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님과 아빠님께서 말씀하시길 어떤 경우에도 시위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에 올라오던 그 날도, 그 이후에도 시위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루인은 골치 아픈 “좌파”였기에 대학에 가면 시위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예상과는 달리, 대학시절 시위라곤 근처에도 안 갔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1학년 때 만난 이들이 요구하는 방식이 싫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입장에선 당장이라도 화염병을 들고 선봉에 설 “좌파”같았던 루인이지만, 1학년 때 만난 사람들의 입장에서 루인은 그저 곱게 자랐거나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가는 “보수 우파”였다. 어떻게 비친들 무슨 상관이람(이라고 쓰지만, 그래도 종종 이런 이미지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ps는 시위를 하려거든 우선 대선이 끝난 다음에 하라고 했다. 대권을 잡은 당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라고. 크크크.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결국 시위는 하지 말라는 의미다.
의도하건 하지 않건 이런 말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는 반응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시위를 하자는 말에 움찔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를 하다가 잡혀갈 수도 있다는 말에 움찔한다. 왜냐면, 루인이 시위에 참가해서 잡혀가면 루인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해서 피해를 볼 사람들이 몇 명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밥줄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고.
내일 ‘무지개 건널목 시위’를 하러 간다. 기획 자체가 무척 신나서 얘길 전해 듣자마자 참가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결정에 망설임이 없다. 사실 이번 기획을, 그저 현재 상황에서 나의 입장을 주장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고민했다. 그런데 이런 형식을 시위로 부른다는 걸, 이번 ‘무지기 건널목 시위’와 관련한 구체적인 글이 올라와서야 깨달았다. 그제야 이번 행동이 좀 더 구체적인 무게로 다가왔다. 문제는 법치국가에선 이런 시위를 합법이냐 불법이냐로 가른다는 점이다. 법이 승인하지 않는 형식의 주장은 언제나 불법이란 점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주장은 언제나 법과 국가제도가 승인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시위”라는 말에 뭔가 다른 의미와 무게를 두었나 보댜. 뭘까?)
그리고 조금 전, 내일 ‘무지개 건널목 시위’와 관련한 공지를 읽다가,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잡혀갈 수도 있다는 글을 읽고, 뭔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움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면서도 긴장감이 솟아나고 뭔가 재밌겠다는 즐거움도 마구마구 솟아난다. 후후. 근데, 사실 연행될 때 가장 큰 걱정은 무지개 시위가 끝나면 곧 바로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야 하는데 못 하게 된다는 거. (12일부터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있는 건 아니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서 번갈아 가며. 내일 점심시간이 루인의 차례.) 그러니 어쩌면 “연행할 때 하더라도 1인 시위는 끝나고 연행하라고~~!”라는 외침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크크크.
별일 없다는 걸 믿으면서도, 조금 긴장했나보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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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민망한 사족. 책이 나오긴 나올 예정입니다. 12월 초에. 얼마 전엔 출판사 1차 교정본이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ㅡ_ㅡ;;; 아, 진짜 민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