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읽은 책들

2009년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사실 이렇게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오늘이 끝난다고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요.
그저 2009년이 아쉬운 게 아니라, 특정 기간을 주기 삼아 뭔가를 정리할 구실이 필요한 거겠죠. 2009년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했습니다. 올 한 해를 평가하자면, 100점 만점에 후하게 쳐서 13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았으니까요. 어쨌든
또 한 해를 살아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려고요. 하하. ;;




아, 올해 계획 중에 논문 세 편을 쓰겠다고 했죠. 논문 세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출판을 염두에 둔 글을 세 편 쓰기는
했습니다. 블로깅은 제외하고요. 🙂 암튼 그 세 편 중 두 편은 올해 출판되었고(이미 출판된 글을 읽은 분도 계신데 저는
아직;;; ) 한 편은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후후.




영화는 고작 20편. 한 달에 두 편이 안 되니 제 기준에선 매우 적은 편입니다.




그리고 또 무얼 정리할까, 고민하며 다이어리를 뒤적이다 올해 읽은 단행본과 논문 등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카이브 기록물 분류 기준으로 단행본만 정리할게요. 논문, 잡지, 문서 등은 제외하고요. 다이어리의 좁은 칸에 기록하다보니
글쓴이와 제목만 적었고, 옮긴이와 출판사 등은 없네요. 번역하신 분들껜 죄송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합니다. 읽은 책 중 어떤 책은
과거에 읽은 걸 다시 읽기도 했고, 또 다른 어떤 책은 올해만 두세 번 읽기도 했지만 중복해서 기록하진 않았습니다. 만화책 포함 단행본 187권이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죠.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고요. 흐흐. (12월의 책책, 두 번째를 쓸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하하 ;; ) 아, 글쓴이 이름이나 제목에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메모한 그대로 옮겨서요. 하하. ;;;;;;;;;;;;;;;;;

단행본1
001 김승옥 『싫을 때는 싫다고 하라』
002 다니엘 클라타우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003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004 샤를로테 로쉬 『습지대』
005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006 제리 스피넬리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007 패트리샤 맥코믹 『컷』
008 제리 스피넬리 『스타걸』
009 제리 스피넬리 『문제아』
010 코리지 『노수부의 노래』
011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012 스콧 피츠제럴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013 기예르모 마르티네스 『옥스퍼드 살인방정식』
014 요시다 슈이치 『파크라이프』
015 미야베 이유키 『마술은 속삭인다』
016 오쿠다 히데오 『걸』
017 쓰네카와 도타로 『야시』
018 마리 르도네 『장엄호텔』
019 A. Cranny-Francis et al. 『Gender Studies: Terms ans Debates』
020 파스칼 로즈 『제로 전투기』
021 덴도 신 『대유괴』
022 야마모토 후미오 『플라나리아』
023 마리 르도네 『영원의 계곡』
024 장 퇼레 『자살가게』
025 장 퇼레 『중력의 법칙』
026 브루아 뒤퇴르트르 『고객서비스부』
027 권윤주 『To Cat 고양이에게』
028 나시키 가호 『엔젤 엔젤 엔젤』
029 아멜리 노통브 『불쏘시개』
030 아멜리 노통브 『적의 화장법』
031 아멜리 노통브 『제비일기』
032 주제 사라마구 『동굴』
033 Kate More and Stephen Whittle 『Reclaiming Genders』
034 위베르 니쌍 『개미』
035 아멜리 노통브 『황산』
036 오쿠다 히데오 『면장선거』
037 여인석 『의학사상사』
038 이재담 『서양의학의 역사』
039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040 이케이도 준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041 강신익 『몸의 역사』
042 장 필립 뚜생 『사랑하기』
043 디디에 라메종 『저주받은 왕 – 오이디푸스 렉스의 재구성』
044 퍼트리샤 콘웰 『흑색수배』 1, 2권
045 끌로딘느 갈레아 『붉은 지하철』
046 레슬리 오마라 『고양이 카페』
047 로이 루이스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 먹었나』
048 줄리 앤 피터스 『루나』
049 임혜기 『사랑과 성에 관한 보고서』
050 사토 유야 『플리커 스타일』
051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052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053 에쿠니 가오리 『하느님의 보트』
054 이스마엘 카다레 『부서진 사월』
055 야마모토 후미오 『내 나이 서른 하나』
056 팀 버튼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057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
058 Suzanne J. Kessler and Wendy McKenna 『Gender』
059 김영민 『동무와 연인』
060 아토다 다카시 『시소게임』
061 윌리엄스 탭 『위키노믹스』
062 신이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063 Eli Clare 『Exile and Pride』
064 히가시노 게이고 『호숫가 살인사건』
065 가쿠타 미츠요 『공중정원』
066 김기창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
067 히가시노 게이고 『흑소소설』
068 오기와라 히로시 『벽장 속의 치요』
069 문광립 『이태원에서 세계를 만나다』
070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071 이동철 『신문고 2. 性』
072 배상문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073 감수미 『서울 생활의 발견』
074 박성태 등 『서울서울서울』
075 심승희 『서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076 문옥정 『이제는 말하고 싶다』
077 유재순 『여왕벌』
078 유국치 『이태원』
079 문일석 『깨어있는 여자에겐 남자는 휴식이다』
080 유재순 『서울서 팔리는 여자들』
081 채호기 『슬픈 게이』
082 캐서린 H.S. 문 『동맹 속의 섹스』
083 카를로 프라베타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
084 진중권 『폭력과 성스러움』
085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086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087 유하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088 폴 오스터 『빨간 공책』


089 W. E. 보우먼 『럼두들 등반기』


090 야마모토 후미오 『슈가리스 러브』


091 고종석 『경계 긋기의 어려움』


092 이토야마 아키코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093 안보윤 『악어 떼가 나왔다』


094 미야베 미유키 『용은 잠들다』


095 조장은 『골때리는 스물다섯』


096 마르셀 에메 『날아라 돼지!』


097 기노시타 한타 『악몽의 엘리베이터』


098 피터 게더스 『파리에 간 고양이』


099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100 후지타 요시나가 『텐텐』


101 가쿠다 마쓰요 『더 드라마』


102 다카노 가즈아키 『유령 인명구조대』


103 요코야미 히데오 『종신검시관』


104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105 제임스 시겔 『탈선』


106 다나베 세이코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107 데이비스 리스 『도덕적 암살자』


108 기욤 뮈소 『사랑하기때문에』


109 카미유 로랑스 『사랑, 그 소설같은 이야기』


110 기시 유스케 『유리망치』


111 타쿠미 츠카사 『금단의 팬더』


112 가쿠타 미쓰요 『삼면기사, 피로 얼룩진』


113 웬디 매스 『망고가 있던 자리』


114 요시다 슈이치 『거짓말의 거짓말』


115 천운영 『잘가라, 서커스』


116 에릭 포토리노 『붉은 애무』


단행본2: 만화
001 오노 나츠메 『데조로』
002-004 김민희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1~3(완)
005 오츠이치, 오이와 켄지 『Goth』
006 카타야마 코이치 원작, 이치이 가르미 작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007 앤디 라일리 『돌아온 자살토끼』
008 오히나타 Go 『유전자 레벨 검』
009 박형동 『바이 바이 베스파』
010-011 마사카즈 이시구로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2
012 강풀 『타이밍』
013 강풀 『아파트』
014-047 A***** 『**』 1-34(완)
048 아다치 미츠루 『모험 소년』
049 앨리슨 벡델 『재미난 집』
050 프레데릭 페테르스 『푸른 알약』
051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052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053 아사노 이니오 『빛의 거리』

054 최규석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055 이가라시 다이스케 『영혼』


056 아와오카 히사에 『하얀 구름』


057 김은희 『나비가 없는 세상』


058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4


059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6


060-064 히토시 이와아키 『히스토리에』 1-5


065-067 아키야마 하루 『참새들의 세레나데』 1-3(완)


068-071 카츠라 노조미 원작, 이마타니 텍츠 작화 『공무원스타』 1-4(완)

다 정리하고 나니, 어떤 책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고, 어떤 책은 부분만 읽기 애매해서 그냥 한 권 다 읽기도 했네요. 흐흐. 🙂

책, 메모-두 번째: 더 드라마

예전에 구글웨이브에 메모를 남겨두고선, 블로그에 올리는 걸 깜빡한 인용구절. 기대치가 높아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구절은 많았다.

가쿠다 미쓰요. 『더 드라마』(안윤선 옮김, 서울:예담, 위즈덤하우스, 2007)

39 헤어질까. 그 단어에 놀라울 정도로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이 시작될 듯한 예감. 야경을 보면서 프러포즈 받는 것보다, 아오야마로 이사하는 것보다, 교제 6년, 동거 2년의 남자와 헤어져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다.
헤어지기만 하면, 틀림없이 연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뛰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일상은 작은 드라마로 채색될 것이다.

48 데이트는 장보기가 되고, 디너는 저녁이 되고, 왕자님은 두꺼비가 되고, 틀림없이 그러한 일상이 나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114 남자는 여자가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면,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어필하는 것도, 남자의 취미에도, 심드렁하게 대하면, 오히려 그 무관심을 두려워하는 남자도 있었다.
지나치게 강한 애정도, 지나치게 희박한 애정도 남자를 두렵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도 남자를 두렵게 하고, 과거에 대한 집착도 남자를 두렵게 한다.

117 “노노짱. 헤아려 봤는데, 나 애인 없이 지낸 세월이 14년하고도 3개월이야. 그건 말이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기간이야. 그 만큼의 시간이면, 사람은 글도 쓸 수 았고, 뜀틀도 넘을 수 있고, 원주율도 계산할 수 있고, 일도 하고 독립도 할 수 있어. 그만큼의 시간을 나는 연애에서 멀어져 있었다고. 너무 하지 않니?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책책, 독후감은 아니지만

다른 얘기도 있지만 이번 달 들어 지난 13일까지 읽은 단행본 중 소설 얘기나 주절거릴까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을 읽었습니다. 뚜렷한 증거 없이, 정황에 따라 유죄확정과 사형선고를 받은 이가, 범인이 아님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얼추 1년도 더 전에, 어쩌면 2년 정도 전에 산 거 같은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어떤 책들은 명성에 기대어 읽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대체로 만족입니다. 범죄와 사형제도, 생명이라는 것, 죄를 반성한다는 것 등을 이런 식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꼼꼼하게 치밀한 구성을 이루고 있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서 허술함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아쉬웠지만, 이 작품이 공식적으로 첫 번째 소설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런 자잘한 허술함이 오히려 다행입니다.(응?)

후지타 요시나가의 『텐텐』을 읽었습니다. 사채 80만 엔을 갚을 수 없어 고기잡이 배를 타야 할 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도쿄를 같이 여행하면 100만 엔을 준다는 말에 도쿄를 도보여행한다는 내용입니다. 뭔가 폼을 잡고 있긴 한데, 다소 진부합니다. 하지만 도쿄 시내(혹은 자신이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나 도시)를 여행한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저의 경우,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거의 5년 정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제가 사는 동네를 잘 모릅니다. 어떤 가게가 있는지, 어떤 골목이 있는지 ….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사는 동네를 도보여행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꽤나 재밌을 거 같습니다. 그 길엔 고양이들이 살아가고 있겠죠?

가쿠다 마쓰요의 『더 드라마』를 읽었습니다. 예전에 『공중정원』을 읽고 반해서 이 책도 읽었습니다. 『공중정원』은 일체의 거짓 없이 진실만 말하는 걸 모토로 하는 가족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이 어떻게 기획되는지, 진실해야 한다는 약속이 만드는 진실한 거짓을 매우 잘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 흥미로운 소설이죠. 그래서 『더 드라마』도 읽었습니다. 헌데 이 책은 야마모토 후미오, 에쿠니 가오리 류의 소설입니다. 30대 여성의 연애에 관한 소설이고요. 물론 작가가 다른 만큼 또 다른 재미가 있긴 합니다. 뭐랄까, 읽고 있노라면 공감하는(응?)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공중정원』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조금 아쉽더라고요. 나중에 『삼면기사』를 읽을 예정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유령 인명구조대』를 읽었습니다. 『13계단』을 읽은 김에 『유령 인명구조대』도 같이 읽었습니다. 자살한 4명의 주인공이 천국에 가기 위해 자살하려는 100명을 구조한다는 얘기입니다. 소설 자체는 재밌는데,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100명을 구조하니 적어도 10명의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히키코모리, 우울증, 사채금융과 카드빚, 이혼, 성적, 장애 등 각종 사회 이슈를 다 다루려고 합니다. 너무 산만해서 못 읽을 정도는 아니지만 차라리 각각의 이슈를 별도의 책으로 다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 그리고 책 편집이 엉망입니다. 글자 크기는 보통 단행본보다 1~2포인트 정도 작습니다. 오탈자는 수시로 등장하고 심지어 줄나누기를 잘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어쩌자는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이렇게 편집하다니, 출판사가 너무하다 싶더군요.

요코야미 히데오의 『종신 검시관』을 읽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가서 검시를 하는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헌데 주인공의 능력이 출중하여 주변에서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못 하도록 로비를 할 정도고, 부하 형사들은 주인공을 교장선생님으로 부를 정도로 존경 받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전통적인 추리물의 형식에 충실하단 점입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자살인지 살인인지 밝히고, 살인이면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했는지, 살인 같은 자살이면 어떤 방식으로 자살했는지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추리 자체를 강조하여 주인공의 매력을 부각하는 소설이랄까요? 비교적 최근에 쓴 소설 중에 이렇게 추리 자체를 강조한 소설은 오랜만이라 재밌게 읽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을 읽었습니다. 감히 강추합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피해자는 현직 경찰. 경찰과 검찰은 사건을 비밀에 붙이고 내사에 들어갑니다. 사건을 최초 발견한 경찰은, 자동차 안에서 총에 맞아 죽은 이를 조수석으로 밀어내고 그 차를 운전해서 경찰서로 갑니다. 이 장면에서 잠시 뜨악했습니다. 바로 전에 읽은 『종신 검시관』에서 가장 중시한 건, 현장보존이거든요. 근데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의 시작 장면은 현장 훼손이거든요. 이 소설은 현장보존과 논리적인 추론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기존의 추리물과 상당히 다릅니다. 1950년대 나온 책이지만,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매력적입니다. 더 이상 말하는 건 스포일러겠죠? 아무려나 추리형식부터 재판과 처벌 등에 관해 매우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제임스 시겔의 『탈선』을 읽었습니다.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주인공이 기차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바람을 핍니다. 근데 그 장면이 어떤 범죄자에게 들키고, 이후 협박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끔찍합니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묘사와 몇몇 장면은 끔찍해서 차마 이 책을 읽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소설 뒷표지엔 ‘충격적인 반전의 연속’, ‘최고’ 등 갖은 찬사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찬사가 현란할 수록 실체는 현란한 수사를 못 따라 간다는 걸, 이 책은 매우 잘 증명합니다. 물론 추리소설로서 재미는 있습니다. 심심할 때 한번 읽어도 무방하겠지요. 하지만 전 이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소설을 읽었는 걸요. 현란한 소설적 장치, 복잡한 구성 같은 거 없이도 훨씬 빼어난 반전과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소설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하긴 …. 추리소설의 기본 아이디어는 이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다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어쩔 수 없겠죠.

아무려나 추리와 소설의 형식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걸 고민해서 뭐하죠?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