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혐오, 권력

역사적 기록물을 추적하거나, 역사를 기록한 글을 읽노라면 두 가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하나는 혐오의 역사. 혐오는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 시절 어쩌면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싶은 혐오 발화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발화는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니다. 그 심한 발화는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는 현재의 것이기도 하다. 혐오는 역사적 사건이고 재생산되는 담론이다.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발화, 바이를 향한 혐오 발화 모두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의 적나라한 혐오 발화는 지금 이 시기에도 유통되는 내용이다. 또 하나, 역사적 기록물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많은 경우 특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의견을 출판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글로 표현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거나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종적, 계급적 토대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지금 시점에서 접할 수 있는 과거의 많은 기록은 이런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많은 혐오 발화는 출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발화다. 이 발화가 특정 집단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1970대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트랜스젠더 혐오 발화는 지금까지 물리적 형태로 흔적이 남아 있는 기록물을 쓴 사람의 발화다. 기록물을 남기지 못 한 사람의 의견은 지금 전해지지 않거나 간접적으로 전해질 뿐이다. 그러니 역사를 마주한다는 건 혐오의 역사성과 출판물의 특권/권력을 살피는 것이기도 하다. 어려운 일이고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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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리 님의 바이 강의를 듣고 떠오른 단상.

러시아, 올림픽, 구글, 그리고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없이 우정, 단결, 페어플레이 정신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올림픽 정신에 입각하여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려야 한다.’ – 올림픽 헌장(번역 제공: Google)
“The practice of sport is a human right. Every individual must have the possibility of practicing sport, without discrimination of any kind and in the Olympic spirit, which requires mutual understanding with a spirit of friendship, solidarity and fair play.” –Olympic Charter
구글의 첫 화면은 소치올림픽을 기념했다. 올림픽이 어떤 행사인지 그 의미를 그냥 전달했다. 구글에서 특별한 문장을 쓰기보다는 그냥 올림픽 헌장에 있는 문장을 골랐다. 그리고 이것이 또 하나의 정치적 의미를 구성했다. 인용은 언제나 가장 정치적 행위 중 하나고 오늘의 구글 두들 역시 그러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퀴어 혐오(http://mitr.tistory.com/ 이곳에서 잘 전하고 있다)를 환기시켰고 이런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 번 살피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구글이라는 일개 기업의 일에 이렇게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그냥 일개 기업의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개 기업의 일, 한 개인의 일이 모두 어떤 힘을 만든다. 어떤 특별한 존재의 특별한 발언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임계점을 넘어서는 계기일 뿐이다. 일개 기업 하나, 일개 개인 한 명의 힘이 변화를 이끈다. 그래서 어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싶다. 구글이 아니라, 퀴어 혐오에 분노하거나 저항하며 노력하고 고민하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날의 메인화면은
영어 판본 http://goo.gl/D8FNMW
한국어 판본 http://goo.gl/Kcqc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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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글한국어 사이트에 나온 번역은 구글번역기 번역인데 바로 이런 이유로 놀랬다. 구글번역기가? 정말 구글번역기가? 하긴, 구글번역기는 학습도 하니까…

트랜스포비아 발언은 강의 중단 사유가 될까? – 01

여기 오는 분들은 알고 계시려나요?
관련 기사: 수업자료는 음란 동영상…강사는 음담패설 http://goo.gl/CHDIe
(모르신다면 꼭 읽어보세요.)
모 대학교 수업 시간을 다룬 기사입니다. 수업교재가 각종 혐오와 폭력으로 가득하고, 수업 내용 역시 혐오와 폭력으로 가득하죠. 그래서 몇몇 언론에서 이 수업을 다루었고, 현재 논란이 진행 중입니다.
*수업 교재에 실린 내용이 궁금하면 http://www.sexuality.or.kr/9718#1 를 참고하세요(바쁘시지 않으면 한 번 읽어보세요. 키보드워리어가 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
한 단체를 중심으로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발표는 하지 않은 듯하고요. 그리고 성명서에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트랜스여성은 “남자가 성적인 흥분과 쾌감을 경험하기 위해서 상습적으로 여자의 옷을 입는 경우를 말한다.”)과 동성애 혐오발화, 에이즈감염인 혐오발화를 비판하는 내용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강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트랜스젠더 혐오 발화를 근거로 강의 중단을 요청할 수 있을까요?
요즘 제가 하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위의 기사에 등장한 강의의 문제가 트랜스포비아만은 아니지만 트랜스포비아가 주요 문제 중 하나일 때, 트랜스포비아를 근거로 강의 중단을 요청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이 든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많은 여성학 수업이 트랜스포비아 발언을, 호모포비아 발언을 일상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리수는 임신을 할 수 없어 여자가 아니다.”와 같은 발언은 여성학 수업의 강사가 했던 말입니다. 이런 발언이 트랜스포비아라고 해서, 그 강좌를 중단해야 한다고 항의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습니다. 잘해야 강사 개인에게 사과를 요청할 뿐이며, 많은 경우 그냥 넘어가죠.(저라면, 저런 말을 하는 강사라면 아예 희망도 없다고 판단하고 강의실에선 무시하겠죠. 대신 나중에 글로 쓰고요. 크크 ;; )
트랜스젠더 혐오 발화를 근거로 강의 중단을 요청할 수 있을까요?
요즘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정리하고 싶지만… 어떻게 정리할까요? 쉽지 않습니다.
+이 고민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유섹인 구성원의 의견과 미묘하게 결을 달리하면서 좀 더 복잡한 상태입니다. 몸이 떠다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