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2007.06.29. 20:10, 아트레온 1관 지하 3층, E-8
01
영화 초반부를 읽다가, 이 영화가 코미디영화인줄 알았다. “지구를 구해야 한다”, 운운하며 영화는 시작하는데, 이런 얘기들이 너무 웃겨서, 푸핫, 큰소리로 웃을 뻔 했는데, 영화관에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간신히 참았지만, 꽤 오랫동안 웃었다. 근데 이런 코미디는 영화 말미에도 등장한다. 인터뷰 장면에서 “미국은 자유국가” 운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코미디로 시작해서 코미디로 끝나는구나, 했다.
미국은 자유국가며, 정부는 국민들에게 비밀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맥락은 무엇일까. 지금에 와서 이런 얘기들을 하며 “미국은 자유국가”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어째서일까. 9.11이후 영화에서 건물이 부서지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9.11과 계속되는 (침략)전쟁과 관련 있는 걸까.
02
영화의 시작은 중동 카르타 지역에 있는 미군기지가 “적”(“악”)으로 여겨지는 디셉티콘에게 공격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자 지구를 공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영화의 정치학은 이 장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입장에선, 카르타에 주둔하며 다른 중동국가로부터 카르타를 “보호”하고 지구를 “방위”하는 거겠지만 카르타인들의 입장에선 미국이 카르타를 침략하고 점령한 거 아냐?
미국의 입장에선, 큐빅과 “트랜스포머1″을 연구하고 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미국의 이득이겠지만, 이런 연구와 기술이 사실상 미국의 이득을 위해 다른 국가를 침략하거나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토대이기도 하단 점에서, 과연 오토봇이 디셉티콘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선”이며 “지구방위”인 걸까? 어떤 의미에선 미국의 이득을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선 카르타 사람들도 디셉티콘의 공격에 죽거나 다치지만 이 영화는 이들의 죽음엔 관심이 없으며 디셉티콘을 목격한 군인들의 정보와 미군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디셉티콘이 미국의 군수산업*만* 파괴한다면, 이것이 마냥 나쁘기만 한 걸까?
미국을 지키는 건 곧 지구를 지키는 것이며, 그리하여 미국을 지키는 것이 곧 세계의 평화이자 정의라는 과대망상을 이 영화는 그대로 반복한다.
다른 측면에서, 디셉티콘과 오토봇의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데, (은유로, 문자 그대로)영화의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디셉티콘이나 오토봇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웃기게도 오토봇은 큐빅을 가지고 곧장 우주로 가서 싸울 수도 있었다. 디셉티콘들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라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 넓은 벌판에서 싸울 수도 있었고. 하지만 오토봇과 미군들은 도심 한 가운데로 간다. 영화는 볼거리를 만들려고 도심을 싸우는 장소로 선택했겠지만(허허벌판이 아니라 도심에서 싸워야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뽐낼 수 있을 테니까), 루인의 입장에서 굳이 도심으로 가서 싸우는 건, 오토봇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내용,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 된다”를 과시하려는 쇼로 여겨질 뿐이다. 만약 정말로 “인간이 다치게 해선 안 된다”가 그들의 주장이라면 도심으로 갈 이유도 없고, 도심 밖으로 유인해서 싸울 수도 있었다. 이들의 싸움으로 다치거나 죽은 이들의 입장에선, 오토봇/미군이나 디셉티콘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03
영화 초중반에 디셉티콘과 싸우고 있는 미군이 핸드폰으로 미 국방부와 통화하려고 교환수에게 연결시켜 달라고 하는데, 이때 교환수는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미군은 지금은 전투상황이라 그럴 경황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교환수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심지어 국제통화와 관련한 상품소개도 한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