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르바비차

[그르바비차] 2007.01.04.금. 10:40, 씨네큐브광화문 2관 43번

01
얼마 전에 어느 매체에 기고했다는 글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다. 디자인 편집과정을 거친 모습을 보며 낯설었다.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글을 읽으며 마치 남이 쓴 글 같았다. 확실히 펜으로 쓴 글과 워드작업을 거쳐 인쇄를 해서 읽는 글과 디자인 편집을 거쳐 인터넷 매체에 실리는 글의 느낌은 제각각 다르다.

디자인 편집을 거친 그 글을 읽으며, 글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과 디자인 편집을 하는 분이 강조한 부분이 달라 조금 당황했다. 그 글에서 “나는 조금 불안하다”와 “나는 조금 피곤하다”란 말을 썼다. 이때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피곤함이었지만, 디자인 편집자는 불안을 말 하는 부분에 다른 색깔을 사용하는 것으로 강조의 의미를 부여했다.

내 글쓰기 방식의 문제인지, 글을 통해 풍기는 뉘앙스가 그랬는지, 디자인 편집자가 트랜스젠더에게 가진 어떤 선입견이 있어 빚어낸 상황인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뭐가 중요하랴. 시험문제의 지문처럼 정답이 있는 글도 아니고, 글은 공개되는 순간 나완 상관없으니까. 또 모르잖아. 사실은 불안을 말하고 싶었으면서 피곤함을 말하고 싶다고 우기는 건지도. 몇 달 후에 다시 이 글을 설명하며 불안을 말하고 싶었다고 할지, 누가 알까.

02
영화 키워드만 확인하곤, 망설였다. 2008년 처음으로 읽는 영화를, 아침부터 성폭력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를 읽는다니. 극장에 안 갈 것도 아니면서 괜히 궁시렁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트랜스젠더란 이슈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거운 주제이리라. 그러니 성폭력이란 주제가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이건 어떤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상기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싫은 건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서 거의 말하지 않는 어떤 시기 혹은 사건이 몇 개 있다. 물론 가끔씩 말할 때가 있긴 한데, 입으로 말하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 항상 글을 통해서만 말할 뿐이다. 물론 글로도 말하지 않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고.

03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황이 떠오를 때가 있다.

04
이 영화, 참 좋다.

6 thoughts on “{영화} 그르바비차

    1. 많은 고민을 안겨 주는 영화에요.
      물론, 어떤 장면들에 너무 밀착해서 글로 풀기는 쉽지 않지만요…

  1.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고. 관련 기사만 읽다보니. 참 깝깝해지네요. 세르비아 군인들에 의해 보스니아 여성 2만명이 강간했다고요. 허허… -_- 보기 두려운 영화입니다. 휴..

    1. 기억이 정확하다면, 성폭력 장면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상황이 생생해서, 사실 영화관에서 조금 힘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 영화, 참 좋다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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