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엔 수업을 한 과목만 듣는다. 어찌어찌하여 선택한 과목은 가족과 관련한 수업인데, 수업에 들어가기 전 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고민할까를 고민했다. 보통 수업 첫 날 선생님들이, 이 과목을 듣게 된 이유를 물어보기에 그에 적절한 답변을 모색하는 거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과는 별도로 어쨌든 이 과목을 듣기로 했다면 이 과목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고민은 필요 없었다. 주제어는 “트랜스젠더/퀴어와 가족”으로 어렵지 않게 잡았다. 그러면서 트랜스젠더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가족구성권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고민해야지 했다. 이런 고민을 기말 논문으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안일함도 있었다.
지난 토요일(9월 1일) “우리, 여기에, 함께”의 기획으로 개최한 포럼인, “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에 다녀왔다. 다녀온 후 고민이 한층 많아졌다는 점에서, 확실히 잘 간 것 같다. 포럼에서 사람들의 얘기와 고민을 들으면서, 확실히 주제에 대한 고민이 짧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아쉬운 건, 어제인 일요일에도 다른 행사가 있었는데 결국 못 간 거. 가고 싶었지만 발등에 불인 걸 어쩌랴.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후 즈음의 시기에 사람들과 만나서 루인의 관심 주제를 얘기할 때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루인에겐 확실한 주제가 있다고. 그런 말과는 별도로 스스로도 확실한 주제가 있다고 자만한 시절이 있다. 웃기게도 그때 얘기했던 주제는 기껏해야 “트랜스젠더/퀴어와 관련해서 쓰려고요” 정도였다. 지금에야 이런 말이 코미디에 가까운 발언인 걸 알지만(국문과에 입학하면서 “소설과 관련해서 쓰려고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그땐 정말 이 정도면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믿음이 한 달을 못 갔다는 거랄까. ㅜ_ㅜ
가족과 관련해서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의 고민 역시, 이와 같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트랜스젠더/퀴어와 가족의 어떤 지점을 고민하려는 건지 더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았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렇게 막연하게 주제를 잡고 있었던 건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는 깨달음. 제도적인 가족구성권,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 자신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들, 얘기를 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얘기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얘기하는 과정은 어떤지,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의 과정은 어떤지, 이런 얘기를 들은 가족들의 반응과 이런 얘기를 가족들은 어떻게 경험하는지, 한국사회에서 친족어들은 성별이분법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을 한 후 가족과 친족들 사이에서 이런 호칭은 어떤 식으로 바뀌고 있는지(지금까지 불렀던 방식으로 부르는지, 다르게 부르는지, 계속 헷갈리는지, 의도적으로 섞어 사용하는지 등등) 등등. 또한 아들로서의 경험을 얘기한다는 것이 곧 자신을 “남성”으로 설명하는 건 아니고, 딸로서의 경험을 얘기한다는 것이 곧 자신을 “여성”으로 설명하는 것도 아닐 때, “남성”/”여성”으로만 구분하는 가족관계에서 자신을 “여성”/”남성”이란 식으로 구분하지 않는 트랜스들은 어떻게 협상하고 있는지, 혹은 “남성”/”여성”이란 식으로 자신을 얘기하는 트랜스라고 해서, “딸”(ftm의 경우)/”아들”(mtf의 경우)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하고 “딸”(ftm의 경우)/”아들”(mtf의 경우)로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경험들을 마냥 부정하는 건 아니란 점에서 젠더화된 가족/친족 관계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어떻게 협상하는지, 등등.
기말레폿 수준에서 모색하기엔 하나 같이 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 얘기들이다. 하지만 좀 더 하고 싶은 얘기로 쓰겠지(좀 더 하고 싶은 얘기란 후자의 두 가지).
아무튼, 토요일에 참가한 포럼은 일정 간격으로 계속해서 개최하는 행사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