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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경합하는 여러 규범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규범의 인식론적 한계를 폭로하지 않는 선에서 규범의 질서를 실천하는 것이다. 한계를 폭로하고 규범이 인식할 수 없는 무능력을 폭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위반’이다. 지배규범이야말로 언어가 없고 지배규범의 유일한 언어는 폭력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실천은 규범의 근간을 흔든다.
젠더 폭력은 규범의 한계에 도달하지 않는 수준에서, 늘 규범에 부족한 듯하여 규범에 조금이라도 더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다. 끊임없이 노력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가 늘 부족하기에 늘 더 노력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 나의 부족을 타인이 지적하고 이것을 폭력의 행태로 ‘교육’하려 들 때 폭력은 부당해도 폭력의 원인은 마냥 부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나아가 폭력 자체를 긍정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젠더 폭력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규범의 한계를 폭로하거나 규범 ‘너머’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이가 등장하면, (지배)사회는 그를 처단하거나 의료병리화하거나,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폭력을 가한다. 규범 위반이 주는 쾌락은 어떤 의미에서, 위반 자체가 짜릿해서일 수도 있지만 위반을 통해 규범의 인식론적 한계 ‘너머’를 상상하고 규범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범 ‘너머’의 세계가 유일한 터전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터전 중 하나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인. “규범이라는 젠더, 젠더라는 불안: 트랜스/페미니즘을 모색하는 메모, 세번째” <여/성이론> 2010년 23호. 7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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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준비하면서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위의 인용한 구절을 읽다가.. ‘오오.. 이것이 내가 쓴 글이라니..’라며 감탄했다. 놀라 다시 읽으니, 별로다. 솔직히 엉망이다. 크크크. 아 부끄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