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돌아가는 길

01
분쇄기가 윙, 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02
나는 죽음에 무덤덤하게 반응하고 싶었다. 축복하고 싶었다. 망자를(산자를) 애도하기 위해, 곡소리를 내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며 축가를 부르고 싶었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식이 아니라, 체화하고 싶었다. 이별이나 헤어짐은 당연하지 않은가.

바람을 체화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03
이틀 동안 밤을 지새우다 시피 했다. 잠을 자긴 잤다. 자는 시간이 극히 짧았거나 자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깨어났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건, 나의 슬픔이다. 살아 계셨다고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뵈었겠는가. 살아 계신다고 내가 몇 번이나 안부 전화를 했겠는가. 그러니 순전히 나의 슬픔이다. 나의 죄송함이다. 어금니를 앙다물며 울음을 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났다. 향년 94세면 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세라고 슬프지 않겠는가.

꿈에서 뵙진 않았다. 마지막 인사는 화장장에서 했다. 기다리던 중에, 불현 듯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다. 그저 환청일 뿐이다. 환청일 뿐이다. 환청일 뿐이다.

04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다 부질없다. 모두 나의 애도일 뿐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은 쉬 전염된다. 때론 잠복기도 길고 증상도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난다. 그러니 발을 헛딛는 것 정도는 별거 아니다.

7 thoughts on “먼 길, 돌아가는 길

  1. 이별이나 죽음이란, 아무리 몇 번 되풀이 한다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어쩌면 유일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요즘.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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