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곁에서

결국 우리는 다 죽는다. 태어나는 순간 죽을 운명으로 살아간다. 허무하단 얘기가 아니다. 인생 덧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존재에겐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다. 우린 언제나 시간을 살아가고 시간을 겪으며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무려나 결국 죽는다지만 우리에게 혹은 적어도 내게 죽음은 그리 가깝지 않다. 이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내일 아침엔 잠에서 영원히 깨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며 잠들지 않는다. 내일 깨어날 것을 기대하고 이런 기대로 약속을 잡는다. 정말 내일 아침에도 일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깨어날 거란 기대로 살아간다. 그러니 적어도 내겐 나의 죽음이 다소 먼, 막연한 느낌이다.

어머니가 달라졌다. 수술 결과에 따라 생의 갈림길에서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직접적 가능성에 직면하며 어머니가 변했다. 그전까지 어머니는, 언젠가 죽겠지만 당장은 아니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큰 수술을 앞둔 지금의 어머니는 삶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이를 테면 몇 년 뒤에 사용하려고 여기저기에 쟁여둔 생필품을 모두 털어내고 있다. 언니에게, 내게 그 모든 것을 털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수술의 예후가 괜찮다고 해도 또 다른 병이 있으니 어머니로선 삶에 어떤 미련을 조금씩 털어야겠다는 고민을 하시는 듯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겠다는 기대로 어렵게 구했는데 1년도 안 되어 정리할 마음이 든 듯하다. 당장 무슨 일이 생겨도 놀랍지 않은 상황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물론 또 다시, 어머니가 죽기 전에 내가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도 더 강해졌다. 결국 나는 불효를 하겠지만 어머니는 삶의 규범성, 죽음의 규범성을 완수하고 싶은 바람을 더 강하게 품기 시작했다. 서로 이룰 수 없는 욕망과 기대가 엄청 부딪힐 테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커다란 상처를 주고 받겠지. 어머니는 이제,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얼른 결혼하라고 할 테고(이미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을 외면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결국 어머니를 괴롭히는 결과를 야기하겠지. 존재 자체로 불효녀/불효자인 나는 어머니에게 계속 상처를 줄 테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어머니가 느낄 서러움을 강화하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은 또 내가 겪어야 할 일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것이 내가 속해야 한다고 강제된 가족의 문법인 것을.

봄 꽃 지며 꽃바람 불 때 난봉꾼이 태어났다

작년 수업 시간에 쓴 쪽글입니다. 그냥 마무리해야 할 듯해서 마저 올립니다.
그나저나 요즘은 면식 수행의 길에 들어설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자세하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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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0.화. 15:00-
봄 꽃 지며 꽃바람 불 때 난봉꾼이 태어났다
-루인
박철수. <학생부군신위> 1996.
임권택. <축제> 1996.
Itami Juzo伊丹十三. <장례식 The Funeral> 1984.
Takita Yōjirō滝田洋二郎. <굿’바이  おくりびと> 2009.
2012년 봄. 아버지의 장례식장. 조문실에 종일 유폐되어 있다가 잠시 밥을 먹을 때였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육류 중심의 장례식장 음식으로 먹을 것도 마땅찮았지만 뭐라도 먹긴 해야 했다.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었고 저녁을 먹기엔 너무 이르지만 밥과 김을 챙겨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음식 준비와 손님 맞이를 위해 고용한 분의 말소리가 들렸다, 상주가 참 정성스럽네.. 저러다가 쓰러지겠네… 내게 하는 말이었다. 조문객을 받을 때마다 내야 했던 곡소리를 지칭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장례식을 진행한지 이틀 만에 그 분과 나는 처음 만났고 그 동안 우리가 만날 기회는 나의 곡소리 뿐이었다. 곡소리만큼은 정말 성실하게 냈었다. 목이 쉰다고 곡소리도 쉬어 가며 하라는 얘길 들을 정도로 곡소리를 쉬지 않고 냈다.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의 한 장면처럼, 복식(腹式)으로 곡소리를 냈다. 곡소리만 들으면 나는 정중하고 또 예를 갖춘 상주였다. 더 정확하게는 곡소리만 예를 갖춘 상주였다. 조문실에서 나는 가장 예의 없고 문제인, 고인의 죽음을 불행하게 만든 존재였다. 하고 다니는 꼴은 규범적 젠더에 부합하지 않으며 특정 나이에 기대하는 어떤 것도 이루지 않았다. 그러니 일하는 분과 내가 이틀 만에 만난 건, 이원젠더 규범이 야기한 성역할의 효과기도 했지만 나를 조문실로 유폐하고자 했던 유족의 욕망과 친족법의 효과기도 했다.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1996)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1996)는, 비록 영화 보는 재미를 주진 않지만 장례식을 재현하는 작품이란 점에선 흥미롭다. 두 영화는 고인의 탄생(!)부터 입관, 발인, 그리고 하관까지 장례식의 기본 절차를 차례로 정리한다. 아울러 한국 사회의 장례식장에서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의 일부를 담고 있다. 남성 역할인 사람은 조문실에 있거나 방에 앉아 훈수를 두거나 음식을 받아 술을 마시고 있다. 여성 역할인 사람은 모두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조문객이 앉을 자리를 정리한다. 조문객은 이런 날 취해야 한다며 술을 마시고 또 밤새 화투를 친다. 어떤 조문객은 술에 떡이 되어 볼썽사나운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장례식장마다 꼭 한 명은 있는 ‘난봉꾼’ 역시 두 편의 영화에 등장한다. 장례식장은 이원 젠더 규범을 재생산하는 공간인 동시에 ‘난봉꾼’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두 영화가 흥미롭다면 바로 이 지점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에서 난봉꾼 역할은 준섭(안성기)의 형이 외도로 데려온 딸 용순(오정해)가 담당한다. 데려온 딸이란 점은 다른 가족과 어울리기 힘든 이유가 되고(도대체 왜?) 용순의 화려한 화장은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게 튄다. 용순은 존재 자체로 불편하다. <학생부군신위>에서도 사실상 ‘데려온 아이’가 난봉꾼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고인을 애도하고 장례식장을 어지럽히고 차동차를 폭발시키는 등 다양한 사고를 일으킨다. 이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애도하지만, 관습적 애도 문법에 부합하지 않고 이것은 이들을 문제적 존재로 추방한다. 내가 겪은 몇 번의 장례식에도 난봉꾼이 있었다.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삼촌의 장례식장에서 난봉꾼 역할은 내가 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난봉꾼 역할은 내가 했다. 그러니까 내가 문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성애-이원 젠더 관습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촌의 장례식장엔 의도하지 않게 매니큐어를 하고 갔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선 머리카락이 너무 길고(그리 길지도 않았지만) 성취한 것 하나 없는 천덕꾸러기란 점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나는 장례식 질서를 깨는 존재였고 그 자리에 두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디 갖다 버릴 수도 없는 존재였다. 장례식장에서 지켜야 할 규범적 (젠더)질서, 이 질서를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가 난봉꾼 생산의 주요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난봉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장례식장에서, 술에 떡이 된 존재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그는 그냥 내쫓기면 그만이다. 난봉꾼은 내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들일 수도 없는 존재, 즉 유족의 지위를 가지면서 고인을 애도할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다른 말로 고인을 애도하는 규범적 절차에 따라 애도하는 행위는 난봉꾼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슬픔이란 감정이 아니라 슬픔을 표현하는 형식, 절차다.
한국의 장례식 절차를 다룬 <학생부군신위>와 <축제>가 일본의 장례식 절차를 다룬 이타미 쥬조의 영화 <장례식>(1984)과 타키타 요지로의 영화 <굿’바이>(2009)를 만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것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과 얼굴이다.
한국의 장례식장에서 슬픔은 그 표현이 격할 수록 좋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울면서,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온다면 이것은 고인을 가장 절절하게 애도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래서 유족이 슬픔을 격하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예법을 위반한다고 해도, 유족이라면 이 위반은 용인된다. 아울러 <학생부군신위>와 <축제> 모두에서 나오지만 한국의 장례식장은 떠들썩할수록 좋고, 유족의 곡소리와 울음 소리가 클수록 장례식 분위기가 난다고 평가받는다. 곡소리가 나고 식장을 가득 채울 법한 울음 소리가 날 때, 그때야 비로소 장례식장이 장례식장으로 구성된다. 장례식장이 조용하다면 이건 차분한 게 아니라 쓸쓸한 것이며 고인을 외롭게 만드는 일이다. 한국의 장례식장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자리며 유족과 조문객이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만남의 장이다. 반면 영화에서 재현하는 일본의 장례식장 풍경은 차분하다. 슬픔을 표현하고 또 울지만 고인을 최대한 담담하게 보낸다. 특히 <굿’바이>에 등장하는 다양한 집안의 장례식은 고인을 애도하는 방식이 반드시 슬픔과 곡소리, 울음의 형식이어야 하는 건 아님을 알려준다. 한국의 장례식장에서 버럭 화를 내는 큰 소리가 난다면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일본의 장례식장에선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이 감정 표현을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고인을 애도하는 감정에 어떤 형식을 부여하느냐의 차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굿’바이>에 나온 몇몇 집안처럼 좀 더 경쾌하게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부럽다. 슬픔의 형식, 고인을 애도하는 형식을 규정하는 한국의 분위기가 난봉꾼을 생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또한 고인의 얼굴에 있다. 한국의 가정집에서 장례식을 치를 경우,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된다. 고인은 줄곧 병풍 뒤에 머문다. 유족과 조문객은 병풍 뒤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는/믿는 고인을 애도한다. 병풍 뒤에 머문 고인은 얼굴을 가린 상태다(죽음은 이불이나 천으로 얼굴을 덮은 것으로 상징된다). 그리하여 유족이 아니라면 고인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다. 이제 기업화된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르면서 고인은 유족과 더 멀어졌다. 고인을 애도하는 조문실에 고인은 없다. 고인은 지하 냉동실에 잘 보관되어 있다. 유족 역시 식장에서 허락하는 시간, 정확하게는 장례 절차에 따라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시간에만 얼굴을 볼 수 있다. 고인을 얼마나 잘 염습하는지 직접 확인할 방법도 없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염습이 다 끝난 뒤다. 그리하여 장례식장의 유족과 조문객은 고인의 얼굴을 고인의 시신에서가 아니라 고인을 기억하는 조문객의 얼굴에서 혹은 고인과 닮은 유족의 얼굴에서 조우한다. 반면 일본의 장례식 절차는, 특히 가정집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 유족과 조문객은 고인의 얼굴을 계속 확인할 수 있다.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인의 얼굴을 살아 생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리하고 재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고인을 보내는 매우 중요한 절차기도 하다. 고인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건 죽음을 좀 더 가까이서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인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삶과 죽음이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삶과 함께 한다는 걸 깨닫는 경험일 수도 있다. 즉 죽음은 공포와 낯선 사건이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경험이 고인을 애도하는 형식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든 것이 아닐는지.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죽음이 낯선 공포의 사건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건, 장례식장에서조차 조문실과 고인이 완전히 분리된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애도하는 자리에 죽음은 상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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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네 편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 장면은 <장례식>의 마지막 즈음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부산에 갔을 때는 아직 서울에 봄꽃이 피지 않았었다. 장례식과 삼우제를 지내고 서울로 돌아왔을 땐 봄꽃이 지고 있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것만 같은 그 풍경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사유하는 방법

수업 쪽글입니다. 이틀 연속 새벽에 잠들었네요.. 어젠 급하게 마감해야 하는 원고를 쓰느라 새벽 2시 넘어 잠들었고, 오늘은 제가 약속한 일이 있어 새벽에 자네요.. 괜찮아요. 모두 재밌는 일이니까요. 🙂 하지만 쪽글로 때우는 건 유쾌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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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화. 13:00-
죽음을 사유하는 방법
-루인
죽음은 어쩌면 고인이 속한 공동체와 유족이 속한 공동체가 경합하는 사건이며, 고인과 유족의 관계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의미화되는지를 드러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고양이와 아버지와 동료 활동가의 죽음 및 장례식을 겪으며, 이 과정에 얽힌 복잡한 정치학의 단면을 엿보았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죽음은 삶의 연장이자 다양한 정치적 범주가 가장 첨예하게 작동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죽음과 장례식은 매우 정치적 행위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제임스 린데만 넬슨(James Lindemann Nelson)의 글은 죽음에 작동하는 정치학을 읽는다. 역사적으로 죽음이 어떻게 이해되었고 죽음에 젠더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탐문함이 넬슨의 주요 논점이기도 하다. 넬슨이 논하는 몇몇 연구자는 죽음이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에게 어떻게 달리 해석되는지를 조사했다. 이를 테면 청년의 죽음은 애석한 비극으로 인식된다면 노년의 죽음은 그럴 수 있는 일로 인식된다(115). 이것은 죽음이 나이와 세대에 따라 다른 사건으로 이해된다는 뜻이며 죽음이 결코 동질적 의미의 사건이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나이/듦이 죽음에 지배적 영향을 준다는 가정을 전제한다(116). 나이듦만이 죽음에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죽음은 계급과 계층에 따라 달리 이해되었다. 죽음이 모두에게 동질적 사건이란 인식은 죽음을 둘러싼 정치적 경합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죽음이 모두에게 동질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예를 들어 죽으면 귀족이건 부자건 하층민이건 빈자건 모두의 몸은 썩어 없어진다)은 그렇게 간단한 인식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죽음은 계급마다 다른 가치였고, 귀족이나 하층이나 죽으면 같다는 사실은 귀족 계층에게 굉장히 충격적 인식이기도 했다(118).
그렇다면 죽음은 나쁜 사건, 삶에 해를 끼치는 사건이기만 한 것일까? 죽음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는 앞으로 가능할 어떤 재화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고 겪을 수 없다는 데 있다(119-21). 그리고 이것은 정확하게 삶을 어떻게 기획하고 삶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와 관련한 이슈기도 하다. 넬슨은 이를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제목 아래 두 가지 다른 자아 개념으로 설명한다(121-4). 첫째, 커리어 자아(career selves)는 성공 등 단일한 목표에 따라 ‘합리적으로’ 삶을 기획함과 같다. 이것은 시장의 가치에 따라 삶을 구성하는 것이며, 이 개념에서 중요한 건 개인과 행위성이다. 둘째, 연속적 자아(seriatim selves)는 커리어 자아와 달리, 삶을 다양한 상황과 역할, 직업 등으로 엮어가며 사유하는 방식이다. 연속적 자아에서 중요한 건 개인보다는 관계다. 연속적 자아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며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렇게 삶을 다르게 기획한다면 그 삶이 받아들이는 죽음 역시 전혀 다르게 의미화된다. 그리하여 삶 뿐만 아니라 죽음 역시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다면적 사건이라면 죽음은 젠더에 따라서도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 넬슨의 주장이다.
넬슨의 죽음 논의는 흥미롭지만 이 논의엔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몇 가지가 주요 논의가 빠져 있다. 그 중 하나는 종교며 다른 하나는 의료 승인체계다. 비록 종교가 더 이상 이 사회의 지배 규범적 가치 체계가 아니라고 해도 종교는 여전히 우리 삶에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죽음을 애도하는 의례는 많은 경우 종교적 삶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아울러 의료제도는 죽음을 승인하는 유일한 권력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죽음은 오직 의료 승인체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의사/의료제도의 인정이 없다면 그 죽음은 ‘아직은 살아 있음’과 같다. 이런 점에서 종교를 갖고 있는 여성이 의료 제도에서 겪는 곤란을 다룬 페기 데스오텔스(Peggy DesAutels)의 논문은 흥미롭다.
데스오텔스에 따르면, 의료 윤리를 다루는 생명의학자와 페미니스트는 종교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종교를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 의례로 이해하는 생명의학자에게 종교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일부 페미니스트에겐 가부장적 가치와 성차별주의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장치인 교회를 긍정적으로 다루기 힘들었다. 하지만 통념과 통계에 따르면 남성보단 여성이, 청년보단 노년이 종교와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있고 더 자주 기도를 한다. 아울러 남성보다 여성이 아동 양육과 노인의 보살핌, 여성 생애 단계의 의료화 등 다양한 이유로 의료체계와 더 잦은 관계를 갖는다. 그러니 종교를 갖고 있는 노년 여성이 의료체계에서 어떻게 윤리적 판단을 하는지는 중요한 이슈다.
데스오텔스는 흥미로운 두 가지 에피소드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병원의 윤리위원회에 참석한 종교적 여성은 의료윤리적 판단을 어떻게 하는가? 데스오텔스는 일반 병원의 윤리위원회에서 어떤 안건을 판단할 때 참석자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안건을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종교와 밀접한 병원(가톨릭병원 같은 경우)의 윤리위원회 역시 종교적 신념으로 안건을 다루지 않는다. 종교적 판단과 세속적 판단이 일치해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세속적 판단에 따르면 고통은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방향으로 의료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종교적 판단에 따르면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때때로 가치있는 영적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위원회에 속한 수녀나 다른 사람 모두 종교적 신념 및 윤리가 세속적 판단과 충돌할 때, 종교적 신념을 발화하기보다는 침묵을 지킨다(181). 둘째, 의료적 조치를 거부하는 종교적 여성을 의학이 판단하는 방식이다.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경우 질병 치료에 있어 어떤 의료적 개입도 거부하며 오직 기도에만 의존한다. 물론 의사와 의료체계가 기도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기도가 다른 모든 의료적 조치를 받아들이고 난 후 부가적으로 이루어질 때만 그것이 허용된다. 크리스챤 사이언스는 의사의 치료 자체를 거부하며 기도로 치료를 시도한다. 따라서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행위는 기존 의료 권력에 대한 직접적 저항이자 도전으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의사의 맥락에서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방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같다(183). 의사는 자신을 과학적이고 합리적 위치에,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여성을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 위치에 배치하며 가치 판단에 위계 질서를 부여한다(184). 의료적 가치 체계에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종교적 여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학에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182).
비록 의학과 종교가 충돌하는 가치로 인식된다고 해도, 데스오텔스는 의학과 종교적 신념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며 다른 식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테면 의료적 판단과 종교적 판단 모두 우리게에 가능한 많은 관점 중 하나(184-5)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이란 개념은 많은 경우 의료적 검증을 통해서된 판단되고 승인되지만, 종교적 맥락에서 건강은 신체와 영혼의 행복한(well-being) 통합이다. 종교적 신념을 고려한다면 건강 개념 자체를 달리 사유할 수도 있다. 즉 종교적 신념은 부정되어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가치다. 이럴 때 죽음에 대한 사유도 달라질 수 있다. 만약 개인이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이 믿음 체계에서 죽음은 삶의 종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행을 뜻한다(185). 이것은 넬슨의 논의가 얘기하지 않고 있는 지점이며 죽음을 좀 더 풍성하게 사유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