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후미오의 소설 [블루 혹은 블루]를 읽었다. 기대 이상. 도플갱어가 소재다.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나와 다른 내가 생긴다는 아이디어.
도저히 어느 쪽으로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정말 또 다른 내가 생겨나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때 나와 헤어진 나는 내가 하지 않는 선택 상황에서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을 살고 있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가 도망쳤던 또 다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본체’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도플갱어’란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도저히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과거의, 내가 모르는 선택을 한 나는, 나의 ‘본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들이 서로 만날
가능성은 있는 걸까? 만약 우리가 만나, 서로의 삶을 서로 바꿔가며 살 수 있다면 그때 나는 내가 모르는 나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나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 서로의
생활을 질투하겠지. 서로 상대방의 삶이 부러워서 생활을 바꾸고 싶어 하겠지. 그러다 때때로 바꾼 삶이 너무 낯설고 괴로워서 또
다른 나를 찾아 삶을 바꾸려고 하겠지. …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태그:] 야마모토 후미오
야마모토 후미오 『내 나이 서른 하나』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사랑받지 못한다는 콤플렉스.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던 열등감에서 나를 해방시켜준 것은 소설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음 순간 세상의 빛이 바뀌었다. 소설을 쓸 수 있으면 혼자 살 수 있다고 순수하게 실감한 것이다.
짝사랑은 괴롭고 안타깝다. 남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소설에게도. 그 안타까움이 지금까지 나를 움직이는 소중한 보물이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전철 안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야마모토 후미오. 「소설」 『내 나이 서른 하나』 이선희 옮김. 창해.
짝사랑은 괴롭고 안타깝다. 남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소설에게도. 그 안타까움이 지금까지 나를 움직이는 소중한 보물이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전철 안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야마모토 후미오. 「소설」 『내 나이 서른 하나』 이선희 옮김. 창해.
제목과 작가 때문에 읽었다. 주변에 서른 한 살인 사람이 있다면 권할 수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해서. 아울러 『플라나리아』를 읽으며 이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서 읽고 싶기도 했다.
첨엔 장편인 줄 알았다. 그래서 첫 번째 제목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제목의 이야기가 나올 때, 주인공이 여러 명인 소설인 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 서른 한 살인 사람들의 서른 한 가지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중편이나 장편으로 이야기를 풀어도 좋을 법한 소재들을 9쪽 분량으로 풀어서일까, 아쉬움이 남는 소재가 많다. 물론 짧아서 더 매력적인 내용도 있고.
「밴드」란 작품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후미오 작품을 이제 두 권 읽었지만, 단편집 두 권 모두 레즈비언이나 바이가 등장한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 그리고 위에 인용했듯, 마지막 구절은 유난히 좋다. 사실 마지막 구절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