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저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트랜스젠더 연구활동가”입니다. 요즘은 “트랜스젠더/퀴어 연구활동가”란 표현도 쓰고 있습니다. 가장 적게 쓰는 혹은 거의 쓰지 않은 표현은 “페미니스트”입니다. 만약 어떤 정치적 입장, 혹은 제 인식론의 배경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해야 한다면 “트랜스젠더/퀴어/페미니즘 연구활동가”가 가장 정확할 듯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며 퀴어고 또한 페미니스트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가장 많이 쓰는 용어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연구활동가는 너무너무너무 적으니까요. 트랜스젠더 이슈로 가끔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는 사람은 있지만, 트랜스젠더 이슈에 천착해서 연구활동을 하는 사람은 너무너무 적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저를 “트랜스젠더”로, “트랜스젠더 연구활동가”로 소개하려 합니다. 미디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활동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를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싶은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제가 저를 “트랜스젠더 연구활동가”라고 소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이라고 믿습니다(착각은 자유니까요 크크 ;; ).
최근 들어 “트랜스젠더/퀴어 연구활동가”라는 표현도 자주 쓰고 있습니다. 퀴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 너무도 낯설기 때문에 이를 환기하고 싶은 바람도 있지만 트랜스젠더 이슈는 또한 퀴어 이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바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번째 바람엔 문제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이슈가 또한 퀴어 이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면, 저는 “트랜스젠더/퀴어/페미니즘 연구활동가”라고 표시해야 합니다. 제겐 트랜스젠더 이슈와 퀴어 이슈, 페미니즘 이슈가 별개가 아니니까요. 제게 이 셋은 그냥 제가 동시에 겪는 일입니다. 동시에 고민하는 일이고요. 그래서 제가 “트랜스젠더 연구활동가”라고 적는다면, 그 말엔 “트랜스젠더/퀴어/페미니즘 연구활동가”란 의미가 함축해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트랜스젠더 이슈로 쓰는 모든 글은 트랜스페미니즘 혹은 트랜스젠더 페미니즘을 모색하기 위한 과정의 산물입니다. 비록 부제에 “트랜스페미니즘”을 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합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페미니즘은 제 인식론의 토대였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때때로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트랜스젠더를 기준 삼아 이루어진 페미니즘에 문제제기하는 것이자 페미니즘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인 거죠. 트랜스젠더 혹은 퀴어를 배제하는, 논하고 싶어하지 않는 페미니즘에 도전하고, 제가 배운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것이죠. 그냥 그 뿐입니다. 별다른 것 아닙니다. 그리고 이 별다른 것 아닌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