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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란 참 어렵다
힙합 그룹 가리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룹일 테다. 쉽게 설명하면 한국 퀴어운동에서 한채윤 씨 정도라면 이해하기 쉬울까? 젠더이론과 퀴어이론에선 게일 러빈이나 주디스 버틀러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고. 그런 가리온이 오랜 만에 신보를 내고 인터뷰를 했다. 그럼 그들은 그 동안 생계를 어떻게 유지했을까?
출처: <텐아시아> http://goo.gl/MenoQ / 좀 더 자세한 맥락은 리드머닷넷 http://goo.gl/S7bxH
가리온의 구성원은 모두 실력이 쟁쟁할 뿐만 아니라 열정적으로 랩과 음악을 공부하고 연습하지만, 음악으로 먹고 살 수는 없(었)다. 이 기사를 읽고 마음 한 켠이 짠했지만, 낯선 풍경은 아니다. 한국의 많은 퀴어 활동가들 역시 이러하니까. 퀴어 활동가 뿐만 아니라 NGO 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운동을 하고 활동을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주요 관심으로 밥벌이를 못 하고 있다.
비단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만이 아니다. 공부 역시 어느 학교에서 어떤 전공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트랜스젠더 이슈 같은 것을 전공 삼으면, 이것을 주요 업으로 삼아 밥벌이 하는 것은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 몇 년 전엔, 전공으로 어떻게든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환상으로 삶을 유지했다. 지금은 믿지 않는다. 대신 다른 일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생계형 알바지만 하루에 4-5 시간 정도만 일하는 식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쓴다. 나만 이렇게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 어느 주간지에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는, 글만으로 먹고 살 수 없어 결국 취직을 했다고 한다. 그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11월을 끝으로, 6개월 계약 알바가 끝났다. 누구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런 부끄러운 곳이지만,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애들 수술비도 마련할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이제 며칠 쉬고 나면 다른 알바를 찾아야 한다. 이번엔 좀 여유있게 고를 예정이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12월 중순까진 뒹굴거리면서 쉴 예정이다. 퀴어락 실무도 좀 해야 하고, 유섹인 일도 해야 하니 알바 구하는 것은 천천히 고민하려 한다. 이번 12월엔 어떻게든 끝내고 싶은 일도 있고…
어제 나 같은 사람도 먹을 수 있는 빵을 판다는 빵집에 갔다 왔다. 집과 가게는 걸어서 25분 정도 거리. 한 시간 정도까지는 내가 걸어다니기 딱 좋아하는 거리라 좋았다. 근데 가게 입구에 알바구함이라는 전단이 붙어 있었다. 근무시간은 금,토,일,월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시급 5,500원. 순간, 끌렸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주말에만 모일 수 있는 세미나모임이 있어 힘들지만, 조건 자체는 나쁘지 않다. 매달 70만 원 정도 수입, 세금을 제한다고 해도 67만 원 이상이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데? 흐.
숨책, 알바, 그리고 묘한 인연
어젠 알바하는 책방에서, 4~5만 권 정도의 책을 새로운 가게로 옮기는 이사를 했다. 나를 포함, 열 명 정도의 사람이 책을 박스에 담아 새 가게로 옮겼는데… 난 그 정도 분량이면 이틀은 걸릴 거라 예상했다. 내가 이사할 때, 포장이사센터의 직원이 엄청 힘들어했기에 열 명 정도라도 하루는 무리라는 나의 판단. 그런데 하루 동안 지하와 지상의 책을 모두 새 가게로 옮겼다. 대충 11시간 정도 걸려서. 덜덜덜. 더 무서운 건 다 옮기고 나서도 표정이 여유로웠다. ;;; 알고 보니 그들 상당수가 출판사 창고에서 일했거나 헌책방을 운영하는 이들. 그들에게 4~5만 권은 많은 분량도 아니었을 듯.
이제 며칠만 더 일하면 이제 책방 알바도 끝이다. 그럼 새로운 알바를 찾아야지. 혹시 저를 활용하실 분은 서두르시길! 새 알바 구하면 그걸로 끝.
이사를 준비하고 책을 옮기면서 깨달았는데, 책방과의 인연이 참 길고 특이하다.
2004년 봄, 아는 이가 괜찮은 헌책방이 있다고 해서 따라 갔는데 그곳이 지금 알바를 하는 책방이었다. 그땐 지상만 있었고 지하는 없었다. 몇 번 놀러갔지만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새롭게 확장하는 지하에서 일할 알바를 구한다는 얘길 들었다. 그때 마침 알바 자리가 필요했기에 하겠다고 했다.
지하에 배치할 책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지하매장이 처음 생길 때부터 헌책방에서 일을 한 인연. 그렇게 첫 계약처럼 다섯 달을 일하고 알바는 끝났다. 가끔씩 단기 알바를 하기도 했고, 내가 그곳에 놀러가 책을 사기도 하며 인연은 지속되었다. 지난 번에 살던 집으로 내가 이사할 땐 주인장이 짐을 옮겨주기도 했고.
그러다 작년 5월, 서너 달 정도 일한다는 조건으로 다시 알바를 시작했다. 서너 달이란 구두계약은 1년이 되었고, 그렇게 가게가 이사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이사 준비를 하면서… 참 재밌는 게 지하매장을 새로 만들 때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곳으로 가게를 옮겨야 해서 지하매장을 접어야 할 때도 일을 하고 있었다. 참 묘한 인연이다 싶다. 하나의 매장이 생기고 철수하는 시기에 일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새로운 가게로 이사하는 일도 함께 한다는 게 참 재밌다.
+새 가게 위치는, 기존 가게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더 걸어가면 “신촌블르스”라는 고깃집이 나오는데, 그 가게가 있는 건물 지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