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잡담

아무려나 어째서인지 정신없이 바빠 정작 내가 써야 하는 글을 쓸 시간이 없다.

15주년 사업을 어떻게든 마무리하려고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다른 일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 와중에 새로운 사업을 하나 같이 하기로 해서 내 인생 내가 꼬아버린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 허허허… 왜 그랬지… 그럼에도 재미는 있네.

그리고 또 예상치 못한 일에 초대를 받기도 해서 흥미진진. 다음주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계속 일정의 연속이라 운동을 하든지 엄청난 보양식을 먹던지 고카페인을 먹던지 뭐라도 해야겠다 싶네. 그나마 커피는 못 마셔서 다행인가. 아, 홍차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냥 디카페인 차가 최고다. 마실 수 있는 차의 종류가 몇 개 없는데(안 맞으면 무조건 몸에 탈이 나서) 생수를 가장 좋아해서 다행인가.

그러니까 이 모든 내용이 모호한 내용에 이상한 헛소리 뿐인데, 무엇 하나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바쁜데 쓸 수 있는 내용이 없다보니 블로그를 한동안 방치하는 사태에 빠졌다. 한동안은 하루 4시간 정도 자는 일정을 몇 달 했고, 요즘은 그래도 5시간은 자는 상황인데 바쁜 게 끝난 건 아니고 살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럼에도 논문 하나 써야 하는데. 70% 완성된 논문을 투고할 수 있게 완성하는 게 왜 이리 어렵냐. 그런데 기준이 높아서 문장 하나하나가 다 거슬리네.

과일과 알러지

음… 일전에는 털에 대한 알러지가 있다고 했지. 그러니까 복숭아, 키위, 무화과 등 털이 있는 과일 종류부터 고양이털, 개털까지 털이면 일단 알러지가 터지는 와중에 요즘은 사과에 끌려 종종 사과를 사먹고 있는데 사과 알러지도 생긴 듯. 몇 주 전에는 입술이 붓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무시했는데, 목이 붓듯 아픈 느낌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까 사과 알러지도 있다는 결론. ㅋㅋㅋㅋㅋ 이제 남은 건 귤 계열, 바나나 정도인가.

뭐 먹고 살아야하지…

급진성과 동화주의의 공존 속에서

몇 달 전,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지인이 내게 해 준 인사, “좋은 자리에서 만나니 좋네요”는 화두처럼 남아 있다. 처음에는 기쁘고 또 슬픈 말이었는데, 애석하게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또 다른 추모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너무도 열심히 활동했던 한 트랜스젠더퀴어 활동가의 추모식은 슬펐고, 생전에 인사를 나누지 못한 나의 무지와 게으름이 부끄러웠고 그의 치열한 노력이 진하게 느껴지는 자리기도 했다. 다양한 의제를 고민하는 이들이 추모 발언을 했고, 절친의 발언은 고통스럽게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괴로운 것은, 좋은 자리에서 만났던 이들을 또한 추모식에서 그대로 만났다.

몇 년 전, 나는 이틀 연속, 다른 장례식장에 참가했고 대부분의 조문객이 겹치는 상황이 꽤나 힘들었다. 달리 말해 나 만이 아니라 많은 퀴어가 다른 장례식장에 참가했고 같은 조문객을 만나 인사를 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올해 축하와 추모식에서도 상당히 겹치는 사람들을 만났다.

오랫 동안 나는 동성결혼에 비판적이었고 지금도 동성혼이 허용되기보다 결혼제도가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권리를 개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결혼을 무용하거나 동화주의적이거나 규범성 그 자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깨닫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사안을 급진성과 동화주의 같은 방식으로, 규범성과 반규범성의 이분법이나 양자택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한 축에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 모든 행사에 참가하는 이들이 거의 겹친다는 점이다. 동성결혼에 축하하기 위해 참가하는 이들은 또한 추모식에 참가하는 이들이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이들이며, 정부나 제도의 폭력에 저항하고 항의하는 자리에 참가하는 이들이며, 더 나은 사회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 서로 싸우면서도 또한 토론하는 자리에 마주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의제에 따라 나뉘어 서로 함께 하지 않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또한 그 모든 자리에 함께 하며 같이 투쟁하고 서로 논쟁하고 싸우고, 또 같이 투쟁하고 있다. 낭만적이거나 멋있다는 것이 아니라, 적은 사람이 더 많은 힘을 만들기 위한 부득이한 상황이지만 부득이함은 때로 익숙한 이분법을 초과한다. 누군가를 내켜하지 않을 때에도 축하와 추모에, 제도화와 투쟁에 함께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이 모든 것이 모순이 아니라 모순과 갈등의 지형으로 이해하는 그 태도가 문제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 모든 자리에 있는 이들이 겹치고 평소에는 거의 못 만나지만 그 모든 자리에서 안부를 전하는 지형은 그리하여 모순이나 대립하는 지형이라는 토대는 사유의 출발이 아니라 사유의 불가능을 재생산한다는 것을 말한다. … 뭐, 요즘 이런 고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까지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