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본스타인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제 퀴어영화제 폐막작 <케이트 본스타인>은 정말 좋았다. 나의 모델 중 한 명이고 좋아하는 연예인 같기도 한 케이트를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최고였다. 한 개인의 역사가 운동 및 이론의 역사기도 하단 것을 화면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기쁨이란! 무엇보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 그게 내겐 위로였다. 고마워요, 케이트 이모.


아쉽다면 자막에서 자잘한 수정 사항이 있고(사실 관계가 잘못된 것인데 이건 케이트 본스타인 관련 사전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라 부득이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상영 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더 좋았겠다는 것 정도? 다큐에 케이트 언니가 의료적 조치를 하기 전 사진이 스치듯 나오는데 그런 깨알 같은 부분이라거나, 사전 지식이 있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 같은 걸 다루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폐막작으로 한 번만 상영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부디 추가 상영이 있기를!
아울러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하게 다룬 두 권의 책, 젠더무법자와 헬로 크루얼 월드가 이르면 올해 안으로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다. 책이 나올 때마다 다큐를 상영하고 책의 내용을 나누는 자리가 있다는 더 좋겠다 싶다. 이것은 혼자만의 망상!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법외자/젠더 무법자

어떤 분에겐 반가울 소식 하나 전합니다.
케이트 본스타인이라고 아시나요? 아마 트랜스젠더퀴어 이론에 관심이 있거나 젠더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로 다양한 활동을 했고, 연극배우며 1990년대엔 트랜스/젠더 이론서, 교육서 등을 쓴 저자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트랜스젠더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케이트 본스타인의 글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얻고 많은 배움을 얻었을 거고요.
이런 케이트 본스타인이 처음 쓴 책은 이론적 자서전, 혹은 자전적 이론서입니다. <젠더 법외자> 혹은 <젠더 무법자>로 번역할 수 있는 책, Gender Outlaw: On Men, Women, and the Rest of Us는 본스타인이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삶과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적절하고 절묘하게 엮은 책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트랜스젠더 자서전을 출판하는 붐이 일었는데 본스타인의 책이 그 붐을 일으켰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삶과 이론이 절묘하게 엮이는 찰나며 삶이 얼마나 치열한 이론인지, 이론이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이론을 처음 공부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었고 많은 위로를 받았고 배움을 얻었습니다. 제겐 정말 소중한 책 중 하나죠. 그래서 이 책을 한국의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었지만 쉽진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이 책을 번역하자는 얘기를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쉽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요.
바로 이 책이 한국에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믿기나요? 얼마 전, 이 책 번역과 관련한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판권 계약 및 옮긴이 계약 모두 맺었다고 하고요. 물론 제가 번역하진 않아요. 제가 욕심을 냈던 책이지만 전 다른 책을 번역하고 있거니와 제겐 단독으로 영어책을 번역할 능력이 없거든요. 저에 비하면 번역을 엄청 잘 하는 분이고, 트랜스젠더퀴어 이론도 공부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만.. ^^; (이런 소식을 알게 된 계기는 따로 있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정말정말 기뻐요!
제 글로는 <젠더 법외자>가 어떤 글일지 가늠하기 힘드실 테니.. 모 님을 착취하여(고맙고 죄송합니다..ㅠㅠ) 몇 구절 옮겼습니다.
내 생각에 젠더는 S/M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안전하고, 정상적이고, 합의한 것이어야 한다.

젠더는 안전하지 않다.
만일 내가 나의 젠더를 바꾼다면 살인, 자살 또는 내 잠재력의 절반이 사라지는 삶이라는 위협을 대면하게 된다.
만일 내가 젠더를 알리는 신호가 섞여 있는 몸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도살될 위험에 처한다- 조정되고, 절단된다.
젠더는 안전하지 않다.

그리고 젠더는 정상이 아니다.
무지개를 흑 아니면 백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모두가 단 두 개의 범주 중 하나에 맞아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인간을 억압하기 위해 여성으로 분류하고 칭송하기 위해 남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젠더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젠더는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면 의사가 젠더를 지정한다. 그 과정은 국가에 의해 문서회되고, 법에 의해 시행되고, 교회에 의해 신성화되고, 미디어에 의해 사고 팔린다.
우리는 스스로의 젠더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젠더를 질문하고, 가지고 놀고, 친구들, 애인들,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없다.
젠더는 합의된 것이 아니다.

안전한 젠더는 비난이나 폭력의 위협 없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한 젠더는 어떤 방향이든 바라는 곳으로, 우리나 다른 누구의 건강에도 위험을 끼치지 않고 가는 것이다.
안전한 젠더는 패싱하라는 위협도,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일도, 숨여야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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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젠더, 아니 그냥 젠더

아이디어 메모.
케이트 본스타인은 “섹스는 성행위고 나머지는 모두 젠더다”라고 말한 적 있다. 얼마전 수업교제를 읽다가 이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 아무리 고민해도 탁월한 성찰이야.. 하지만 이렇게 사유하고 실천하기란 참 어렵겠지.
섹스는 성행위고 나머지는 모두 젠더라는 성찰은, 소위 생물학과 사회문화의 이분법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구분 공식으로는 인간의 삶을 설명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섹스라는 생물학적이고 물질적 몸, 젠더라는 사회문화적 양육과 해석이라는 구분은 차별과 억압의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비판하는데 유용하다. 하지만 젠더를 강조하면 그럼에도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섹스를 놓치게 되고, 섹스를 강조하면 섹스 자체가 해석이란 점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섹스-젠더를 구분하는 것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냥 모든 게 젠더다. 바로 여기서 시작하면 된다.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 소위 물질이라는 어떤 몸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담론-물질 구분으로는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죽었다 깨어나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한 성찰이다. 그냥 모든 게 젠더다.
여기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