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참… 우중충하다-_-;;
작년이 이맘 때였다. 아니, 정확하게 364일 전인 작년 5월 15일은 마침 수업이 있었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날 수업이 있는 선생님들에게 무언가를 준비해서 선물을 하곤 했다. 수업이 끝났을 땐, 학과마다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선물을 준비하고 선생님께 드리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때 루인은 1학기였지만 내부 사정으로 공식 장학금 없는 행정조교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무심함에 조금은 화가 났다. 이렇게 바보 같구나. 물론 루인 개인이라면 그냥 심드렁하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행정조교라면 그 위치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꼭 그래서는 아니다. 올해, 그러니까, 내일이 스승의 날이란 걸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는 건. 그저 올핸 고마운 선생님들이 많았고 그래서 다만 연례행사라도 좋으니 뭔가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같은 과의 한 학기 선배인 ㅇㅇ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이 스승의 날이니 뭔가를 준비해야지 않을까요, 라는 내용. 그렇게 문자를 보내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학부조교를 하고 있는 ㅁㄴ가 들어와, 학교 측에서 학과별로 카네이션을 주고 있는데 안 받았느냐고 물었다. 학과에서 카네이션을 별도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교수 명단에 있는 수만큼 학교에서 구매해서 학과에 배당하는 방식. 이번 학기까지 대학원 조교를 3학기 째 하고 있지만 알리 없다;;; 그래서 알아보니 ㄷ**에서 나눠주고 있다고 했고, 그쪽으로 알아 봐야 했다.
언제나 이런 일엔(그러니까 전화를 하는 일엔), 준비 시간이 필요해, 잠시 망설이고 전화를 했다. 여성학과 인데 카네이션 안 주시나요?, 라는 요지의 질문. 선생님 몇 분 계시느냐고, 누구누구냐고 물었고,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학과 운영위원인 선생님들이 동시에 다른 과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ㄷ**에서도 알았을 때, 선생님들이 적을 두고 있는 학과로 줬으니까, 그 쪽에서 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순간 울컥했다. 여성학과가 있으니 여성학과 측에서도 직접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시 말했지만, 그곳의 대답은 행정업무에서 통하는 상식으로, “선생님들에게 중복으로 드릴 수는 없으니까”였다. 그냥 참담한 기분 혹은 울컥하는 기분으로, 알았다고 말하며 끊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협동과정으로서 학과가 생긴지 이제 3년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사실 행정업무로 전화를 할 때면,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성학과요? 그런 학과도 있어요?” 라는 말은 전화상으로만 들은 말이 아니라 면전에서 직접 들은 말이기도 하다. 바로 몇 달 전엔 “여성학과에서 왔는데요”라는 말에 “우리 학교에 그런 과 없는데”란 말도 들은 적이 있고. 이런 말 들었을 때도, 그렇게 당혹스럽진 않았다. (물론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엔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흐를 뻔 했다.) 여성학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수학과란 과가 있어요?”란 말은 할 수 없어도 “여성학과란 과도 있어요?”란 말은 할 수 있는 맥락들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사실, 이런 상황들은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부딪히지만, 그럼에도 개의치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이유로 행정 상 제약이 덜한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오늘 ㄷ**과 전화를 하며, 여성학과가 아니라 다른 과에서 드릴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울컥했던 건 이런 착각이 부서지는 경험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도의 내부에 있지 않다는 환상으로 버텨왔지만 그 환상이 여지없이 깨질 때의 우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동시에 제도 내부에 있지만 내부에 소속 되어 있지도 않음. 제약은 다 받아야 하지만, 필요나 “혜택”은 요구하거나 누릴 수 없는 지대라는 걸 새삼 상기했기 때문일까. 너무도 고마운, 루인의 지도교수에게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 꼭 학교의 공식적인 방식을 통해 표현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방식을 거부할 권리조차 없이 원천배제 상태라는 걸 깨달은 기분이다. (정말 상징하는 바가 많은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 여성학과의 위치, 트랜스/트랜스젠더의 위치, 퀴어의 위치 등이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따로 떨어져서 존재한다는 건 아니고. 그러고 보면 기묘하게도 루인을 닮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선생님들께 드릴 꽃을 직접 사려고 했으니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상관없었다, 상관없었다, 란 말을 중얼거리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곤 있지만, 엷은 우울에 잠기는 건 또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여성학과도 있다”란 식의 “인정투쟁”을 할 의향도 없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감정상태. 그냥 그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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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협동과정 운영방식을 모르는 분이 계실까봐 적으면, 일테면 수학과라면 수학과에 적을 둔 선생님들이 있지만, 협동과정의 경우엔 협동과정에 별도의 적을 둔 분은 없고(적어도 루인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엔 그렇고) 선생님들이 각자 전공하는 과에 적을 두면서 운영위원으로 여성학과에 참여하고 있는 형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