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GID
트랜스젠더, DSM-V, GID에서 GI로..
1973년, 동성애가 정신병 진단 편람(DSM)에서 빠졌습니다. 그후 동성애는 정신병으로 진단되지 않(았)을까요? 1980년 트랜스섹슈얼/트랜스젠더를 정신병리화하려는 기획으로, 젠더 정체성 장애 혹은 성 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GID)가 DSM-III에 포함되었습니다. 1994년, DSM-IV에도 포함되었고요. 이것은 통상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을 정신병으로 진단하기 위한 것으로, 동성애와는 무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아닙니다. GID는 여성이지만 여성답지 않거나, 남성이지만 남성답지 않은 이들을 모두 관리하려는 기획으로, “문화시민 동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변태를 포괄합니다.
그럼 DSM-IV는 GID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자세한 내용은 http://goo.gl/jxoY서 확인하시고, 개략적으로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강하고 지속적인 교차-젠더 동일시(단지 다른 섹스의 문화적 이득을 위한 욕망은 아님)
B. Persistent discomfort with his or her sex or sense of inappropriateness in the gender role of that sex.
그 혹은 그녀의 섹스와 지속적인 불편함 혹은 그 섹스의 젠더 역할에서 부적절하다는 감정
“교차-젠더”, “다른 섹스”라고 번역했지만, 사실상 여성 아니면 남성만을 가정하기에 반대의 성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DSM-IV의 정의는 지정받은 섹스-젠더가 당연한 데 그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은폐하고 개인이 문제라고 여깁니다. GID가 논쟁인 건, 비단 이런 정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DSM-IV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병리화의 징표이기에 이것 자체에 문제제기하는 입장이 상당합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개인을 이분법에 구겨 넣으려는 사회적 인식이 문제라면서요. 물론 이 논쟁엔 계급과 인종 등의 이슈가 얽히면서 좀 더 복잡하고 의료보험적용 문제로 개개인의 위치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합니다.
이런 논쟁과는 별도로, 새로운 개정안인 DSM-V( http://goo.gl/0nL6 )는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개정안이며 확정안은 아닙니다만…
일단 명칭이 GID(Gender Identity Disorder)에서 GI(Gender Incongruence, 젠더 불일치)로 바뀌었습니다. Disorder(장애, 무질서)에서 Incongruence(불일치, 부조화)로 수위가 변했습니다. 정신병 진단 편람에 포함되니 병리화는 하지만, 표현 방식은 바꿨달까요? 아울러 GI를 정의하는 방식도 변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goo.gl/MDum 와 http://goo.gl/fkCX 참고)
(청소년이나 성인의) 젠더 불일치
A. A marked incongruence between one’s experienced/expressed gender and assigned gender, of at least 6 months duration, as manifested by 2* or more of the following indicators:
최소한 6개월 동안, 두 명 이상의 지정 받은 사람이 인정하며, 자신이 경험하는/표현하는 젠더와 지정받은 젠더 간의 현저한 불일치.
1. a marked incongruence between one’s experienced/expressed gender and primary and/or secondary sex characteristics (or, in young adolescents, the anticipated secondary sex characteristics)
자신이 경험하는/표현하는 젠더와 일차 그리고/혹은 이차 성징(혹은 어린이의 경우 예상되는 이차 성징) 간의 현저한 불일치
2. a strong desire to be rid of one’s primary and/or secondary sex characteristics because of a marked incongruence with one’s experienced/expressed gender (or, in young adolescents, a desire to prevent the development of the anticipated secondary sex characteristics)
자신이 경험하는/표현하는 젠더와의 현저한 불일치로 자신의 일차 그리고/혹은 이차 성징을 피하려는 강한 욕망(혹은, 어린이의 경우, 예상되는 이차 성징의 발달을 예방하려는 욕망)
3. a strong desire for the primary and/or secondary sex characteristics of the other gender
다른 젠더의 일차 그리고/혹은 이차 성징에 강한 욕망
4. a strong desire to be of the other gender (or some alternative gender different from one’s assigned gender)
다른 젠더(혹은 자신의 지정된 젠더와 다른 어떤 대안적 젠더)이고자 하는 강한 욕망
5. a strong desire to be treated as the other gender (or some alternative gender different from one’s assigned gender)
다른 젠더(혹은 자신의 지정된 젠더와 다른 어떤 대안적 젠더)로 다뤄지길 바라는 강한 욕망
6. a strong conviction that one has the typical feelings and reactions of the other gender (or some alternative gender different from one’s assigned gender)
자신이 다른 젠더(혹은 자신의 지정된 젠더와 다른 어떤 대안적 젠더)의 전형적인 감정과 반응을 가진다는 강한 인식
놀란 부분은 두 곳. “개인의 섹스”가 아니라 “지정받은 젠더assigned gender”로 바꾸고, 지정받은 젠더가 “경험하는/표현하는 젠더experienced/expressed gender”와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느끼기에 따라선 매우 놀라운 변화입니다.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아도, 협상에서 수긍할 수도 있는 안이고요. 아울러 “다른 섹스other sex”에서 “다른 젠더other gender”로 표현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대안적 젠더alternative gender”를 추가했네요. 젠더를 둘로 제한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둘로 제한하지만, 둘 중 하나로만 제한되지 않는 다른 어떤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최종안이 나오면 확인할 수 있겠죠(사실 이미 관련 논의가 상당히 나왔겠지만 영어를 잘 못 해서.. ;ㅅ; ). 개정안이 어떤 식의 효과를 가져올지는, 전문을 꼼꼼하게 읽고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야 하고요. 아무려나 이렇게라도 바뀔 수 있었던 건, 결국 운동의 성과겠죠. 확실한 건 아니지만 DSM을 개정안을 작성할 때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참가했다고 들었고요.
사실 이번 개정안에 약간은 구경꾼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너무도 다르니까요. DSM이 한국에 상당한 영향을 주긴 하지만, 의료제도부터 일상생활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요.
『젠더』: 상대방의 젠더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
-Kessler, Suzanne J. and Wendy McKenna. Gender: An Ethnomethodological Approach. Chicago &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118.
(번역은 대충 날림입니다.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든 격언이 아니겠지만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세요.” *뻔뻔*)
한동안 분주했고, 별도의 읽을거리가 있어 『젠더』를 못 읽었다. 원래는 『젠더』를 6월까지 다 읽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특별히 아쉬운 건 아니다. 어쨌든 어제부터 약간의 시간이 생겨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한 구절은 예전에 다른 곳에서 들은 적이 있다. 2006년 여름이었나. 여이연에서 트랜스젠더 강좌를 열었는데 담당 강사가 위의 일화를 소개했다. 무척 인상 깊어 어디선가 몇 번 언급했지만,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인용하길 관뒀다. 근데 『젠더』에 나오는 일화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제 늦은 밤 지하철에서 이 구절을 읽고 꽤나 흥분했다. 흐흐.
이 책이 처음 나온 시기가 1978년이란 점, 그러니 1970년대 중후반에 이 책을 썼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엔 트랜스젠더를 진단할 공적 진료규범이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성전환증(transsexualism)을 성동일성장애(GID: gender identity disorder)란 항목으로 의료진단범주에 포함한 건 1980년이니 그전까진 설만 분분했다. 이런 시기에 몇 명의 의사들이 위와 같은 얘길 했다: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찾아왔을 때, 진짜 트랜스여성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신에게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는지, 자신이 “환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지로 판단한다고.
의사들이 다소 노골적으로 표현했을 뿐 유별난 기준은 아니다.
작년 ftm 관련 다큐를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후 감독 및 출연자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을 때, 몇 명의 관객들은 출연자를 보며 “쟤는 좀 남자 같네.”라고 속삭였다. 난 이 속삭임과 『젠더』에서 전하는 의사들의 발언에서 어떤 차이도 찾을 수 없다. 하리수를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운”이란 수식어로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어떤 개인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구분하는 일상의 실천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여성”으로, “남성”으로 판단하는 방식은 위에 인용한 의사들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매혹을 기준으로 삼았고, 어떤 사람은 머리카락 길이를 기준으로 삼고, 어떤 사람은 걷는 방식이나 목소리 톤을 기준으로 삼는다.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만 듣고선 상대를 “여자”로 판단한다면, ‘내’가 “여성의 목소리”라고 판단할 자극을 받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것이 위의 의사들이 성적 매력, 유혹으로 판단하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
이런 구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매우 드물고 나 역시 이런 구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이런 구분을 옳고 그름이나 잘잘못으로 구분하는 건 곤란하다. 이 말을 덧붙이는 건, 예전 어느 강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몇 번인가 의사의 사례를 언급했는데, 그 당시 강의실은 술렁이며 의사를 비난하는 분위기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그건 의사의 성차별적인 태도를 향한 비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술렁임, 의사를 향한 비난/비판은 용인할 만한 행동과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구분하고 있단 점에서 유쾌하지 않다.
유쾌하지 않음, 불쾌한 건 아니라도 유쾌한 건 아닌 감정은 순전히 나의 경험 때문이다. 내 몸은 언제나 나를 배신한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많은 이들이 나를 “남성”으로 판단했다가 내가 트랜스젠더인 걸 ‘알면’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다. 혹은 나의 이름은 알고 오프라인의 모습은 모르다가 오프라인에서 인사를 할 때, 내가 “그 루인”이라는 얘길 할 때면 종종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놀람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소비하는 방식에서 내 몸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글로 드러나는 나와 오프라인에서 드러나는 나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성질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놀람은 온라인이나 글로만 알던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도 빈번하잖아. 그저, 이런 놀람과 의사의 발언을 구분하고 놀람은 괜찮지만 의사의 발언은 나쁘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태도가 유쾌하지 않았다.
어제 지하철에서 『젠더』를 읽다가 이런 저런 고민이 떠올랐다. 요즘 다시 두드러진 고민 중 하나가, 20~30년 뒤의 내 모습이라 좀 심란하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