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어제 저녁 6시 반 즈음,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가결되었습니다. 주민발의안에서 몇 항목은 학교 교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논쟁적이었던,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 극렬히 반대했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출산이 차별 금지 항목에 포함되었습니다. 아쉬움이 있지만 매우 환영합니다.
조례가 통과되는 과정에서 시의회 의원 간에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지난 토요일 즈음까지도 통과되지 않거나 논쟁 항목이 빠진 상태로 통과될 거란 얘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를 민주당 당론으로 결정하도록 많은 활동가가 노력하였고 그 결과 본회의에서 가결되었습니다.
12월 19일 아침, 교육위원회 재심의 회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시의회 별관에선 주민발의안으로 통과하길 요구하는 측과 보수진영 간의 농성이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14일부터 성적소수자 활동가를 비롯하여 주민발의안을 지지하는 측이 점거농성을 하였고, 그곳에 보수진영이 온 것이죠.
그날 아침 상황을 대충 보려면 http://goo.gl/bl9Fp 를 참고하세요. 앉은 상태로 찍은 거라 좀 그래요..;;
대립 농성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재심의에서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출산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었던 분위기는, 이제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것이라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오후 2시에 본회의가 시작되었고 학생인권조례는 52개 안건 중 51번째 안건으로 상정되었습니다. 다들 모여 시의회 TV를 보며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며 어떤 사람은 회의를 하고, 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너무 피곤하여 잠들기도 했습니다. 엿새 동안 농성을 하며 다들 너무 피곤했던 거죠. 얼추 5시 즈음 조례 논의를 시작했지만 정회를 선언하였습니다. 논란이 많아 정회가 필요하다나… 얼추 한 시간 가량 정회한 후(이 시간 동안 각 당의 당론을 확정했다고 합니다) 개회하여 반대-찬성-반대-찬성-반대 토론을 하였습니다. 반대 토론은 다시 옮기기 부끄러운 수준이었고, 찬성 토론은 꽤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찬성토론을 한 두 의원은, 이를 테면 학생들이 잘못 되는 것은 학생이 잘못이어서가 아니라 경쟁 위주의 현재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말한다거나, 자신은 안수집사인데 예수가 지금 이 땅에 왔을 때 동성애자를 핍박하고 차별하라고 말씀하시겠느냐고 되묻는 식이었습니다. 반대토론을 한 세 의원은 백의민족에서 동성애가 운운, 사나이로서 말하는데 운운, 과거에 출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며느리로 들어오면 기분이 어떻겠느냐 운운. 그리고 투표를 했고 압도적 표차로 가결되었습니다. 농성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함성을 질렀고 울었습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특히나 환영하는 이유는 차별금지항목에 성별정체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성적지향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네. 성별정체성/젠더정체성이 아니라 성적지향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나열하는 차별금지항목엔 성적지향은 있고 성별정체성은 없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관련 상담이나 진정이 들어오면 성적지향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2007년 논쟁이었던 차별금지법에도 차별금지사유에 성별정체성은 없었습니다. 정의(定義) 항목에서 성별을 포괄적으로 설명하였고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광주 학생인권조례에도 성별정체성은 없습니다. 성적지향으로 트랜스젠더를 설명하는 것이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국내에 존재하는 법 중 거의 유일하게 성별정체성을 명시하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매우 반가운 소식입니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성별정체성 항목을 명기하는 법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다들 너무 고생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