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김훈의 산문집이 있어 몇 줄 읽었다. 그는 연필로 쓰는 글쓰기에 애정을 표했다. 그 자신이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다가 뜬금없이 왜 원고지는 200자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원고지에 글을 쓰지 않는다. 이면지, 다른 무언가를 출력해서 뒷 면이 깨끗한 이면지에 글을 쓴다. 종이가 더블A면 가장 좋고. 하하. 이건 글쓰기에서 나의 몇 안 되는 사치 혹은 까탈스러움이다. (사실 펜으로 글을 쓸 때면 더블A가 느낌이 가장 좋다.) 아무튼 이면지에 글을 쓸 경우, 한 면을 다 채우면 워드프로그램에서 한 쪽 이상의 분량이 나온다. 나의 글자 크기로는 대충 그렇다. 예전에도 적었듯, 펜으로 글을 쓸 때면, 어느 정도 쓰다가 막히면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경향이 있다. 몇 줄 안 쓴 상황이라면 사용하던 종이에 그대로 써도 괜찮다. 하지만 반 이상 쓴 경우라면 새 이면지에 써야 한다. 그럴 경우, 어느 정도 정리를 한 부분도 다시 처음부터 쓰고, 막히던 부분을 연결해서 쓴다. 이건 원고지로 따지면 대여섯 장을 새로 쓰는 격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원고지는 200자가 아닐까? 새로 써도 200자 정도만 새로 쓰면 되니까. 마지막 줄의 문장이 꼬여서 쓰던 원고지를 버리고 새로 써도 200자만 쓰면 되니까. 1,000자 혹은 1,400자 이상을 새로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원고지를 살 의향은 없다. 명백한 낭비. 난 아마 원고지도 이면지 삼아 뒷 면에 쓰지 않을까 싶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