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는 분들에게 “루인”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익숙할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주 찾는 블로거는 내게 일종의 연예인이다. 모두가 유명인인 시대라서가 아니라, 즐겨 찾으며 글을 읽고 싶은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맥락에서 해석하면, 내가 아예 무명씨는 아니리라.
요즘 일하러 가는 곳에서 나는, 익명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나를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법률상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어차피 마찬가지. 그리고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편하다.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없어 처음부터 나를 소개하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적당히 편집해서 드러내고 싶은 것만 선별할 수 있는 상황이 참 편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루인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지내고 있다. 아니, 그곳에서 나는 굳이 루인일 필요가 없다. 내가 하는 일부터 그러하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그곳에서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날 아는 사람 자체도 그렇게 많지 않고.
(사실 내가 아는 사람보다 날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닫고 당황할 때가 많아 지금 일터가 이런 점에선 편하다는;; )
현재 일하는 곳에선 나름 충격적인 일도 있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 줄 알았는데, 대화를 듣노라면 이성애를 당연시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모든 영역에 민감할 순 없다. 나는 트랜스젠더 이슈에 더듬이를 예민하게 뻗지만, 다른 이슈엔 둔할 때가 많다.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이 전공으로 삼는 분야가 아니면,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수준 이상으로 알기 어렵다. 그래서 개개인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너무 당연하게 모든 개인을 이성애자로 가정하는 언설에 당황했을 뿐이다. 좀 다를 거란 기대는, 어쩌면 나의 허영이었을까?
아무려나 며칠 전엔 우연히 LGBT 얘기가 나왔다. 거짓말. 우연은 아니다. 내 자리에 퀴어문화축제 엽서와 레인보우링 스티커를 붙여 뒀는데, 누군가가 퀴어문화축제 엽서에 적힌 LGBT를 보고 질문을 해서 나온 얘기였다. LGBT가 무엇의 약자냐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요즘 유행하는 동성애코드 얘기로 넘어갔는데. 한 인턴이 “제 주변에 성적소수자가 없어서 그러는데, 그 사람들도 뭐 특별히 다르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라고 다른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 자리에서 난 어쩌면 비트랜스-이성애자로 존재했으리라. 퀴어문화축제 엽서를 가지고 있다고 퀴어로 여기는 걸 문제삼는 맥락에서 내가 비트랜스-이성애자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감수성이 부재해서 그런 건데… 암튼 내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그 인턴의 말은 결코 들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특강 같은 자리에서 질문할 수는 있어도, 그 공간 그 자리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무명씨로 지내기로 했다. 원래 무명씨기도 하거니와 굳이 내가 주로 활동하는 영역을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누구도 묻지 않는데 구태여 드러내는 것도 웃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