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기본은 내가 받은 괴로움을 상대방도 같은 질감으로 같은 시간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랜 시간 이를 갈며 복수를 꿈꾸던 이를 단칼에 베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분이 풀릴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주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실천하는 복수 중엔 좀 다른 것이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이미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도록 하는 것이다. 복수 계획을 모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복수가 진행 중이란 점을 모르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귀하고 중요한 자료를 찾았다고 하자. 국내에선 구하기 어렵고 어지간한 검색으로도 찾기 어렵다고 하자. 제목 만으로도 알 수 없고. 그런데 이 자료가 나보다 B에게 더 중요하며 B가 지금 겪고 있는 난관을 돌파하는데 큰 도움이 될 자료라고 하자. 좋은 관계라면 나는 이 자료를 B에게 줄 것이다. 참고하라고 넘길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뭔가 맺혔거나 상당히 불쾌한 일이 있었다면? 난 그에게 어떤 자료도 주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주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자료가 있는 것을 모른 척 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어떤 시기에 그 논문을 인용하며 글을 쓰겠지. 어떤 사람에게 이것은 복수가 아닐 것이다. 아니,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내가 복수를 하고 있음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복수란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단순히 같은 수준의 괴로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라 도와주지 않는 것도 복수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요점은 복수란 때때로 은밀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은밀한 복수를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