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굶주려서 잠들기 전 단편소설을 한 편씩 읽기로 했다. 최근 이렇게 해서 몇 권의 소설책을 읽었는데, 오늘 다 읽은 오기와라 히로시의 단편집 『벽장 속의 치요』는 특히 인상적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무렵, 『판타스틱』에 실린 광고를 읽고 살까 말까를 망설였다. 왠지 재밌을 거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하. ;;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이 워낙 많아 망설이고 미루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거의 잊었을 무렵, 숨책에 이 책이 나왔다! 선점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헌책방에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는 건 아니다. 일하고 있는 책방에 ㄱ이란 사람이 A란 책을 찾았는데, 그땐 찾는 책이 없었다. 근데 다음날 A란 책이 들어왔다. ㄱ은 며칠이 지나 다시 왔지만 그땐 이미 다른 사람이 A란 책을 사간 뒤였다. 기다린다고 복이 있는 건 아니다. 흐흐)
첨엔 장편을 기대했는데 단편이라 살짝 놀랐다. 하지만 소설들 전반에 흐르는 일관적인 흐름이 있어 한 편의 장편소설을 읽은 느낌이기도 하다. 유령도 나오고 귀신도 나오고 살인사건도 나오고 이런저런 반전도 나오는 장르소설인데, 이 정도의 설명만 들으면 뻔한 내용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소재가 진부하다고 소설이나 내용 자체를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령이나 귀신이 나오지만 공포소설은 아니라거나,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범인을 찾는 식의 내용이 아니기에 특별한 건 아니다.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을 읽으며 느꼈을 법한 묘미를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십대 시절 오 헨리 소설을 즐겨 읽었다). 이른바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반전의 묘미가 『벽장 속의 치요』에 실린 단편들에 잘 살아 있다. #스포일러지만, 단편 하나를 예를 들자. 우연히 애인을 죽여 시체를 숨기려고 하는데, 고객서비스라며 가전제품회사의 직원이 무료로 집안청소를 해준다고 찾아왔다. 살인을 들키지 않고 청소를 끝낸 직원을 보냈는데, 알고 보니 그 직원은 이런 수법을 사용하는 도둑. 그래서 주인공은 그 도둑이 살인한 것으로 꾸미려고 하는데, 다시 누가 찾아온다. 그 도둑의 뒤를 밟던 경찰이 도둑을 잡아서 찾아온 것. 집에 들어가겠다는 경찰을 들일 수도 없고 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소설은 마무리. 이런 식이다. 스포일러 끝.#
이야기로서도 재밌지만, 두 번째로 실린 단편 「Call」은 정말 이제까지 읽은 소설 중 가장 절묘하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듯. 「Call」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이 나중에 읽는다면 최소한 두 번(혹은 한 번 반)은 읽으리라 단언할 수 있다! 다른 작품은 안 읽어도 이 단편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치명적인 스포일러라 더 말할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 언젠가 이런 기법의 글을 쓰고 싶다. (근데 이런 기법이 진부하다면 낭패;;;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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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앤 피터스. 『루나』: 트랜스/젠더 성장 소설 혹은 관계 맺는 방식
줄리 앤 피터스. 『루나』. 정소연 옮김. 출판예정.
거리를 오가다 보면 아주 가끔 ‘아, 저 사람 mtf구나’란 걸 눈치 챌 때가 있다. 그에게서 어떤 티가 유난히 나서는 아니다. 소위 말하는 “생티”가 나서도 아니다. 그냥 어떤 느낌이다. (즉, mtf가 아닐 수도 있다. -_-;) 그이가 mtf란 걸 깨달을 때마다 난 반가우면서도 슬프다. 서로 모르는 척 마주쳤지만, 앞으로 다시 마주칠 가능성 없이 지나쳤지만 그래도 조금은 반갑다. 그런데도 슬픈 건 어떻게든 눈치를 챘기 때문일까?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 노출된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하는 건 쉽지 않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통하길 원하는지 알 수 없거니와 드러나는 게 좋은지 드러나지 않은 게 좋은지도 판단하기 쉽지 않다. 어떤 mtf는 ‘비트랜스여성’으로 통하길 원할 테고, 어떤 mtf는 트랜스젠더로 통하길 원할 테고, 어떤 ftm은 ‘비트랜스남성’이 아니라 ftm으로 통하길 원할 테다. 개인마다 다 다르다. 상황마다도 다르다. 트랜스젠더로 통하길 원하는 mtf라고 해서, 매 순간 트랜스젠더로 통하길 원하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대중 속으로 사라지길 원할 테고, 어떤 자리에선 트랜스젠더로 드러나길 원할 테다.
그러니 통과한다는 것, 패싱(passing)한다는 건 동화하여 사라진다는 의미도 아니고, 자신을 숨긴다는 의미도 아니다. 패싱은 특정 코드를 인용하며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한 공간에서도 몇몇 사람들에겐 트랜스젠더로 통하길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비트랜스젠더로 통하길 원할 수도 있다. 익숙한 사람들에겐 트랜스젠더로 통하길 원하지만, 낯선 사람들 중 몇몇에겐 트랜스젠더로, 몇몇 사람들에겐 헷갈리는 상태로, 몇몇 사람들에겐 비트랜스젠더로, 몇몇 사람들에겐 무관심한 존재로 통하길 원할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통하길 원하는 방식이나 욕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난 언제나 트랜스젠더로 통하길 원하지만, 사람들이 날 트랜스젠더로 인식하길 원하지만, 트랜스젠더로 드러나는데 일말의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로 드러나는 동시에 드러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일까? 아니,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반갑고 조금 기쁘면서도 슬픈 이유는.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그이가 어떤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것 정도다. 그 이상, 내가 무얼 바랄 수 있으랴.
지난주에 『루나』란 소설을 읽었다. 출간된 책은 아니다. 미국 10대 mtf/트랜스여성을 다룬 소설인데, 옮긴이가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에 감수를 요청해서 초벌번역을 받아 읽었다. A4로 15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인데도, 단박에 읽었다.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불안해서, 너무 궁금해서.
주인공 혹은 화자는 mtf/트랜스여성이 아니라 그의 여동생, 레이건이다. 소설 제목 『루나』는 mtf/트랜스여성의 이름. 법적 이름은 리암이지만, 한땐 리아 마리로 자신을 불렀고, 현재는 루나로 부르고 있다. 달빛이 비치는 어둠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루나(luna). 학교에선 천재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어, “미국 A급 대학”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로비를 벌일 정도다. 알바로는 출시예정 게임의 난도 테스트를 하는데, 게임회사는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그를 고용하려고 한다. 뭐, 이런 인물이지만 주변에선 그를 ‘남자’이자 ‘아들’로 인식하고, 그 자신은 자기를 ‘여성’ 혹은 mtf/트랜스젠더로 인식하고 있어 갈등한다.
소설 속 화자인 레이건은, 루나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루나를 도와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괴롭고 힘들다. 레이건도 사실은 리암/루나가 성전환수술을 한다거나, ‘여성의 옷’을 입는 게 내키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싫은 내색 못 하고, 모든 걸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한다(혹은 행동해야 한다). 아울러 루나에게 온 신경을 다 쏟다 보니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원하는 걸 놓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 부모님들은 전혀 모를까? 아빠는 리암/루나에게 ‘씩씩하고 활동적인 아들’ 역할을 강요한다. 리암/루나가 ‘사내답길’ 바라고 항상 운동을 하길 바란다. 물론 아빠는 리암/루나 몰래 레이건에게, 리암이 혹시 게이냐고 묻긴 한다. 게이는 아니기에, 레이건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일단은 회사 일에 바빠 루나(뿐만 아니라 여타의 가족 모두)에게 무관심한 것으로 나온다. 더 쓰면 스포일러라 생략하지만, 이런 가족 구성원들 속에서 루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소설이 좋았던 건, 루나가 아니라 레이건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어서다. 트랜스젠더 개인들이 읽어도 좋을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비트랜스젠더들에게 권하기에도 좋을 책이랄까. 트랜스젠더의 갈등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비트랜스젠더들의 고민 혹은 어려움에 조금은 관심이 있어서일까, 난 이 책의 구성이 상당히 괜찮았다.
이런 전반적인 흐름과는 별도로 내가 유난히 끌린 부분은 두 곳.
하나는 아빠가 레이건에게 리암/루나가 게이냐고 묻는 장면. 게이는 아니니, 레이건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나중에 아빠는 레이건에게 화를 낸다. 난 이 장면에서 예전에 내가 겪은 일이 떠올랐다. 친척들과 있던 자리에서 내게, “혹시 남자에게 관심 있어?”라고 물었던. 질문을 한 사람은 게이냐는 의미였을까? 혹은 이성애-mtf/트랜스젠더냔 의미였을까? 확인하지 않았으니 예단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어느 의도였건, 난 아니라고 대답해야 했단 사실이다. 그리고 곤혹스러웠다. ‘아니’라는 대답의 복잡함을 그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여성스럽지만 이성애 남성’이란 의미로 이해했을까, ‘레즈비언 트랜스’로 이해했을까? 물론 후자의 이해를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니 그럴 가능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아니다’는 부정 혹은 부인의 대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종종 간단하게 이해되어 곤혹스럽다.
다른 하나는 호르몬 투여 등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루나가 ‘여성의 옷’을 입고 레이건과 외출하는 장면. 읽는 내가 더 불안하고 흥분했다. [약간의 스포일러이니 읽을지 말지 잘 판단하세요.] 첫 외출에서, 레이건은 루나가 너무 평범해 보인다며 결코 들키지 않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운다. 하지만 루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눈치 챈다. 어떤 이들은 뒤에서 좇아와 놀리기도 하고,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조롱하기도 한다. 일부 트랜스젠더들은 ‘가장 평범한 여성’ 혹은 ‘가장 평범한 남성’으로 통하길 원한다는 점에서(한채윤 님의 예리한 분석에 고마움을!) “여자처럼 보여”보다는 “평범해 보여”란 평가를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번하게 노출되고 ‘평범함’으로 통하는데 실패한다.
이런저런 감상을 다 떠나서 성장소설로도 좋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형성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도 괜찮다(소설은 레이건의 ‘표면적 이성애 관계’를 기술하는데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얼른 나오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