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떨어졌다. 안경의 렌즈에 맺혔다.
나는 눈물이 고인 줄 알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고 믿었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안경의 렌즈에 맺혔다.
나는 눈물이 고인 줄 알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고 믿었다.
“눈이 충혈 된 상태네요.”
한껏 어색함을 드러내는 그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직종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의미인지, 이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의미인지, 원래 그런 성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색하고 뭔가 서툰 몸짓으로 “눈이 충혈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거울을 보면서도 눈치 못 챘는데…. 그러면서 그 사람은, 말 많고 장삿속만 보이는 주인장이 오길 기다렸다. 결국 주인장이 안경의 문제를 해결했다. 아니, 해결했다기보다 그냥 체념하도록 했다. 그 주인장과 오래 얘기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냥 그 자리를 피하게 싶은 느낌. 주인장의 입장에선 쾌할한 말투일 수 있지만, 듣는 루인의 입장에선 윽박지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말투로, “아님, 도수를 낮추면 되요, 그러실래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물론 그 주인장의 문제가 아니라 얼른 끝내고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품은 루인의 상태가, 대충 얼버무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안경은 뭔가 손을 본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렌즈를 바꾸진 않았다. 대신 뭔가 더 재밌는 걸 알았다.
우선, 루인의 안경 쓰기 전의 시력은 0.1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시력측정표의 가장 큰 글씨가 0.1이라면, 그 글씨도 흐릿하더라는. 하긴 그러고 보면 마지막으로 시력을 측정한 것이 벌써 5년 전이구나. 0.1이 안 되는 시력에서 1.2로 곧장 넘어가니 어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안경을 새로 맞추면 항상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지금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안경 역시 처음 샀을 땐 꽤나 어지러웠다.
어쨌거나 어지러운 건 어지러운 거니, 주인장에게 불편함을 얘기하다 여분의 안경 시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했다. 여분의 안경을 쓰면 교정시력이 1.0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근데… 0.7정도에서 머뭇거리더라는. 그러니, 교정시력 0.7을 1.0으로 믿고 살았다는. 흐흐흐. 바보. -_-;;
교정시력 1.2의 세상은 참으로 신비하다. 그전까진 영화관에 가서 안경을 쓰면 좀 흐릿하다고 느꼈는데, 그건 렌즈가 오래되어서 닦아도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려니 했다. 근데 아니었다. 자막도 화면도, 읽을 만 하지만 선명하지 않았던 건 교정시력이 0.7 정도였기 때문. 어제 극장에 가서 영화를 읽는데 “모공이 보인다”란 말이 무슨 의민지 깨달았다. 정말 모공이 보이더라. 나중에 새로 맞춘 안경을 벗고 이전의 안경을 착용하니 얼마나 다른지를 확연히 알겠더라는.
여전히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3분 정도는 어지럽고 초점을 맞추기 어렵지만, 그 후로는 괜찮다. 처음 착용했을 땐 어지러워서 다시 쓸 엄두를 못 냈다면, 이젠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다. 안경을 벗으면 어지러웠던 것도 어느 정도 줄었고.
그래도, 여전히 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의 0.1도 안 되는 시력으로 읽는 세상이 좋다. 안경을 쓰면 안경을 써야지만 알 수 있는 세상이 있지만, 안경을 쓰지 않고 0.1도 안 되는 시력을 다니면, 또 이런 시력일 때만 느끼고 인식하며 알 수 있는 세상이 있으니까. 0.1도 안 되는 시력, 그래서 세상을 흐릿하게 읽겠다는 게 아니라, 0.1도 안 되는 시력을 지닌 자만이 읽을 수 있는/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있고 이런 세상을 읽고 싶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