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셀프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며칠 전, 한 수업시간에 강사선생님의 도움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서 훼손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차별금지법의 현재 상황과 관련해서 설명하며 인터넷으로 서명하라는 얘길 했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분위기라(원래 이런 건 그 자리에서 서명 용지를 돌리지 않으면 안 하는 경향이 있다), 사무실에 오셔선 간단한 용지가 없느냐고 물었다. 즉석에서 간단하게 서명용지를 만들어, 그 수업에 원하는 사람만 하라고 하면 된다며 돌렸는데, 대충 보니 모두가 다 연명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의 말”은 비웠지만, 그래도 일부 몇 명은 지지의 말을 적었다. 그 중에 한 명이,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태어났습니다”라고 적었다. 물론 차별금지법의 현재 상황에 비추면 이 말에 딴죽 걸 필요는 없고, 이 말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대중홍보용 문구이긴 하지만, 이 구절을 읽으며, ㄷㄱㅈㄱ님이 긴급행동 홈페이지에 올린 웹자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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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보의 아래쪽에 있는 “인권은 셀프에요”란 말. 단박에 이 말이 좋았다. 아, 물론 이 웹자보는 서명을 독려하려는 의도와 차별금지법이 있다는 거, 그런데 7개 항목(가족상황 및 가족형태, 병력, 학력, 출신국가, 성적지향,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이 빠졌다는 걸 알리려는 의도이지, 활동가로서 같이 활동하자는 의미는 아니다(물론 활동도 같이 하면 좋지만… 흐흐흐 ;;;). 적어도 루인의 입장에선,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이런 상황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알고 있고 관심을 놓지 않는 것 역시 활동이라고 고민하고 있으니까.

“인권은 셀프”란 말이 좋은 건, 이른바 “천부인권설”에 기대어 “인권은 보편적이고 타고난 것이다”며 “지금 나의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아서다. 더 정확하게는, 인권이 단 한 번도 보편적이지 않았던 역사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쟁취한 역사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불법이주노동자”들을 그물로 잡는다거나, “이반”이란 이유로 학교에서 자퇴할 것을 종용받고 있는 상황, 고졸이나 이른바 서울소재 명문대가 아니란 이유로 취직이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권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선별적이고, (확인할 수 없는)”다수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차별받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인권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걸 자인하는 격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이 보편적인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권을 좀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7개 항목의 삭제는, 7개 항목이 만들어낸 범주에 속하는 사람에겐 아직 이런 “보편”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이러나저러나 “인권은 셀프”라는 말,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