 추방과 같은 폭력이 발생하는 거죠. 다른 말로 그 시절 혈통은 매우 논쟁적 이슈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정통성 논쟁이 혈통 논쟁으로 와전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자의 분석처럼 한국전쟁 이후의 피폐한 상황이 야기한 불안과 분노를 “혼혈인” 아동과 그 어머니(그 ‘여성’은 일괄 “양공주”로 불렸고요)에게 투사한 거죠. 이런 투사는 한국인이란 혈통의 ‘위기'(하지만 한국사에서 “한국인”이란 혈통이 위기를 겪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빚은 부계중심 가족단위의 ‘붕괴'(하지만 한국사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부재했다는…)를 은폐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결국 한국인 정체성을 발명하기 위해 ‘여성’의 출산을 도구로 삼는 동시에 처벌 대상으로 삼은 것이 그 시대 “혼혈인” 정책입니다. 그러니 “혼혈인” 정책은 인종정책인 동시에 출산관리정책이며 여성혐오정책입니다.
심심하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저처럼 역사분석에 관심이 많다면 여러 모로 흥미로운 논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