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구경하기

언젠가 적었듯 내가 사는 동네는 거주 밀집 지역이라 어린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집 근처에서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게 좀 깊은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근처에서 양육자와 아이가 얘기를 나누는데..
“나 저거, 아래에서 공사하는 장면 찍었는데 보여줄까?”
라고 아이가 말했다. 양육자는 그 말에 잠시 머뭇.. 뭔가 궁금해서 보고싶어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녀석 혼나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양육자는 버럭 화를 냈다.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냐!”
자랑하고 싶었던 아이는 당황하며 위험하지 않았다고 우겼지만 이미 상황 반전… 아이는 한참을 혼났다.
그 찰나,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싶었다. 내가 그 아이 나이였다면 나 역시 자랑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알겠고 아이 입장에선 억울하지만 양육자가 혼을 내겠다는 것도 알겠다. 혼을 낼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츠바랑!>에서였다면 조심했는지만 확인하고 사진을 얼마나 잘 찍었는지를 주로 얘기했겠지?
또 하루는 집 근처에 있는데 한 양육자가 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 아이가 우아앙 울면서 걸어왔다. 아이는 울면서 양육자 근처를 위성처럼 돌았는데… 양육자가 화를 내며
“유치원에서 횡단보도 건너는 법 안 배웠어? 누가 그렇게 건너래?”
라고 말하자 아이는 (예상대로)
“앙.. 안 배웠어..”
(속으로 크크크크크크) 양육자는 다시 화를 내며
“그럼 유치원 선생님을 혼내야겠네.”
그러자 아이는
“안 돼…”
라며 다시 양육자를 따라갔다.
난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유치원에서 가르치지 않았을 거라고도 믿지 않는다. 유치원에선 가르쳤지만 아이의 관심이 아니라 기억을 못 했겠지. 혹은 양육자나 다른 어른(아이보다 나이 많은 어떤 존재)이 무단횡단을 하는 모습 등을 보여, 배운 것과는 달리 행동해도 괜찮다고 여겼거나. 종종 무단횡단을 하는 1인으로서..;;; 반성하겠습니다.
암튼 그 짧은 순간에 배우지 않았다고 우기는 모습이 귀여웠다. 물론 옆에서 구경하는 입장이라 귀여웠겠지만… 흐흐흐.

[영화] 캔디레인, 노 엔드, 뉴 월드: 퀴어영화제 SeLFF 상영작

헝 아이 첸Hung-I Chen [캔디 레인]
로베르토 쿠질로Roberto Cuzzillo [노 엔드]No(End, Senza Fine)
Etienne Dhaene [뉴 월드](The New World, Le Nouveau Monde)

어제까지 퀴어영화제, SeLFF에서 상영하는 세 편의 영화를 꼼꼼하게 살폈다. 말 그대로다. 어떤 영화는 5분 정도의 분량에 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일로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

[캔디 레인](Candy Rain)을 살피는 시간은 내내 유쾌했다. 이야기와 영상 모두 감각적이다.
[캔디 레인]은 기본적으로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한 사람,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 함께 하고 싶지만 함께 할 수 없어 불행한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 이렇게 네 종류의 사랑 이야기가 느슨하게 이어져 있다. 영상의 색채가 같은데도 에피소드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는 건 이 영화만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개그코드는 완전 내 취향이다. 흐흐. 살피는 내내 계속해서 키득 거리며 웃었다. 어떤 장면에선, 앉아 있는 장소가 도서관 혹은 공공장소란 사실을 잊고 박장대소를 할 뻔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연신 웃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와 네 번째 에피소드에 공감했다.
소개글은 여기

다른 두 편은 인공수정과 아동양육 이슈와 관련 있다. 파트너 관계에서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고, 아이를 갖는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은 다양할 테다. 어떤 이들은 의료과정을 거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입양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대리모’를 고용할 수도 있고, 그리고 …. 두 편의 영화는 서로 다른 이슈를 전하고 있다.

[노 엔드](No End, Senza Fine)는 인공수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공수정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건 깔끔하게 줄였다. 인공수정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다뤘다. 아이를 갖기로 했을 때, 부모의 반대를 직면할 수도 있다. 이건 두 영화 모두 같다. 문제는 인공수정을 하기 전에 파트너에게 죽을 수도 있는 병이 생겼을 때,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유사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에서, [노 엔드]의 변별점은 이 부분이다. 아이를 갖기로 합의했는데, 파트너가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참, 이 영화에선 인공수정 방법으로 의료기술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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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월드](The New World, Le Nouveau Monde)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 후 이성애가족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해소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정자를 제공한 ‘아버지’의 문제다. 레즈비언 관계에서 임신을 한 사람과 정자를 제공한 타인은, 현재의 가족개념에서 어떻게든 연결이 된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사람은 엄마로 불릴 것이고, 정자를 제공한 사람은 아빠로 불릴 것이다. 그럼 임신한 사람의 파트너는? 아이의 엄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빠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한 완전한 타인 같기도 하다. 정자를 제공한 이가 ‘아버지’로서 자신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파트너의 소외는 가중된다. 이 영화는 이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화에서 선택한 인공수정 방법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꽤나 코믹하다. 놓치기 아쉬울 수도 있다.
두 영화를 살피면서 인공수정이슈와 파트너 관계에선 임신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관계를 새롭게 고민할 수 있었다. 공동체, 관계, 아동양육, 인공수정, 출산, 엄마노릇, 아빠노릇과 같은 이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상당히 흥미로울 듯하다. 커밍아웃이란 주제에 관심 있다면 [뉴 월드]의 몇 장면들이 인상적일 것 같다.
소개글은 여기

암튼 세 편의 영화를 살핀 후, 좋은 영화의 기준이 조금 바뀌었다. 이야기가 탄탄하고 편집이 잘 된 영화가 좋은 영화일 수 있지만, 이제부턴 대사가 적은 영화가 좋은 영화다. ㅡ_ㅡ;; 아, 무성영화 만세!! ;;;;;;;;;;;;;;;;;; 흐흐.

이쯤해서 고백하자면, SeLFF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자막을 제작하고 있다. 덕분에 네 편의 영화를 미리 살피는 행운을 잡았다. 위의 영화 평은 준 내부자의 입장에서 쓴 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모호하다. 아마 단순 관객으로 영화를 접했어도 비슷한 글을 썼을 거 같다.

포스터 및 프로그래머 추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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