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애도를 애도함

어떤 의미에서 블로그를 잠시 비웠습니다. 한동안 제 블로그가 아닌 느낌이었지요. 하지만 언제까지 방치할 순 없으니까요. 다시 새로운 글을 채워야지요.
ㄱ.
지난 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영정사진을 향해, “밉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짐작했지만 제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한무지의 추모 자리를 마련했을 때 혼자 가장 많이 중얼거린 말은 “밉다”였습니다.
남은 것은 고인을 어떻게 회고하느냐겠지요. 이 세상에 살았음을 어떻게 기록하느냐가 중요하겠지요.
ㄴ.
슬슬 기말페이퍼 기간이 다가옵니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기에 설레기도 하고, 빠듯한 일정이겠구나 싶어 살짝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기쁨이 가장 크네요. 아마 이번 기말페이퍼는, 슬프고 또 조금은 고통스러운 기쁨이지 않을까 하고요. 기말페이퍼 주제 중 하나가 애도와 트랜스젠더/퀴어기 때문입니다.
ㄷ.
처음으로 캣베드를 주문했습니다. 다음주부터 사용할 예정인데 바람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괜한 소비가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제가 사는 여건이 좀 바뀌면서 캣베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ㄹ.
동료의 죽음을 접하면서, 그리고 죽음 의례를 또 한 번 겪으며 제 죽음을 상상했습니다. 역시나 가장 걱정하는 건 제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이더라고요. 바람은 누군가가 데려다 함께 잘 살겠거니 합니다. 지금은 저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적응하다보면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니까요. 제가 없으면 바람도 살 수 없다고 상상한다면, 이것은 말도 안 되거니와 제 착각일 뿐입니다. 제가 잘못 산 거기도 하고요. 바람에게 큰 죄를 짓는 거죠. 그래서 걱정은 제가 소장한 기록물입니다. 헌책방 혹은 폐지 모은 곳이 아니라 퀴어아카이브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는지…
ㅁ.
고인의 죽음 의례를 주관할 권리는 왜 원가족 혹은 혈연가족이 독점하는 것일까요?

[고양이] 애도의 시간

01

우리 오래오래 함께 살자.
…라는 말은 얼마나 허망한가. 내일이란 시간은 없더라. 오늘이란 시간도 없더라. 그냥 지금 이 순간 뿐이더라.
02
어제 아침 블로그 댓글을 확인하고, 몇 가지를 확인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정신이 들자 향을 피웠다. 작은 그릇에 아미캣을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웠다. 하나는 눈물점에게, 다른 하나는 반야에게. 저녁에 다시 향을 하나 피웠다. 오늘 아침에도 하나 피웠다. 내일도 피우겠지. 사흘장은 치뤄야지. 사흘 동안은 안전을 빌어야지. 그래야지.
03
리카는 총 여덟 아이를 낳았다. 임신한 상태로 내게 왔고 난생 처음 고양이와 살기 시작한 난 얼추 한 달 만에 고양이의 출산을 겪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 중 하나가 바람이고, 나머지는 다 새로운 집사를 만나 떠났다. 가장 먼저 떠난 참(D집사)부터 말리, 카카, 그리고 부산으로 떠난 두 아이, 어느 시골로 떠난 두 아이.
시골로 떠난 두 아이는 늦은 밤에 떠났다. 리카를 임보했던 분이 소개해준 곳이라 그 분이 직접 데려갔다. 며칠 더 데리고 있을까 했지만 정들면 헤어지기 힘들기에 늦은 밤 떠나보냈다. 그날 두 아이는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작은 박스에 담아 보내려고 했는데 그것이 힘들어 억지로 보냈다. 충격이 컸으리라. 많이 무서웠으리라.
그때 떠나 보낸 아이가 눈물점과 반야였다. 눈물점은 그냥 임시로 붙인 이름이다. 오른쪽 눈에 눈물점 같은 무늬가 있어 그런 이름을 붙였다. 정들기 싫어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분은 해야 해서 붙인 이름이다. 반야는 함께 살 것 같아 붙인 이름이다. 난 반야가 나와 함께 살 줄 알았다. 그래서 등반냥에서 반야로 이름을 바꿨다. 반야도 자신이 나와 살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연이 생겨 반야가 떠나고 바람이 남았다.
떠나간 아이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억지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가급적 모르고 싶었다. 이젠 인연이 끝났으니까..라는 심정이 아니었다. 그냥 몸이 복잡했다. 소식이 궁금했고 또 궁금하지 않았다. 소식을 접하면 여러 가지로 괴로웠다. 못 살고 있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냥 소식을 듣는 것 자체가 묘하게 심란하고 조금 괴로웠다. 그래서 소식을 억지로 묻지 않았다. 말리는 같이 세미나 하는 사람의 집으로 갔다. 그 사람을 만날 때도 말리 소식을 묻지 않았다. 그냥 사진을 보여주면 구경할 뿐이었다. 물론 떠나간 아이 중 유일하게 다시 만난 아이가 말리긴 하다. 카카는 블로그를 통해 가끔 눈팅만 하고 있다. 그냥 이렇게 지내고 있구나 하는 확인일까? 참은.. 어쩌다 보니 가장 자주 확인하는 편이다. D집사완 예전부터 블로그 이웃이라 그냥 자주 확인하는 편이다. 반야와 눈물점은 해피와 평화란 이름으로 시골로 갔다. 그 집에서 블로그를 운영하여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끔만 갔다. 가끔 가면 드물게 소식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블로그는 이상하게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냥 꺼려졌다. 그래서 블로그 주소도 잊고 지냈다.
04
비공개 댓글을 확인하고 다시 반야와 눈물점의 블로그를 찾았다. 고양이 관련 글만 하나하나 확인하는데 손이 살짝 떨렸다.
지난 9월 25일 눈물점이 갑작스레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더 많은 정보가 궁금했는데 나와 있지 않았다. 그냥 갑작스레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소식 뿐이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말이 정확하게 어떤 의민지 잘 모르겠다. 내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겉돌 뿐이다.
궁금했다. 눈물점 혹은 평화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눈물점도 리카와 같은 병을 앓은 것일까? 그렇다면 유전인 걸까? 아님 다른 병에 걸렸거나 사고가 난 것일까? 이런 저런 심란한 질문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그리고 반야. 반야 소식이 없었다. 반야와 눈물점 혹은 해피와 평화, 둘의 사진이라는 포스트 이후 몇 달 동안 아무 글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점 혹은 평화만 있는 포스트가 등장했다. 마치 처음부터 눈물점만 있었던 것처럼.
시골이라 고양이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럼 반야는 어디에 간 것일까? 반야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몇 달 전, 정확한 날짜를 추정할 수 없는 시기에, 반야가 유난히 보고 싶었다. 그냥 반야가 자꾸 떠오른 시기가 있다. 뒤늦은 추론이 다 무슨 소용이랴. 하지만 반야가 사라진 것과 내가 반야를 떠올린 시기가 겹친 걸까? 잘 모르겠다. 다 사후해석이다. 지금 반야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고양이별로 간 것인지, 시골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잘 살고 있는 건인지, 알 수 없다.
05
[시마시마 에브리데이]에서 작가 토노와 함께 산 고양이 계보를 보면 재밌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출한 고양이와 갑자기 무지개 다리를 건넌 고양이가 꽤나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고양이의 가출은 흔한 일일까? 별스럽지 않은 일인 걸까? 예전엔 연대기를 보며 그냥 그랬다. 어제 다시 확인하다가 갑자기 무서웠다.
06
바람을 바라보고, 마구마구 괴롭히고, 또 부비부비하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망설였고 끝내 못 했다. 바람에게 “우리 오래오래 함께 살자”란 말을 할 엄두가 안 났다. 자신이 없었다. 15년 정도는 당연히 함께 할 줄 알았던 인연이 허망하게 혹은 나의 부주의로 끝나는 것을 겪으며 더 간절하게 매달릴 줄 알았다. 그 간절함이 무섭다. 무엇을 기약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 중 실현할 수 있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있고 약속할 수 있고 바랄 수 있을까?

07
무지개 다리를 건넌 눈물점이 리카를 만났길 바라. 나로 인해 헤어진 엄마를 그곳에선 만났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부디.
행방을 알 수 없는 반야는 무사하기를. 많이 무서웠겠다… 혼자 어딘가에 떨어져 나왔다면 많이 무서웠겠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말 밖에 달리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부디 무사하게 살고 있기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면 쓸쓸하지 않은 순간이었기를 바라. 하지만 부디 살아있기를.. 제발.
08
반야와 눈물점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여기서 리카와 세 아이가 함께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애도의 권력

집시들은 나치가 몰락한 뒤 다시 한번 주변화되었고 박해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25만 명의 집시들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모스, 326.

트랜스젠더건 다른 어떤 변태건 마찬가지인데,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는 언제나 어떤 권력을 실천하는 것과 같다. 모든 죽음이 애도되지 않고, 언급되지 않는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는 문제지만, 만약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에서 유태인이 경제계에서 권력을 쥐고 있지 않았다면 그때도 그렇게까지 애도했을까? 만약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의 경제권을 집시의 유족이 쥐고 있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익숙한 질문이다. 던지는 질문도 익숙하다. 모든 죽음이 애도되지 않는다. 죽음을 드러내고 애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망자의 권력을 가늠케 한다. 매우 우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