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롤 [스나크 사냥]
미야베 미유키 [스나크 사냥] (권영일 옮김, 북스피어)
온다 리쿠 [메이즈] (박수지 옮김, 노블마인)
루이스 캐롤의 작품 [스나크 사냥]의 줄거리는, 실체가 없는 스나크라는 무언가를 사냥하러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스나크의 실체는 나오지 않고, 스나크를 사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 혹은 시이다. 읽는 내내 키득키득 거리며 웃을 수 있는, 무척 재밌는 작품. 읽고 싶으면 여기로 (출처는 여기, 영문은 여기) 짧은 분량이지만 무척 인상적임.
미야베 미유키의 [스나크 사냥]은 캐롤의 작품과 제목만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캐롤의 스나크가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괴물’을 사냥하는 내용이라면, 미야베의 작품에선 구체적인 실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사냥”을 나서는 분명한 이유도 존재하고. 다만 “스나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괴물’로 변해간다는 점에선 상당히 유사하다. 무엇보다 덧붙이는 이야기만 없었다면, 내가 읽은 미유베 소설 중에서 성격이 상당히 다른 작품을 읽는 재미도 있다. 아니, 더없이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캐롤의 작품과 제목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나크”의 실체가 없길 바랐는데 상당히 자세히 설명한 편이라서, 좀 아쉬웠달까.
온다 리쿠의 [메이즈]는 상당히 기대하고 읽었다. 유적으로만 부를 수 있고 정확한 지명 없이 ‘두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곳을, “존재할 수 없는 장소”, “있을 수 없는 장소”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 몇 년 전부터 “위치가 없는 위치”dislocatedness와 관련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두부’는 바로 이런 고민과 밀접한 내용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보이고 경험할 수 있음에도 “존재할 수 없는 장소”, “있을 수 없는 장소”라고 불린다니, 이보다 매력적인 은유가 어디있으랴. 그래서 마지막 40여 페이지를 읽기 전까진 정말 흥미진진했다. 마지막 추리를 하면서 김이 팍 샜지만. 그렇다고 소설 자체로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저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기대가 상당해서 실망했을 뿐.
“비웃는 게 아냐.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 가치기준과 다른 것을 꺼리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은 우리의 물리적 이해를 초월하니까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184쪽)
온다 리쿠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소설을 무척 잘 풀어가고 있다. 실체를 파악했다고 믿는 순간, 파악한 실체는 저만치에 있다. 의기양양하게 깨달았다고 자신하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그런 믿음을 비틀어버리는 재능도 여전하고. 이것이 온다 리쿠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