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이름 없는 독]을 읽었다. 미미 여사 작품은 어느 하나 실망할 작품이 없다. 모든 작품이 기본은 한다. 그리고 한 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읽다가 내 트라우마(라기엔 거창하지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난 핸드폰 혹은 전화 연락을 무척 싫어하는데, 이유는 단순히 전화로 연락하는 걸 내켜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래 전에 누군가에게 ‘공격’이라고 말할 정도의 전화를 받은 적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전화하고 두어 시간 동안 백여 통의 문자를 날리고… 이후 전화는 내게 노이로제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 내가 겪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 나왔다. 끊임없이 주인공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 그 장면을 읽는 순간, 다음 문장을 읽기 어려웠다. 과거 경험이 겹치면서 불안했다.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좀 진정시키면 책을 읽고, 다시 불안하면 덮기를 반복했다.
나의 불안과 별개로 소설은 권력을 고민할 계기를 준다. 최근 어느 강의에서 권김현영 선생님은 남성성을 폭력과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폭력과 권위에 순종하며, ‘나’ 역시 그런 권력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란 욕망. 이 설명은 권력 혹은 권력 지향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으리라. 소설의 내용이 그러하다. 소설 속 ‘가해자’는 자신의 취약함을 은폐하기 위해 타인에게 제 취약함과 불안을 투사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성취/쟁취한다. 권력은 타인 혹은 자기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방식이랄까…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미미 여사 작품은 역시 좋다.
02
D. A. F. 사드의 소설 [사랑의 범죄]를 읽었다. 사디즘의 그 사드다. 지금은 짧게 메모를 남기는 것으로 족하리라.
18-19세기 종교와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어림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소설을 통해 당대의 도덕과 종교가 개인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소설 내용도 그러하지만(도덕과 성의 관계를 논하는 대화가 많다, 그래서 좀 지겹다;; ) 형식도 그러하다. 작가의 자기 검열, 에두르는 표현이 더 흥미롭다. 나중에 본격 분석하면 재밌을 듯.
젠더 이분법이란 틀로 접근할 때, 비규범적 섹슈얼리티 실천을 ‘남성’ 주인공이 주도한다는 부분은 좀 묘하다. 이 부분은 단순히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접근할 수도 없고, 간과할 수도 없다. 이 부분은 나중에 더 꼼꼼하게 읽고 다시 접근해야 할 듯.
사드란 명성에 비하면 내용은 평이하다. 범죄로 부를 법한 ‘사랑’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의 입장에선 ‘뭐, 이런 내용을 가지고 검열한담…’이랄까.
저자의 훈계는 비꼼과 코미디 같다.
혹시 누구 [소돔, 120일] 빌려 주실 분 계신가요? 흐흐. ;;
아… 권김현영 선생님이 남성성을 그렇게 설명하신 적이 있다구요.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남성성이라는 젠더는, 근본적으로는 주체가 기득 권력에 대해 동일시하는 입장, 혹은 그러한 (편입?)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아닌가 하는. 써놓고 보니 거의 똑같네요;
나에게는 왜 야망이 불가능한가, 정말로 날 때부터 거세된 것인가…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게 젠더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남성성과 젠더] 관련 특강을 할 때 그 얘기를 했어요.
근데 뚜렉 님의 고민은 권김현영 선생님의 고민과 결이 다를 테니, 뚜렉 님의 맥락에서 관련 논의를 풀어도 재밌을 거 같아요. 🙂
나 소돔120일 있어요 🙂
헉.. 나 빌려줘요!!!
제본하고 돌려줄게요!!