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영화만 읽고 책은 안 읽는다는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쓰는 독후감. 음핫핫. -_-;;;
게을러서 인지,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지금까지 안 쓴 건진 애매하지만(‘게으르다’에 한 표 ;;) 암튼 영화 [검은 집]의 원작인,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선희 옮김, 창해)을 2주 전에 읽었다.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을 곧잘 읽는 편이지만(기억 속에, 처음으로 저금해서 모은 돈으로 산 책도 추리소설로 기억하고 있다) 요즘 들어선 거의 안 읽고 있었기에, 꽤나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책을 읽어야지, 했던 건, 문득 이 영화 혹은 소설에서 발생하는 공포는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영화만 읽었을 때, 그리고 영화를 읽고 나온 직후엔, 적어도 표면 상 나타나는 공포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범인이라던가,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들, 지하실에 널부러저 있는 시체들의 이미지가 주는 효과가 컸다. 싸이코패스를 “비인간적인”, “인간적인 감정이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인식 자체는 꽤나 불편했고.
소설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원작과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글쎄, 인물들의 비중이 변하고, 이 과정에서 성격도 좀 바뀌지만 그렇다고 소설과 영화가 그렇게까지 다른 건 아니다. (물론 후반부는 좀 많이 다르다.) 소설 역시 싸이코패스는 “인간적인 감정이 없는” 그런 존재로 나오고 바로 이런 부분이 공포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어쩌면 [검은 집]이란 텍스트에서 발생하는 공포는, 원인 없음, 설명할 수 없음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만 그럴 줄 알았는데,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사이코패스의 어린 시절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문집을 찾고, 문집에 실린 글을 범행의 흔적으로 발굴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는 “싸이코패스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이다. 일테면 부모와의 관계를 이유로 들기도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가 안 좋았던 모든 사람들이 싸이코패스는 아니란 점에서, 싸이코패스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혹시 이 영화와 소설에서 발생하는 공포는 “원인(을 알 수 )없음”이 아닐는지.
논문뿐만 아니라 신문 기사 등의 글을 읽다보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밝히고, 언제부터 그랬는지 혹은 어떤 경험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른바 인과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글을 구성하고 있단 걸 느낄 때가 있다. “유영철은 왜 그랬는가?”, “탈영병은 왜 탈영했는가?”와 같은 원인 찾기와 이렇게 만든 원인으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 이것이 요즘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논리구조이고 소통방식이다. (혹시 초등학생시절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를 배우고 시험에 나온다고 암기한 기억들 있지 않나요? 문장 혹은 한 편의 글은 이런 육하원칙에 따라 써야 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문득;;;)
하지만 [검은 집]에서 공포를 유발하는 싸이코패스는 “왜”라는 질문을 무력하게 만든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이면 이러이러할 것이다”란 식의 어떤 이상적인 인간상도, “왜 그렇게 하느냐”란 질문만큼이나 싸이코패스에겐 무의미하다. 분명한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치료하는 방식이 근대적인 방식이라면, 이런 방식에 부적절한 존재란 점에서 “싸이코패스”는 그 사회가 느끼는 공포의 원인이자 위협이다. 그렇기에, 인과관계로 설명하고자 하는 질문방식 자체에 한계(구멍)가 있음에도 한계를 얘기하기보다는, 이런 한계를 드러내는 싸이고패스를 사회악으로 설정함으로서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자 한다.
학부 시절, 어설프게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워듣곤, 아는 사람과 괜히 아는 척 하며 했던 말 중에, “그냥”이라는 말이야 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아, 부끄러워 -_-;;).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게 뭔지 모르지만, 아무려나, “그냥”이란 말은 “그거 왜 해?”와 같은 질문을 무력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 경향이 있다. “그게 왜 재밌어?”란 질문에 “그냥”이라고 답하는 건, 모든 걸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는 점에서, “왜”라는 질문구조 자체에 문제제기하는 셈이다.
[검은 집]은 바로 이전 긴장 관계를 공포로 설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끊임없이 인과관계로 설명하고자 하는데, 자꾸만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이 발생할 때 느끼는 감정을, 저자는 공포라는 형식으로 풀어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근데 여전히 이미지 쇄신이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이… -_-;;;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