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과 문자를 주고 받은 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라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보냈다. 그런데 나는 이 구절에 행복해지는커녕 조금은 우울했다. 운동을 하건, 공부를 하건, 뭘 하건 결국은 행복이다. 관건은 어떤 행복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겠지. 어떤 사람은 행복이란 단어 대신 꿈을 사용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공을,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또 어떤 사람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나는 여기에 ‘행복’이라는, 다소 철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어떤 행복을 추구하는지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모른다는 것을…
아침, 아니 오전에 라디오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 나왔다. 그는 한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유예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회사를 쉬었다가 결국엔 그만두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예전이라면 나는 ‘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가능성은 모두 없는 것처럼 살고 있어, 훗’ 했을 거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철없는 거 같은 삶이지만 내겐 내가 바라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삶이니까. 재정적으론 풍요롭진 않지만 행복이란 측면에선 풍요로우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그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내가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이런 기분에 빠져 산 게 얼추 1년이 넘은 듯하다. 1년 동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 걸까 고민하는 나날.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긴 하다. 무려 초등학교 시절부터 품었던 어떤 꿈. 나는 그 꿈을 이뤄보려고 이런 저런 노력을 하기도 했고, 우회하기도 했다. 우회적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늘 끈기가 없었고, 시도하다 멈추고, 시도하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물론 그 일만이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매순간의 욕망에 충실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대부분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언제나 “생계가 위태로워ㅠ”라며 징징거리지만, 그래도 현재 삶과 생활방식이 불만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할까?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떤 행복을 추구한 걸까? 아님, 지금까지 추구했고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한 행복의 의미가 이제는 바뀐 걸까? 아님 나태해서 여전히 유효한 행복에 충실하지 않아 이런 걸까?
정말 난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살고 싶은 행복은 어떤 얼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