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 잡담

01
한국사회에서 섹슈얼리티가 무엇을 의미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의 프로포절이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섹슈얼리티 이슈는 인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_-;; 아놔…

02
지난 토요일(12월 4일) 어느 학술대회 갔다가 들은 대화

ㄱ: 성매매는 워낙 복잡하고 도덕이나 사회질서 문제로 볼 수 없고, 그래서 법으로 판단하고 금지할 수는 없어요… (후략)
ㄴ: ㄱ 선생님은 성매매의 비범죄화를 주장하셨는데… (후략)
ㄱ: ㄴ 선생님이 뭔가 오해하셨는데요, 성매매가 워낙 복잡하고 개개인의 맥락이 단순하지 않고 매우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감히 법으로는 이런 접근을 할 수 없다는 거죠.
ㄴ: 그러니까 비범죄화하자는 거잖아요.

이상, 실화였습니다. ㄱ은 법학전문대 교수고 ㄴ은 검사였습니다.

학술대회엔 몇 가지를 기대했습니다. 십대 여성과 성매매 이슈의 교차점 관련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검사와 판사가 재밌는 얘기를 많이 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발표자와 토론자 중 몇 명이 찬반 이분법으로 말해서 좀 짜증났습니다. 반성매매냐 성노동을 지지하느냐,와 같은 식으로요. 그래도 재밌는 자리였습니다.

03
일요일엔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재생산 관련 공부를 시작할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전부터 관련 얘기를 조금씩 했지만, 이제 본격 시작할 듯합니다.

11월 중, 어느 발표장에서 제 발표문을 토론한 선생님이 재생산과 섹슈얼리티 통제, 위계 관련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줬거든요. 그래서 재생산 관련 공부를 해야겠다고 고민했지만, 시작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는 시작할 수 있을 듯해요. 🙂

상상력과 인문학

요즘 제가 이런저런 일로 바빠 안타깝게도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어 지하철 타는 9분 정도 읽는 안타까운 일이. ㅠ_ㅠ
이렇게 쓰면 마치 평소엔 책, 아니 글자라도 읽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문제가 있지만요… 아하하. ㅠㅠ
꼭 평소 공부를 안 하면서 바쁠 때면 바빠서 공부를 못 하겠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1人이랄까요.. 음하하.;;;
암튼 바빠서 대충 때우는 포스팅이 맞아요… 으하하…;;;

암튼 읽고 있는 김영민의 책에 재밌는 구절이 많더군요.

<상상력은 도약 이다>란 장에선

어쩌면 이 ‘어처구니없이 뛰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 상상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신나고 흥분할 만한 일이고 … 지성의 활동을 보이는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여덟 길동이 팔도에 다니며 호풍환우하는 술법을 행하니 … 팔도가 요란한지라 … “라는 구절을 대하는 우리는 이 사태의 반상식에 그리 괴로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묘한 공명의 희열에 들뜨기까지 한다. 우리는 본래 도약을 위해 준비된 존재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옷이 자연이 아님은 옷을 입는 행위 속에 자명해진다: 옷이 몸을 입는 것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상식은 ‘바람이 제 갈 데로 불 듯이’ 홀로 자존하지 못하고 숙주를 필요로 한다.

<상상력은 떼어진 것을 붙이는 기운(氣運)이다>란 장에선

떼어진 것들에서 붙어 있는 것들로 도약하는 것 – 상상력의 진수는 이러한 능동성 속에 있다.

모든 인간의 경험은 상상력을 통해서 인간적으로 통합된다. 상상력의 ‘붙이는 힘’이 개입되지 못한 세계와 그 경험은 데이타의 무의미한 집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은 그 주체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에서 인문학적인 배경을 갖는다. 물론 모든 학문이 인문학은 아니다. 그러나 개들이 하는 학문이 아닌 이상 모든 학문은 – 그 정도에 시비가 있을 수 있겠지만 – 인문학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문학을 구태여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지적 탐구가 인문학적 색깔[humanistic coloring]을 내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된 조건이다. 안경을 끼기 위해서 안구(眼球)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구절들이 요즘 고민에 실마리가 되어서 좋달까요… 아하하.

인용 구절 출처 제대로 안 밝혔다고 출판사에서 딴죽 거는 건 좋은데, 그 전에 품절시킨 거 다시 발간부터 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