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이의 <나치즘과 동성애>를 읽고 있으면 연구를 수도하듯 하는 연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정도 경건하고 감히 쉽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열심히 자료를 찾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뻘소리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료를 해석하고 배치하는 태도가 생생하다. 그래서 <나치즘과 동성애>는 단순히 내용만이 아니라 글이 풍기는 어떤 분위기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
정말 잘 쓴 책이다. 정말 잘 쓴 글이다. 잘 쓴 책이자 글이다. 이러기도 쉽지 않다. 자신의 사유를 밑절미 삼아 새롭고 또 성실하게 쓴 글은 여럿 읽었다. 하지만 기록물을 발굴하고 읽고 해석하고 글을 쓰는데 있어 어떤 경건함을 느끼긴 또 정말 오랜 만인 듯하다. 자신의 관심이라곤 온전히 기록물 뿐이라서 그 외의 모습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 어떤 포스가 글에 넘친다. 그래, 포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포스가 있다. 공부에 모든 것을 건 수도승과 같은 포스가 있다. (메예로비츠가 쓴 미국 섹스의 역사는 엄청난 내공을 느낄 수 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지만 수도승과 같은 포스는 없었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감동적이다. 한 줄 한 줄이 헛되지 않고 한 줄 한 줄 읽는 시간이 소중하다. 서둘러 다 읽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며 저자가 직접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니, 참으로 기쁘다. 나는 언제 이런 글을, 책을 쓸 수 있을까? 쓸 수는 있을까?
그나저나 언론사 기자가 작성한(혹은 보도자료를 정리한) 기사 말고 <나치즘과 동성애>로 쓴 서평/리뷰가 없네. 이 책으로 누군가가 서평을 쓸만한데, 정말 많은 얘기를 할 법한데 서평이 없다니 아쉽다. 내공 짱짱인 멋진 분들이 서평을 써주면 정말 좋을 텐데. 독자로서 정말 즐거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