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부터 삼재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농담으로 ‘삼 년간 재수가 없어서 삼재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번 삼재가 정말 안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 번 삼재 때,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켰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부모님 몰래 도장 파서 휴학을 하기도 했고 얼결에 안 좋은 일에 얽히기도 했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일로 어떤 처벌을 받기도 했다. 죽을 뻔한 일도 많았다. 암담했고 암울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삼재였음을, 그 시기가 끝난 뒤에야 깨달았다. 다시는 삼재를 겪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고 싶지 않다고 안 겪을 수 있는 게 삼재라면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 하지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의 주기처럼 돌고 돌아 다시 삼재다.
올해부터 삼재란 걸 몇 년 전부터 계산했고 그래서 올해는 조금 준비하는 기분으로 삼재를 맞았다. 삼 년의 시간이니 앞으로 삼 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존에 하던 일만 무난하게 유지하면서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일은 시작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인간의 삶이 또 그렇게 다짐처럼 흐르진 않더라. 이를테면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올해, 무려 올해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를 만들었다. 연구소를 만들 때, 향후 몇 년은 특별한 활동 없이 현상 유지만 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한 이유는 논문 쓸 때까진 바쁠 듯해서만이 아니었다. 삼재여서 삼 년의 시간은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은 바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자칫 일을 크게 벌였다가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연구소가 사라지는 것보다 첫 삼 년은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조용히 보낼 계획을 세웠다. 물론 현재 분위기는 이런 다짐과 무관하게 흐르고 있지만.
아무려나 조용하고 현상 유지에 집중하는 태도는 내게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지난 번과 같은 사고가 없길 바라기 위해서 자중하고 조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삼재인데 일거리가 잔뜩 늘어난데다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어서 걱정이 더 크기도 하지만. 이것이 이번 삼재의 징후라면 어떻게 되지…
한편으론 삼재가 지금이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이건 순전히 박사학위논문 일정과 관련있다. 학위논문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가 삼재라면 아마 무척 힘들거나 삼재가 끝날 때까지 결국 마무리를 못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계획한 일정에서 삼재는 학위 논문을 본격 쓰기 시작하는 시간 직전에 끝난다. 논문을 준비하는 시기가 삼재다. 딱히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정말 이런 것이 위로가 될 정도의 그런 상태랄까.
며칠 전 삼재와 관련해서 또 다른 해석을 들었다. 삼재는 농사로 치면 겨울에 해당한다고 했다. 겨울이라 추운 날 아무 것도 없이 조용히 지내는 시기가 아니라, 지난 세 계절 동안의 성과를 거두는 시기라고 했다. 그 성과를 거두며 조용히 지내는 시기라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난 삼재 이후 내가 했던 일의 결과를 거두며 삼 년을 버텨야 한다는 소린데… 덜덜덜. 여러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농담이라도 복수는 삼재가 끝난 뒤에…
앞으로 삼 년이다. 내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사히 살아 남을지 어떨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다. 부디 삼 년 뒤에도 이곳에 글을 쓰고 있기를. 앞으로 삼 년에 안부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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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가 별자리에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은 시기가 있는데.. 삼재였을 때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그리고 신내림을 받은 트랜스젠더로 업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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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농담을 덧붙이면 앞으로 삼 년 동안 제가 무슨 사고를 쳐도 ‘삼재라서 그렇구나’라고 넘어가주세요…
(뭔가, 완벽한 핑계거리를 획득한 느낌이 든다면, 오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