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동네냥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있다. 리카와는 몇 번인가 고양이키스도 했다! 그땐 무척 감동이었다. 하지만 리카와 나의
거리은 여전히 1미터. 리카는 언제나 1미터 정도의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며 내게 다가온다. 스프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온다. 물론 내 손이 닿도록 가만두진 않는다. 음식을 줄 때면 오른쪽 앞발을 흔들며 음식을 낚아 채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악수라도 하고 싶지만 가당찮은 일. 아무려나 나는 여전히 음식을 주고 있다.
조금은 변했다. 예전엔 매일매일 가급적 같은 시간에 음식을 줬다면 요즘은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 혹은 이틀 연속으로 주곤
다시 하루 쉬는 방식으로 음식을 주고 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별을 연습하고 있다.
한동안 음식을 규칙적으로 조공했다면 지금은 불규칙적으로 조공하고 있다. 이런 나의 태도와는 별개로 음식을 꾸준히 줄 때도
동네냥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졌다는 점은 다행이다. 고등어무늬 고양이 중 한 아이는 내가 음식을 주러 나가도, 자기가 찾은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내가 준 음식을 먹으러 왔다. 이런 모습들은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은 음식을 주는 패턴을
바꾸고 있다. 서로에게 적응했던 몸을 바꿔나가기. 그 시간을 넉넉하게 주기. 내가 음식을 주는 시간을 깨닫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으니 불규칙한 행동을 깨닫는데 한달이면 넉넉하겠지.
아쉽기도 하다. 리카는 내가 나가면 야옹, 야옹 울면서 음식을 요구한다. 스프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내게 무척 가까이
다가온다. 이 정도의 관계를 만드는데 들인 노력을 떠올리면 아쉽다. 하지만 아쉬움은 나의 몫이다. 고양이들에게 나의 아쉬움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고양이들에게 나의 행위가 화양연화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때 만만한 인간이 음식을 줬던 적이
있지’라고 떠올려 주기만 해도 좋겠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헤어져야 한다면, 이별을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지. 그 시간이 안타깝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이 추운 겨울, 살아있다는 사실은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