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쓴 쪽글입니다. 글을 제출한 날은 2012.10.10.인데 그날 저녁 벗들과 논평을 나눴고 그 중 일부를 반영하며 조금 수정한 판본입니다.
내용은 수업 자료를 충실하게 정리한 것 뿐입니다.
루인. “섹스와 젠더 구분 공식을 다시 생각하며” Run To 루인. 2012.10.13. 웹. 201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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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젠더 구분 공식을 다시 생각하며
-루인
섹스와 젠더 구분 공식이 페미니즘과 퀴어이론, 사회학과 인문학 등 현대 이론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섹스와 젠더 구분 공식은 여성과 남성이 원래 다르고 그것은 생물학적 본질이기에 여성 억압은 당연하다는 지배 규범에 도전하고 상대화하기 위한 작업이다. 여자[female]와 남자[male]로 타고난다고 해서 여성성과 남성성 역시 타고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것은 여성 억압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핵심 근거다. 그런데 섹스와 젠더를 구분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 섹스와 젠더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있는가? 섹스는 생물학적 본질, 젠더는 사회문화적 구성이란 구분 공식은 적절한 것일까?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정확하게 어떤 뜻인가? 섹스-젠더 구분 공식은 이와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질문은 크리스틴 델피(Christine Delphy)와 리키 윌킨스(Riki Wilchins)의 문제의식과 공명한다. 먼저 델피 식으로 묻는다면, 섹스와 젠더를 얘기할 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델피는 섹스와 젠더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섹스 혹은 젠더가 반드시 둘로 구분되고 존재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되묻는다. 인간이 두 종류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정당화되지도 증명되지도 않았지만 섹스-젠더 구분 공식은 이를 그냥 단언한다(Delphy, 61). 아울러 인간의 몸엔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유독 섹스(젠더)가 최우선 차이로 이해되어야 할 타당한 이유 역시 없다(Delphy, 61). 샌드라 하딩이 “강한 객관성”이란 개념으로 지적한 것처럼, 섹스는 정말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인지, 사람이 두 종류로만 태어나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섹스-젠더 구분 공식은 지배 규범적 통념을 반복하고 재생산할 뿐이다. 이제 윌킨스 식으로 묻는다면, 반대의 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윌킨스는 반대 섹스가 존재하는가를 되물으며 섹스 혹은 인간 해부학이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었음을 설명한다. 이 설명을 통해 윌킨스는 반대 섹스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를 이원론으로 이해하는 사유체계가 있음을 밝힌다. 현대사회에선 매우 자주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설명하는 심리학, 뇌과학 논문이 발표되고 이것이 ‘과학적 사실’로 포장된다. 하지만 이런 ‘발견’, 실험결과는 차이를 규명하기 위한 것인지 차이를 발명하고자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생물학자 앤 포스터-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 한 연구는 실패한 연구로 가정되고 그 결과는 버려진다고 지적한다(Wilchins, 86). 즉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차이를 원하기에 차이를 획득하는 것이다(Wilchins, 86). 이 과정에서 무수하게 많은 유사성은 누락된다. 이를 테면, 폐가 두 개라거나 심장이 하나라는 또 다른 ‘과학적 평균치’(‘과학적 사실’은 아니다)는 여성과 남성의 몸을 설명하는데 누락된다. 오직 섹스, 생식기관, 재생산 능력/방식만이 강조될 뿐이다. 델피와 윌킨스 모두가 지적하듯, 섹스 자체가 젠더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섹스로 수렴해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방식은 결국 환원주의에 빠진다.
섹스-젠더 구분 공식은 인간이 겪는 억압을 본질로 구성/형성하는 규범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그러면서 사회문화적 구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여성[woman]과 남성[man], 여자와 남자라는 이분법, 여자-여성, 남자-남성의 연결 고리를 자연적 필연으로 가정하면서 또 다른 본질주의를 재생산하였다. 본질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이론이 바로 그 본질주의를 (재)생산한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질문하지 않는 순간 또 다른 폭력, 억압이 발생하고 지배 규범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델피는 “무지에 직면할 용기를 갖는 것은 상상력을 위한 전제조건”(57)이라고 지적했다. 섹스-젠더 이론이 또 다른 억압을 재생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억압과 차이의 생산 기제를 탐문하는 이론이라면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개념을 단념”(Delphy, 62)하고 전제 자체를 심문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삶과 세상을, 나 자신을 좀 더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