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만남. Third

10년 걸렸다. 아니 10년 조금 더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기다렸다. 그 동안 많이도 만나고 싶었지만, 소문만 무성했다. 그래서 새로 만날 길은 없을 거라 믿기도 했는데.

하지만 나의 만남은 10년 조금 덜 거렸다. 처음 만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저 웹을 타고 배회하던 어느 날의 어느 늦은 밤. 단박에 좋았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이 만남을 위해 기다렸던가 싶었다. 물론 만남을 주선한 사람의 소개는 별로였다. 그 소개가 싫었지만 소개가 싫다고 만남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니까.

한 번의 만남이 한 번만 만나는 건 결코 아니고, 우연한 만남이 그저 우연히 스치고 지나가는 만남인 건 아니다. 만날 때마다 항상 새로운 느낌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도 새로운 느낌. 언제나 위로를 주는 느낌. 그런 느낌이 좋아서 많이많이 자주자주 만나는가 하면, 또 만나지 않고 외면하며 지내던 시절도 많았다. 하지만 외면하고 지내던 시절에도 잊은 적은 없었다. 하루를 보내는 어느 시간, 갑자기 너무도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을 때면 스스로를 질책하곤 했다.

2005년 즈음엔 소문이 무성하기도 했다. 올해는 만날 수 있을 거야, 라고. 하지만 소문일 뿐, 실체는 없었다. 하지만 소문만으로도 좋았다. 충분히 오랜 시간 소식이 없었는데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거란 소문이라도 도는 건, 언젠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또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젠 소문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면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다시 새로운 강산으로 바뀌려는 시간이다. 11년 만의 만남이기도 하고, 10년 만의 만남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만큼 새로 만나기가 힘들 거란 짐작은 있었다.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지난 두 번의 만남이 너무도 강렬해서 새로운 만남이 쉽진 않았으리라.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 두 번째 앨범, 1998년에 라이브 앨범 이후, 베쓰 기븐스의 개인 작업은 있었지만 그룹의 작업이 없어, 징하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이제서야 Portishead의 세 번째 앨범 [Third]가 나왔다. 사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정말 나온거야? 정말인거야? 라고 몇 번이고 반문했다. 하지만 정말 나왔다!

음악은, 기다린 시간만큼이나 만족스럽다. 흑백영화 같은 느낌도 여전하고, 오래된 LP판을 틀고 있는 듯 한 느낌도 좋다. 음악은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면서도 포티쉐드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다. 백 번 좋다고 말하면 무엇하랴. 다방에 올렸어요. 🙂

10 thoughts on “세 번째 만남. Third

  1. ㅋㅋ 첨엔 어떤 사람 이야기인줄 알았다가…..점점 아.. 음반 이야기구나 ㅋㅋㅋ 했다는

    1. 사실 끝까지 사람인 것처럼 쓸까 하다가, 중간에 급소심모드로 바뀌는 바람에 포티쉐드(포티스헤드) 신보소식이라고 말하고 말았어요. 흐흐

  2. 아, 드디어 나왔군요!
    전 이제야 루인님의 블로그에서 알았어요.

  3. “한번의 만남이 한번만 만나는 건 결코 아니고, 우연한 만남이 그저 우연히 스치고 지나가는 만남인 건 아니다.”
    이 문장 좋네요.
    (루인님 포스팅 복습하려면 아직 멀었다는..ㅎㅎ)

    1. 정확히는 복습이 아니라, 보충학습?
      밀린 포스팅 읽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일이 좀 한가해져야…

    2. 바쁠 땐, 그냥 안 읽고 최근 글만 읽는 방법도 있지요… 흐흐. (그렇다고 제가 그런다는 건 아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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