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의 자료를 찾기 위해선 도서관이나 검색사이트에서 주제어를 입력해서 검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자료는 찾을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전의 자료는 그렇지 않다. 언론사 중, 여유가 있는 곳에선 과거 기사도 검색할 수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모든 언론사가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직접 책을 한 권, 한 권 뒤적이며 목차를 확인하고 내용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직접 움직여 자료를 찾다보면 예상하지 않았던 곳에서 중요한 자료가 나온다. 심심해서 꺼내 뒤적이던 책에서 그토록 찾던 자료가 나온다거나, 설마하며 목차를 확인했는데 대박 자료가 나오는 식이다.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는데, 그 동안 추측만 하고 있던 내용이 구체적인 사실로 나오는 식이다. 온라인 검색이 나의 일부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식 검색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다.
어젠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을 하고 입양을 했다는 내용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것은 미국이나 다른 외국이 아니라 한국 상황. 레즈비언 부부도, 마을 주민들도 별스럽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이런 자료는 찾으려고 작정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우연과 행운이 절묘하게 만나야 한다.
이렇게 자료를 찾고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그동안 흩어진 자료에서 살아 숨쉬고 있던 트랜스젠더들, 혹은 변태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많은 경우, 익명으로 남아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가능했겠는가? 어느 유명한 학자는 자신이 거인의 어깨에 서 있다고 했다. 그 거인들도 대체로 유명인이다. 나는, 혹은 나와 유사한 상황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익명으로 남은 거인의 어깨에 서 있다. 어리석게도 한때 난 거인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나의 거인들, 내가 어깨를 딛고 서 있는 거인들은 익명이거나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흩어져있고, 잊혀진 기록 속에서 숨쉬고 있는 거인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가능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모든 연구성과는 이름 없는 거인의 몫이다. 그들의 삶이 있었기에 현재의 연구가 가능하고, 나의 삶이 가능하다.
암튼 이렇게 찾은 자료는 아마도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즈음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고백하자면 이렇게 애써 찾은 자료를 공공아카이브에 내놓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망설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 자료를 찾는데 들인 시간과 자료의 희귀함 때문이다. 현재로선 구할 수 없는 자료들도 많아, 혼자 독점하고 혼자 인용하고 싶은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남들이 출처를 궁금해 하고, 1차 자료를 구하고 싶지만 나만이 소유하고 있는 그런 자료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찾은 자료는 나의 자료가 아니다. 단지 내가 찾은 자료일 뿐이다. 자료는 더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론 공유가 내게 이득이다. 하나의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나 혼자 자료를 독점하고 있으면 한두 가지 아이디어 밖에 안 나온다. 하지만 두 명이 그 자료를 공유한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아이디어가 나온다. 세 명이 공유한다면 못 해도 서른 가지 아이디어가 나온다. 공유란 그런 거다.
아참. 열심히 기록을 남겼던 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그나저나 글 좀 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