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문, 올드 랭 사인

일전에 소준문 감독의 단편 영화 <올드 랭 사인>을 봤을 땐 별 다른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행사장에서 봤을 때 뭔가 묘하더라고요.

출처: http://youtu.be/4J-uqQFnI0A

토론에서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언급을 안 해서..
감독은 퀴어 역사의 영화라기보다 이야기의 역사 정도일 듯하닥 평가했지만… 저는 이 영화가 퀴어 감정의 역사, 정동의 역사를 다룬다고 느꼈습니다. 매우 단편적 느낌이라 뭐라고 더 쓸 순 없지만요.. 어쩐지 퀴어의 감정, 감정의 역사로 이 영화를 분석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가 나올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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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본문에 넣었는데.. 안 나오나요.. 어차피 링크도 적었으니..;;

한국 퀴어 관련 기록의 역사, 메모

잡담처럼.. 짧은 메모 형식으로..

-동성 간 결혼 관계와 관련한 기록은 오늘날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쉬쉬해야 하는 사건이 아니라 대중에 꽤나 널리 알려진 사건이었다.
-LGBT와 관련한 기록은 대체로 1990년대에서 시작한다는 믿음이 만연하다. 현재 사람들이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정리가 된 자료는 실제 1990년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LGBT와 관련한 기록은 그 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비이성애자 여성, 혹은 레즈비언이나 바이 여성과 관련한 기록은 예상대로 적다. 그리고 레즈비언을 명시하는 기록과 바이/양성애를 명시하는 기록의 개수엔 큰 차이가 없다. 다른 말로, 레즈비언 공동체가 단단하게 형성되었는데 거기에 바이가 뒤늦게 참가했다는 식의 역사 구술은 지금 시점에서 만들어낸 망상이다. 20~30년 전엔 이런 구분이 별 의미가 없었다. 그냥 같이 있었다.
-mtf/트랜스여성이나 게이 남성과 관련한 기록은 적지 않은 편이다. 사람들이 예상하는 수준에선 훨씬 많을 수도 있고 엄청 적을 수도 있다. 어떻게 예상하느냐에 따라 다른 건 당연한데…
-공동체 외부에서 생산된 기록으로만 따질 때, 트랜스젠더와 동성애, mtf/트랜스여성과 게이를 분명하게 구분하려는 시도는 1980년대 중후반부에 본격 등장한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는 그것.
뭐.. 일단 대충 이 정도.. 좀 더 상세한 내용은 다음에.. 흐 ;;

“나는 게이가 아니다”의 게이는 게이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나는 게이가 아니다”, “나는 호모가 아니다”라는 항변은 어디선가 들을 수 있지만 “나는 바이가 아니다” 혹은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다”라는 항변을 듣기는 힘들다. 후자의 항변은, 퀴어 공동체에선 그나마 드물게 들을 수 있지만 여타 사회에선 거의 듣기 힘들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게이가 아니다”와 같은 언설 만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언설이 많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언설조차 별로 없다.)
이 항변이라면 항변일 언설은 종종 게이, 동성애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용되곤 한다. 동성애가 무슨 병이라도 되는냥 이렇게 항변할 때, 그것은 혐오의 ‘우아한’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혹은 이 항변이 게이, 동성애의 가시성과 바이, 트랜스젠더의 비가시성을 상징하고 그리하여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의 대표성을 동성애가 취하는 찰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차별에 있어 트랜스젠더는 그나마 가시적인데 비해(차별에 있어선 동성애보다 트랜스젠더가 더 가시적인 것 같기도 하고… -_-;; ) 바이는 이 지점에서도 가시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항변을 조금만 달리 해석하면, 이런 항변을 게이와 동성애의 차별, 호모포비아의 표출로 전유해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든다. “나는 호모가 아냐”라는 발화는, 많은 경우 성적 지향보단 젠더 표현을 방어하는 표현일 때가 많다. 소위 남성이 여성스럽거나 섬세하거나 표정이 다양할 때, 이런 행동과 표현은 사람의 다양한 표현 방법 중 하나로 해석되기보다 “쟤 게이 아냐?”로 독해된다. 미국 왕따 논의에선, 호모, 파곳(faggot)과 같은 표현이 성적 지향이 아니라 젠더 표현을 지칭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동성애 실천을 둘러싼 혐오와 자기 방어 표현이 아니라 동성애건, 바이건, 트랜스젠더건 모를 어떤 규범적이지 않은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한 의심을 방어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자신의 규범성을 주장하는 발화다. 이런 발화를 호모포비아로, 동성애의 부정으로만 전유해서 사용해도 괜찮을까? 이런 항변에서의 게이는 동성애나 게이 남성을 지칭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뭔가 비규범적으로 젠더를 실천하는 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게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결국 이런 표현에서의 ‘게이’는 소위 퀴어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게이와 발음만 동일하지 그 의미는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반성을 요 며칠 전 했다.
발화를, 용어를, 범주 용어 사용 방식을 좀 더 섬세하게 살표야 할 텐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